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테러범 몰렸던 이라크 난민 청년, 스웨덴 마을을 하나로 만들다  

딸기21 2015. 12. 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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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르 모탄나 마지드는 이라크 출신 22세 난민 청년이다. 터키를 거쳐 스웨덴에 입국한 지 몇 달 만에 그는 유명인사가 돼버렸다. 전란을 피해 유럽으로 이주한 여러 난민 중 한 명일 뿐이었던 그가 테러범으로 오인받으면서 ‘스웨덴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힌 것이다.

 

볼리덴이라는 소도시에 정착한 지 두달 만에 그는 테러음모를 꾸민 혐의로 당국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고, 언론들은 ‘난민을 가장한 테러범’으로 의심된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웃에 정착한 청년이 테러범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마을은 뒤숭숭해졌다. 하지만 보안당국의 착오로 드러났고, 모데르는 사흘 만에 풀려났다. 무사히 풀려나긴 했으나 이미 이름과 얼굴이 너무 많이 보도돼 다시 마을에 정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국은 그가 정착할 수 있도록 볼리덴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모데르는 주민들의 의구심 섞인 시선을 피해 숨는 대신, 볼리덴으로 돌아갔다. 그는 다른 난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파티를 열고 “소동을 빚어 미안하다”며 마을 주민들을 초대했다. “우리(난민)는 테러범이 아니며 평화롭고 조화롭게 이웃으로 살려고 왔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주민들도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며 모데르의 초청에 열렬히 호응했다. 난민들이 들어오고, 뒤이어 경찰의 테러모의범 색출작전이 벌어졌을 때 놀랐던 것은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뒤숭숭했던 마을 사람들은 모데르가 아예 떠나버리는 대신 마을로 돌아오자 따뜻하게 반겼다. 라일라 마린더라는 80세 여성은 모데르가 파티를 열고 이웃들을 초대하기로 한 것은 “환상적인 일”이라면서 “그가 볼리덴으로 돌아와 안심했다”고 말했다. 59세 교사 얀 뵤르크스트란트는 “그런 상황에 몰렸던 사람에게서 초대를 받는다면 누구든 사랑으로 응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테러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고 있다. 개방된 사회는 취약점이 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모데르(오른쪽 두번째)가 지난 23일 열린 파티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알자지라 [Ann Tornkvist/Al Jazeera]


지난 23일 모데르의 작은 집에서 파티가 열렸다. 주민들이 몰려와 모데르의 석방을 축하했다. 모데르와 친구들은 아랍식 빵을 준비했다. 한 마을 여성은 꽃다발을 들고와 모데르를 얼싸안았고, 6살 아이는 초콜렛을 상자에넣어왔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80명이 넘었다. 식사가 끝나자 테이블을 한 옆으로 밀고 모두가 춤을 췄다.

 

모데르는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옮겨오기까지 자신의 여정을 설명했고, 이웃들은 귀를 기울였다. 고향을 떠난 지는 열 달이 됐다. 그와 함께 이라크를 떠나온 사촌은 핀란드로 갔다고 한다. 모데르는 “내가 스웨덴을 택한 것은 (난민들에게 관대하다는) 세계적인 명성 때문이었다”며 “스웨덴은 지식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알자지라방송은 테러범으로 오인받았던 난민 청년 한 사람이 이 마을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스웨덴은 모데르의 말처럼 세계에서 난민이나 망명자들에게 가장 관대한 나라로 꼽힌다. 정부 산하 이주위원회는 웹사이트에 “스웨덴은 국제사회의 난민 보호 책임을 나눠가져야 하며, 다른 곳에서 피난처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스웨덴에 정착할 수 있게 해 보호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주위원회는 이주자·난민 등의 거주신청과 시민권 신청을 심사하며, 여기서 거부당한 신청자는 스톡홀름과 말뫼 등 4곳에 있는 이민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다. 이민법원에서 거부당하면 이민항소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보호도 엄격하다. 2008년 12월 시행에 들어간 이주노동자 고용규정은 기업주들이 유럽 밖에서 노동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스웨덴의 모든 노동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이런 개방적인 정책의 결과, 국외에서 출생했거나 외국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주민이 현재 스웨덴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핀란드·독일·덴마크 등 주변국 출신들이 많긴 하지만 이라크와 이란, 소말리아 출신들도 각기 4만~6만여명 규모의 이주자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옛 유고연방 시절 건너온 이민자들과 유고연방 해체 뒤 형성된 나라들에서 옮겨온 이들도 총 15만명이 넘는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뒤 “난민을 받겠다”고 가장 먼저 선언한 것도 스웨덴이었다. 하지만 난민 수가 늘어나면서 반감을 가진 극우파들이 증가하고 있고, 지난해 9월 총선에서는 이주자 유입 제한을 주장한 극우 정당 스웨덴민주당이 제3당으로 부상했다. 

 

올들어서만 19만명의 난민이 유입되자 정부는 결국 난민 수를 통제하겠다고 했다. 모데르가 살고 있는 볼리덴 주민들의 시선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모데르의 파티에 온 29세 주민 페닐라 브룬스트롬은 알자지라에 “이 곳에는 그의 친구들이 살고 그는 이 곳을 좋아한다. 이번 파티에서 우리는 모데르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부가 난민 수를 통제하겠다고 했을 때 안도했다고 털어놨다. “일자리도, 집도 모자란다. 스웨덴 사람들은 새로 온 이들을 환영하지만, (난민들과) 서로 만날 기회는 이런 파티가 아니면 흔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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