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악어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아주 단순한 내용이었다. 딱 듣기에 '엘리게이터'(당시에 그런 공포영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가 무섭게 들리나, '크로커다일'이 무섭게 들리나? 나는 "엘리게이터는 무섭고, 크로커다일은 귀엽게 들린다"고 했다. 한 친구는 격음이 많이 들어간 크로커다일이 더 강하게 들린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미주 대륙에 사는 건 대략 엘리게이터,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지에 사는 것은 크로커다일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형태상의 차이도 없지는 않다. 크로커다일은 윗니와 아랫니 일부가 겉으로 드러나 보인다. 엘리게이터는 윗니만 보인다. 크로커다일의 머리는 날렵하고 좀 길쭉한 반면에 엘리게이터의 머리는 넙적하다.
악어의 대명사는 뭐니뭐니해도 나일 악어다. 나일 크로커다일은 수명이 45년쯤 되니, 꽤 오래 사는 편이다. 하지만 동료 파충류(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으나) 거북들에 비하면 댈 바가 못 된다. 아주 오래 산 악어 중에는 70~100년을 산 것도 있다고 한다. 나일 악어는 크기가 5m까지 자라고, 몸무게는 200kg 넘게 나가는 것들도 있다. 아주아주 큰 것 중에는 730kg이 나가는 것까지 있었다고.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에서는 악어 알과 악어의 미라도 발견된 적 있다.
나일 악어. _ wikipedia
아프리카를 여행한 친구가 '크로커다일 마켓'이라 불리는 곳에 구경을 갔는데, 시장(market)인 줄 알았더니 그냥 늪지대에 악어들이 첩첩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고. 보트 타고 구경하면서 배 뒤집어져 악어들한테 잡아먹힐까봐 무서웠단다. 10년 전 내가 보르네오 섬에 갔을 때 모터보트를 타고 강을 지나는데, 배가 멈췄을 때에도 운전하는 분이 시동을 끄지 않았다. 모터 끄고 시간이 좀 지나면 배가 고장난 줄 알고 악어들이 슬금슬금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일 악어는 무시무시한 육식 동물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자료를 보면, 매년 나일 악어에게 물려 죽는 사람이 200명이 넘는 것으로 돼 있다. 아프리카 동쪽 바다의 마다가스카르 섬에도 악어가 산다. 미얀마의 이라와디 강에는 이라와디 악어가 있다. 메콩 강에 민물 돌고래가 살듯, 이라와디 하류에는 짠물 악어가 산다. 바다악어라기보다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사는 악어들이다.
악어는 대체로 물고기를 먹지만 아프리카에서 때로는 얼룩말이나 작은 하마나 물새들, 심지어 가끔은 다른 작은 악어를 잡아먹기도 한다! 그럼 악어는 누가 먹나? 사람들이 껍질 벗겨 가방 만들고 신발 만들고, 고기도 먹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을 때 악어고기를 먹어본 적 있다. 고기는... 뭐랄까, 먹어보면 악어에 왜 '어(魚)'가 붙는지 알게 해준다고나 할까. 고등어같은 흔한 경골어류의 육질과는 좀 다르다. 굳이 힘들게 설명을 하자면 아구라든가, 새우라든가, 복어라든가, 그런 것들하고 좀 더 비슷한 쪽이었다. 맛은? 칠리 소스에 범벅이 돼 있어서 소스 맛밖에 느낄 수 없었다.
악어를 먹는 이야기를 하자니 문득 생각나는 사진이 있다. 오래 전에 플로리다의 버마비단구렁이가 엘리게이터를 잡아먹는 사진을 본 적 있다. 세상에, 뱀이 악어를 꿀꺽 삼켰다! 그러나 한번에 소화시킬 수가 없었고, 악어는 뱀의 몸을 찢고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결국 둘 다 죽었다. 뱀의 배 밖으로 반쯤 나와 있는 악어의 모습이란. 이것도 다 인간들과 관련 있는 참사였다. 버마구렁이를 잔뜩 들여다가 플로리다에 풀어놨는데 외래종인 그것들이 토착종들을 마구 잡아먹다가 생긴 일이었다.
'악어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악어가 부모에게서 아이를 잡아갔다. 아마도, 당연히도, 잡아먹으려고. 부모가 악어에게 애원한다. 아이를 살려달라고. 악어는 부모에게 문제를 낸다. "이 문제를 맞추면 돌려주지!" 문제는 이거다. "내가 아이를 잡아먹을까 아닐까?" 부모가 아니라고 답하는 순간, 악어는 잡아먹어버리면 된다. 부모가 잡아먹는다고 답하는 순간, 악어는 아이를 잡아먹는다. 부모에게 좋은 선택지는 없다. 힘 있는 자가 생명을 저당잡힌 이들을 상대로 벌이는 장난질. 갑질로 치자면 이만한 갑질이 없다.
양심 없는 자의 거짓 눈물은 잘 알려진 대로 '악어의 눈물'이라 부른다. 이 표현은 플루타르크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표현이라고.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많다. 악어가 물에서 올라와 뭔가 먹으려면 눈가의 물을 닦아내야 했다든가, 먹이를 먹을 때에 악어에게선 신체 작용의 하나로 눈에서 분비물이 나온다든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악어가 희생양을 안타까워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악어의 눈물' 같은 표현이 있는 건 참 좋다. 악어조차도 누군가를 희생시킬 때에는 눈물을 흘리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니, 역설적이지만 한 가닥 양심의 존재를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아서. 이조차도 못 하는 존재라면 그건 사람도 아니다.
어찌 되었든 악어는 참 대단한 동물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하는 걸 보고 혹자들이 '악어의 단식'이라 부르는 걸 봤다. 악어의 눈물도 아니고 악어의 단식이라니. 이건 참 씁쓸하면서도 재미난 표현이다. 사실 생태계에서, '단식' 하면 악어다. 세상에는 굶으며 오래 버틸 수 있는 동물이 좀 있다. 물 안 먹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를 비롯해 개구리, 뱀 같은 것들이 꽤 오랜 시간 먹이를 먹지 않고도 버틴다. 낙타는 최장 40일 정도까지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겨울잠 자는 동물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잠을 자는 것은 아니니 공을 인정해주자. 황제펭귄은 혹독한 환경에 사느라 석달 정도 굶을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켰다. 어떤 뱀과 개구리는 1년이 넘게 안 먹어도 생존을 유지한다.
악어는? 무려 3년을 밥 없이 견딜 수 있다! 이보다 더 버틸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화석' 같은 별명으로 불리는 폐어(lungfish)나 올름 도롱뇽(olm) 정도다. 올름은 10년도 버틴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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