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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나오키, '일본, 미국, 영상'

딸기21 2015. 5. 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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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상, 미국

사카이 나오키. 최정옥 옮김. 그린비



반짝이는 분석, 너저분한 일어 직역 번역. 일본식 한자어 그대로 나오고, 문장은 어수선. 하지만 그래도 꼭 읽어야 했던 책. 동아시아에 남아 있는 식민주의를 마디마디 곱씹어본다. 

사카이 나오키의 책들을 주르르 보관함에 넣었다. 임지현과의 대담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아 패스. 언제 절판될 지 모르니, 조만간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식민주의는 사람들 간에 차별을 만들었다. 이러한 사회관계는 개인의 태도나 심리를 규정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에, 단순히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식으로 인구를 양분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오늘날 식민지성이 이 정도까지 중요시되는 까닭은, 근대가 되어 신분에 의한 상하관계에서 해방되어 있었던 인간을, 우월감과 열등감을 이식함으로써 다시 민족이나 인종에 의한 상하관계의 멍에로 묶는 작업에서 식민지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6)


유동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서양인이나 백인서양으로의 회귀를 구했고, 인종주의에서 보증된 인종의 아이덴티티의 확실함을 구했다. 1980년대에는 서유럽에서, 1990년대 전반에는 미국에서, ‘서양으로의 회귀가 현저해졌다. 2000년대의 일본에서 보자면, 이전에는 식민지관계로 구성되었지만 지금은 환상에 불과한, 야스쿠니 신사가 상징하는 제국 일본으로의 회귀가 현저해졌다. 

일본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서양인이나 백인의 그것과 같은 행동을 재촉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다만 여기서 말해 둬야 할 것은, ‘동양’ ‘아시아또는 아프리카, 서양 과 비슷한 계급적인 관계·성적인 관계·식민지의 권력관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으로의 회귀는 서양과 대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자들 사이에 동양으로의 회귀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야기하고 만다. 나는 이렇게 대조적으로 아이덴티티가 구성되는 과정을 -형상화 도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해석했다. 내가 고찰하고 있는 것은 태평양 횡단적인 헤게모니에서 작동하고 있는 -형상화 도식이고, 이 헤게모니가 어떻게 식민지 관계를 온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이다. (14)

 

이 책을 처음으로 생각했던 계기는 국민이라는 집단의 패배에 대한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국민의 패배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국민의 패배와 개인으로서의 패배를 어떻게 연결 짓고 있는가

1990년대 초반, 나에게 있어서 패전은 제일차적으로는 미국의 패전, 1976년 베트남 철수 이후 동남아시아에 대한 미국 정책의 귀결을 의미했다. 미국의 패배는 어떠한 변화를 야기했는가, 어떻게 기억되는가, 누구의 책임으로 처리되는가, 이러한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정치가 전개되었다

국민의 패배는 인종의 표상방식에 변화를 야기했다. 또한 이는 남성성의 존재방식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고, 계급과 인종 간에 새로운 연상의 관계를 낳았다는 것을 차례로 알게 되었다. 유럽 남성의 남성성의 위기가 말해졌던 것도 이 시기였다. 개인의 패배뿐만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패배를 어떻게 표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자기획정 방식에 많은 변화를 야기했다. (30)

 

1950년대 초두까지 도쿄 어디서고 볼 수 있었던 이른바 팡팡은 주류 일본인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내가 통학하는 길 주변에는 미군 기지의 군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 노동자 여성들이 살고 있었다기지의 미군 병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 노동자 여성들과 우리 집 주변의 주민들 간에는 계층적인 차별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일본의 ()전후를 고찰할 때 그녀들을 무시하고 전후사를 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특히 불쾌감을 줬던 것은, 그녀들을 역사의 오점이나 오욕으로만 간주하는 자들이 썼던 전후론이었다. 그녀들의 존재를 소거함으로써 간신히 성립된 허울 좋은 전후사에 혐오감마저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일부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을 것이다.

패전의 굴욕이나 비참함을 담고 있는 다양한 경험은 일본인으로서의 동일성을 강화하기 위한 집단적 자기연민을 살찌우고 말았다. 그들은 집단적인 패배를 개인적인 패배로, 어떻게 접합했던 것일까. (33)

 

국민주의는 동시에 식민주의일 수 있다. 남성성의 유지가 바로 국민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과 동일시될 때, 국민주의는 국제적인 무대에서 하나의 국민이 우세가 되어 다른 인종이나 민족을 압도하는 세력을 가질 것을 희구하게 된다. (46)

 

그래서 종군위안부문제는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이 만든 종군위안소를 이용한 예전의 일본 군인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 일반이 과거를 상상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남성성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일본인일수록 종군위안소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61)

 

20세기가 되자, 식민지지배는 새로운 조직화를 필요로 했다. 식민주의에 의해 야기된 사람과 사람의 접촉은 점차 군사적인 제도 안에서 일어났고, 군사적인 영역은 점차 다면적으로 변해 갔다. 군사적인 지배에서 보자면, 식민지 군대의 군인과 식민지 주민의 접촉은 가장 먼저 생식기의 점막과 점막의 접촉이었다. 이런 지배체제에서 근대적인 군사제도는 원주민과 접촉한 군인의 점막을 관리하기 위한 방대한 위생관리 조직을 필요로 한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일본 제국주의에 한정된 문제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71)

 

일본제국이 붕괴된 뒤에도 위안부제도는 존속했다. 비록 경영에서 사유제를 강조하거나 고용에서 성 노동자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형태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과 일본·필리핀·오키나와·대만이나 한국 등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 간에 존재한 새로운 식민지관계의 근저에는 군사적인 지배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 규모로 미국의 국제 전략이 군사기지의 그물코로 지탱되고 있고, 그리고 그 군사적인 지배가 일본제국의 지배체제의 많은 부분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해도 아마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일본과 미국 식민지체제의 연속성에 대해서 충분히 주의하지 않는다면, 전후 일본의 특수주의와 미국의 보편주의가 공범관계에 있음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동아시아에서의 과거 식민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72)

 

성적인 관계에서 정복자의 역할을 맡고 싶어 하는 미군과 피정복자의 역할을 연기해야만 하는 한국, 필리핀 혹은 일본의 성 노동자는 미국 국민과 각국 국민 간의 식민지관계를 상징·대표하게 된다. 캐서린 H. S. 문은 미국 군인을 상대로 하는 한국 매춘부가 한국의 정부고관에 의해서 민간대사로 추거되기까지의 과정을 훌륭하게 분석하고 있다.

문에 따르면, 기지촌 성 노동자를 민간대사라고 부르거나 미군 기지 주변지역의 매춘을 민간외교로 간주하는 것을 반드시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국제이해에 공헌하고 있으며, 또한 외교의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매매춘은 미국·일본 또는 한국의 애국심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애국심이란 애초부터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에 의하면, 기지촌 정화위원회의 지도를 했던 문교부 장관은 한국의 매춘부는 1945년 이후 미국 점령군에게 몸을 팔았던 일본 매춘부의 정신을 본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헤게모니에는 동성사회성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로서 현존했음을 증언했던 것이다.

미국의 제국적 국민주의와 동아시아 위성국가의 국민-민족주의 사이에서, 미국의 다민족 보편주의와 전후 일본이나 한국의 민족적 특수주의 간에는 구조적인 상호의존 또는 공범관계가 있는 것이다. 애국심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전제로 하는 한에 있어서, 미군 기지 주변에서 일하는 성 노동자가 국민 사회에 했던 공헌은, 문교부 장관이 말했듯이 국민주의의 입장에서는 상찬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 남성과 미국 남성 간에 맺어진, 동성사회성의 표명 이외에는 그 무엇도 아니다이 동성사회성은 전후 천황제 담론의 일반적인 준거축이다. 그것은 일본과 미국의 공범관계의 일반적인 귀결로, 전후 일미 양국의 국민주의에 항상 동반해 있다. (79)

 

2001[북한의 일본인 여성] 납치문제를 계기로,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적대심은 파렴치한 형태로까지 심화되었다. 이를 봐도 알 수 있듯, 한국인을 향한 우월의식이 일본인이라는 동일성을 만드는 데에 둘도 없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인이라는 동일성은 일본인의 동일성을 쌍-형상적으로 떠받치는 대조항으로 존재한다.

식민주의가 야기한 조건은 명백하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식민주의의 은혜를 입어 온 1세계 사람들 사이에서, 식민주의에 의해 마련된 이야기나 감정의 존재방식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종군위안부 문제의 거절이 가장 상징적인 회귀운동으로 드러난다. (83)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것, 인종주의는 있어도 미국민은 시민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민족적 인 동일성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 이른바 국가 프로파간다가 제공해 온 설명이다. 그런데 일단 미국의 국내 정치에 눈을 돌리면, 끊임없이 질문되는 것이 민족적인 통일성의 정치이다. 민족성의 정치를 배려하지 않고 미국의 국내 정치를 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의 국민적 동일성을 말함에 있어서 민족 개념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 개념은 종종 인종 개념으로 대치된다. 아시아계 주민이 미국(아메리카) 민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미국의 민족주의에 의한 것이다. (105)

 

1950년대 이래로 동아시아를 제재로 만들어진 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어떨 때는 존 웨인 또 어떨 때는 그랜 포드가 연기한 미국을 대표하는 주인공은 원주민에게 미국적 가치의 훌륭함을 교화하고 과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디어 헌터의 주인공들에게서는 그렇게 선교사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없다. 그 대신, 여기에는 원주민에 대한 거의 병적인 공포가 있다. 이 공포는 적=고문자=베트남인=아시아인=비인간이라는 연쇄를 만들면서, ‘고향베트남이라는 두 개의 이질적 세계 사이에 심리적인 장애를 만들어 갔다. 미국 군인들은 패배자 혹은 장애자로서 베트남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디어 헌터가 베트남인과 아시아인을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야 했던 이유는,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 역사의 피해자다라는 바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없어서 안 되는 절차였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피해자의식은 제국적 국민주의가 자신의 제국주의적 행동의 결과에 직면했을 때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인을 위한 상투적 수법이다. (123)


이러한 부인에는 두개의 서로 모순되는 욕구가 존재한다하나는제국주의적인 정책은 국민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일부 군사전문가와 정치가에 의해서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행해지는 사태로 해석하고자 하는 욕구이다이러한 해석에서 보면베트남귀환병은 실로 성가신 존재가 된다

한편 국민공동체는 애국자를 포용해나라를 위해 희생한 무명전사를 사회 안에 넣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미국의 여론은 이 두 모순된 욕구 사이에서 요동쳤다베트남 귀환병과 고향에서 베트남 세계를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 간의 분열은국민공동체를 구성하는 데에 깊은 문제를 낳는다이 분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속이고 갈 것인가, 이것이 국민공동체를 재생산하는 데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다. (127)

 

국민의 동일성은 국민에서 배제된 것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국민은 국민이 아닌 자 혹은 반국민에 의존하는 한에서만 자기 한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식민주의적 관계를 잃었을 때 원주민이 대둥하게 반응하고 반발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자기인지의 위기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적 국민이 왜 나비부인적인 원주민 여성의 형상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의 자긍심을 유지하기 위해 설정된 원주민과의 관계를 남겨, 그런 관계에 변용을 야기하는 원주민과의 만남을 부인하기 위해서이다. 식민주의·제국주의의 문맥에서 봤을 때, 인종주의와 섹시즘은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묶여 있다. 우리로 하여금 인종차별의 문제가 성차별을 고찰하는 쪽으로, 또한 성차별의 문제가 인종차별을 고찰하는 쪽으로 되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5)

 

금기가 되었던 것은 히로히토의 면책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히로히토 무죄설을 구축하는 데 미국의 일본전문가가 적극적으로 담당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전후 천황은 미국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만주국의 황제제가 일본의 제도였듯 전후 천황제는 미국의 발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후 반세기를 거치면서, 천황제를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보는 신화적인 전제 자체가 제도로서 기능해 버렸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는 일본 국민에게 국민적 전통이 전전부터 연속한다는 믿음과 일본 문화의 특수성을 허용함으로써, 전후 일본의 국민주의의 근거 자체를 준비했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에 국민주의를 적극적으로 양성함으로써, 극동을 관리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적인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제국주의적 헤게모니에서 보자면, 미국과 일본 간의 공범관계를 상징하는 천황제라는 제도는 공범관계를 부인하는 상징으로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 끝까지 옹호되어야 했던 것은 미국의 정책과 일본 천황제의 거리였고, 쇼와 천황의 책임 추궁과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어디까지나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252)

 

군위안부 문제 같은 과거의 범죄로 '지금' 추궁당하는 일본인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사카이 나오키의 말은, 베트남에서 '우리'가 저지른 짓들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어떤 주체의 행위가 국욕(國辱)인지, 즉 국민에게 부끄러움을 구성하는지 결정짓는 것은 우리이외의 사람들의 시선이다

동포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가까운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일본 국민들 사이에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은폐해 왔던 것에 분노하는 자도 없을 것이고, 쇼와 천황의 전쟁책임을 감히 물으려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본인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기묘한 믿음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친밀함은 국민적인 공감에 기반을 둔 것이고, 이 공감은 공상의 심급에서 성립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적대시하는 좌익이란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자도 아니고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자도 아니다. 과거의 역사적인 행위로 현재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 즉 공상된 친밀함에서 깨어나려는 자들이다. (263)

 

공감으로 묶여진 우리이외의 타자의 시선을 무시할 때, 사람은 타자로부터의 잠재적인 부름까지도 말살하고 있다. 분리가 있는 곳에서는 부름에 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응답의 의무라는 의미에서의 책임에서 또한 면제된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타자와 거리를 두는 것이고, 차별을 도입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이 창피당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공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의 부인과 책임의 회피를 허락하는 시나리오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작업이 국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종군위안부기술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삭제하자고 소리 높여 말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사람들을 동요시키는 것은 부끄러움의 부인과 책임의 회피를 가능하게 하는 시나리오, 즉 이데올로기적인 공상인 것이다. (287)

 

정반대의 선택지에 직면할 수도 있다. 내가 혐의를 받는 국민·민족에 속한다면 나에게 혐의를 두는 것은 당연하고, 나는 유죄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유죄가능성과 유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무죄라고 생각하는 나는 문책자에게 응답함으로써 혐의를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고 또한 혐의에 반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책자와 나 사이에 응답책무의 상호성이 생겨나는 순간은 바로 같은 시간을 살아갈때가 아닐까.당신은 나를 고발한다. 그러나 고발하는 당신도 비슷한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반론이 나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개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가능성을 검증하는 것이 응답책무의 상호성을 유발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요컨대 만약 당신이 같은 죄를 저지를 경우 당신을 고발할 권한을 인정받는 한에서, 나는 나의 유죄성을 증명하는 절차를 승인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292)

 

책임을 다하는 것은 응답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응답 이상의 것을 하지 않고는 책임을 완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책을 당하는 자가 곧 유죄이며 사죄해야 하는 입장에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저 유죄가능성을 보여 줄 뿐이다

책임을 다한다고 함은 나에게 책임을 묻는 자들과 나의 유죄가능성을 논의하는 것, 나에게 책임을 묻는 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말을 거는 설명의 작업까지도 담고 있다. 비록 내가 나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어도 그들에게 응답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역사적 진공 속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21)

 

국민적 주체, 책임 그리고 역사라는 세 항의 관계를 고찰한 이후, 우리는 왜 위안부문제가 중요한지를 새삼 알 수 있다. 국민차별이나 민족차별에 따른 문제인 이상, 전쟁 중의 침범 행위에 관계할 수 없었던 일본인이나 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까지 전쟁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의 일본인 대부분은 일본 패전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종군위안부에 형사적 책임을 직접적으로 질 수는 없다. 책임을 직접적으로 져야 하는 자들은, 전쟁기간 동안 다양한 수준으로 조직적 범죄로서 종군위안부제도에 가담한 당시 천황의 적자와 일본 점령지역에서 일본군의 앞잡이로 행동했던 자들일 것이다. 그러면 조직적 범죄인 종군위안부제도에 가담한 당시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단순한 응답을 넘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왜일까. 요컨대 포스트콜로니얼한 책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우연히 일본 땅에 태어나, 일본 국적을 얻었고, 일본 국가의 보호를 받아온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적 범죄로서의 종군위안부제도에 가답한 당시 일본인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탄핵한다. 나는 그들이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도록 노력할 것이고, 그들의 범죄를 은폐하는 인간과는 우호관계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이라고 내가 그들과 공범관계를 가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음을 공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326)

 

전쟁범죄 등에서, 범죄자와 내가 동포라는 사실이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있고, 전쟁책임을 묻는 사람들의 시선 안에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물음에 답하는 일은 자신이 유죄가능성의 입장에 있음을 부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강요한 일본인이라는 규정에 항의하면서 일본인의 내실을 크게 변화시켜 가는 일이다. 단순한 유죄가능성의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책임 단계에서 유죄의 정도나 전쟁범죄와 개인의 관련성을 탐색해 가는 일이다. 전쟁범죄자를 일본 국민 안에서 확실하게 떠미는 일이다. (326)

 

그것은 책임을 묻는 자들이나 조직적 범죄로서의 종군위안부제도 희생자들에게 나는 당신을 친구로 선택한다. ‘나는 동포가 아니라, 친구인 당신과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 살아갈 것을 선택한다고 확실하게 보여 줄 의무를 받아 안는 일이다.

종군위안부제도의 책임을 묻는 자들이나 조직적 범죄로서의 종군위안부제도의 희생자들에게 일본인 전체가 사죄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다. 사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전쟁책임이 있는 자들을 적발하고, 책임을 묻는 자들이나 조직적 범죄로서의 종군위안부제도의 희생자들 앞에 그들을 데려가는 일을 게을리 했던 일에 대해서다. 일본인의 국민적 통합을 존중한 나머지. 국민적 통합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의를 다하는 것을 게을리 했다는 점, 그들을 적발하고 처단함으로써 사회를 변혁시켜야 했는데, 그것에 실패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다.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