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동부에는 ‘종 루즈 zone rouge’라는 또 다른 전쟁의 폐허가 있다. 전쟁 전만 해도 이 지역은 평범한 농촌이었다.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 대규모 군부대가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 역사학자인 크리스티나 홀스타인에 따르면 베르됭 기지에는 전쟁이 나기 전에도 6만6000명에 이르는 군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주변의 비옥한 농촌은 군인들을 먹여 살리는 데에도 쓰였다. 그러나 이 농촌은 1차 세계대전 때 폐허가 됐다. 1916년까지 이 일대에서 300일 넘게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프랑스인과 독일인 30만 명 이상이 숨졌다. 이 전투, ‘베르됭 전투’는 1차 대전 속의 또 다른 대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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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저널리스트 겸 저술가 니콜라우스 뉘첼이 지은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는 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1차 대전 이야기다. 당시의 역사를 쉬운 말로 설명하지만 담겨 있는 지식이나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해 전쟁의 끔찍함을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베르됭, 이 도시의 이름은 1차 대전 중 가장 참혹했던 전투를 상징하는 이름이야. 전투가 가장 격렬했던 지역에서는 1평방미터당 수류탄이 여섯 개 떨어졌다고 하더라고. 농사를 짓지 않는 땅에는 아직도 뚜렷이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거든. 전투가 있은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숲에는 아직 포탄이 터질 때 생겨난 구덩이들이 남아 있어. 프랑스 정부는 완전히 파괴된 마을 땅에 표시를 해놓았어. 표지석들은 이곳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긷던 곳이며, 저쪽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다녔다는 걸, 그리고 같은 건물에 시청이 있었다는 걸 보여줘.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것이 무지무지하게 평화로운 인상을 주지. 바람이 나무 사이로, 잔디 위로 살랑살랑 불고 아주 고요해.”
책에 실려 있는 베르됭의 사진은 저자의 말처럼 ‘무지무지하게 평화로운’ 모습이다. 수풀이 무성해서 얼핏 보면 동물들이 뛰놀아야 할 초원 같다. 이곳이 ‘인류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격전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그 사진 속 이미지만으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전쟁으로 이 일대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도록 완전히 파괴됐고, 무려 1200㎢에 이르는 넓은 땅이 버려졌다.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 프랑스 정부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이 땅에 농민들을 되돌려 보낼 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무너진 집들을 새로 지어 사람들이 다시 살게 하는 대신에 정부는 이 땅을 ‘자연에 돌려보내기로’ 했다. 이 지역은 지금도 출입이 통제되는 보호구역이다. 안에 들어가서 집을 짓는 것은 물론이고 농작물을 키우거나 숲에 손을 대는 일도 현행법상 금지돼 있다.
당초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화학물질에 심하게 오염되고 폭탄과 지뢰 같은 폭발물이 많이 남아있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한국의 비무장지대처럼, 사람들이 버린 땅을 자연이 맡아 복원하고 있다. 폭탄더미 속에서도 자연의 회복력은 몹시 빠르게 작용했다. 나무와 풀과 덤불이 포탄 구덩이 사이를 메웠다.
프랑스와 독일 정상은 2016년 5월 29일 ‘베르됭 전투 100년’을 맞아 기념식을 열고 손을 맞잡았다. 유럽의 단결과 평화를 위해 협력한다는 뜻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아픈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François Hollande et Angela Merkel ont conduit une cérémonie d'hommage historique le 28 mai 2016 à Verdun. JEAN-CHRISTOPHE VERHAEGEN / POOL /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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