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무슬림 ‘히잡’도 패션? 스웨덴의 ‘히자비스타’ 디자이너

딸기21 2015. 10. 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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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여성 디자이너 이만 알데베(30)는 스톡홀름과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등의 백화점에 매장을 낸 제법 알려진 패션디자이너다. 그의 ‘작품’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히잡이나 남성들의 머리수건인 터번을 응용한 패션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알데베는 스톡홀름의 요르단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무슬림 여성이다. 아버지는 이슬람 사원에서 설교하는 이맘이었다. 알데베가 어렸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스톡홀름에서 무슬림이 예배를 볼 수 있는 곳은 이민자 커뮤니티센터의 지하실 뿐이었다. 거기서 알데베는 쿠란에 대해 배우고, 이슬람식으로 도축된 ‘할랄’ 음식을 먹으며 무슬림 문화를 익혔다. 

 

특히 그는 ‘이맘의 딸’이었기 때문에 주변 무슬림 이민자들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고 처신해야만 했다. “여섯 살 때부터 히잡을 썼다. 화장을 하는 것을 비롯해, 무슬림 공동체 안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엄마와 엄마 친구들은 항상 색깔 없는 머리수건에 유니폼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심지어 코트 스타일도 똑같았다.”


터번을 쓴 스웨덴의 패션 디자이너 이만 알데베. 사진 www.imanaldebe.se


하지만 패션에 대한 관심은 억누를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졸업식 의상이나 결혼식용 옷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팔았고, 이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대학에서는 저널리즘을 전공했으나 그가 갈 길은 패션이었다. 무슬림 여성들을 위해 히잡을 변형해 쓰거나 ‘쿨하게’ 보이게 하는 법을 고안, 인기를 끌었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로부터는 히잡에 대한 거부감과 차별 섞인 반응을 얻기도 했으나, 히잡과 터번을 응용한 알데베의 작품들은 곧 유명해졌다. 

 

2006년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을 시작으로 유력지인 아프톤블라뎃 등에 잇달아 보도됐고 백화점 입점 제안들이 왔다. 특히 알데베가 최근 내놓은 ‘해피 터번’ 시리즈는 무슬림과 비무슬림 모두에게 인기가 있다. 그 몇년 전만 해도 백화점들은 히잡을 파는 것을 거부했었다. 특히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난 뒤, 스웨덴에서도 히잡을 쓴 여성들은 ‘무슬림=테러범’이라 여기는 시선 속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사진 www.imanaldebe.se

사진 www.imanaldebe.se


알자지라방송이 22일 전한 알데베의 사례는 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늘면서 무슬림을 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히잡’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문화를 수용하는 문제에서, 여전히 유럽은 논쟁 중이다. 비 무슬림 주민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이질적인 문화들을 동시에 수용해야 하는 무슬림 이주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알자지라방송은 히잡을 쓴 패셔니스타라는 뜻에서, 알데베를 ‘히자비스타(hijabista)’라 표현했다. 톰슨로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무슬림들은 2013년 한 해 패션에 2660억달러의 돈을 썼다. 하지만 무슬림 인구 중 젊은층 비율이 높은데다 패션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어, 이들의 의류비 지출은 2019년에는 484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유럽과 미국 패션브랜드들은 이 시장을 잡기 위해 ‘무슬림 패션’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스페인의 망고, 미국·프랑스 의류업체 DKNY 등은 무슬림의 금식성월인 라마단에 맞춘 제품들을 출시한다.

 

지난달 말 스웨덴의 대형 의류브랜드 H&M은 처음으로 광고에 히잡을 쓴 여성을 모델로 내세웠다. 주인공은 모로코인 아버지와 파키스탄인 어머니를 둔 무슬림 여성 마리아 이드리시(23)였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의류 리사이클링 캠페인 광고에 출연, 다양한 국적과 연령의 남녀 모델들 사이에서 체크무늬 히잡과 선글라스 차림을 선보였다.


H&M 광고에 등장한 마리아 이드리시(광고 영상 캡처). /연합뉴스

1990년대 이후 프랑스 등 유럽국들에서는 무슬림 이민자 여성들의 히잡을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볼 것이냐, 종교적·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볼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프랑스에서는 무슬림 여학생들이 공립학교에 히잡 차림으로 등교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알데베의 의상이나 이드리시를 내세운 H&M 광고 같은 것들이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히잡을 패션의 하나로 ‘정상화’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이런 논란에 대한 알데베의 태도는 단호하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도구로 삼겠다”고 말했다. 

 

2011년 스웨덴 당국은 히잡을 쓴 사람도 경찰이 될 수 있도록 처음으로 허용했다. 그 전까지 스웨덴에는 히잡이나 차도르, 터번, 혹은 유대교도들의 모자 키파를 쓴 사람은 경찰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다문화’를 포용하기 위한 조치일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반발로 극우파들의 폭력이 불거지기도 한다. 2013년 스톡홀름에서 히잡을 쓴 임신부들이 남성들에게 잇달아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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