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소년 유스터스 우와예수는 3살 때 고아가 됐다. 1994년 르완다 후투족과 툿시(투치)족 사이에 일어난 제노사이드(종족말살) 와중에 부모가 희생된 것이다. 적십자 구호요원들이 처참한 학살 현장에서 우와예수를 비롯한 네 남매를 구해냈다. 적십자의 돌봄 속에 자라던 우와예수는 구호요원들이 1998년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고향 마을에 팽개쳐지다시피 했다. 가뭄이 들었고, 기근이 찾아왔다. 2년 뒤 소년은 형과 함께 걸어서 수도 키갈리까지 갔다.
우와예수는 키갈리 외곽에 있는 루비리라는 쓰레기장에서 한동안 살았다. 불에 탄 자동차가 그의 집이었다.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아 먹고 옷도 주어 입었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을 때도 많았고, 목욕은 1년에 한 번 할 수 있을까 말까였다. 아프리카에는 호랑이가 없지만, 어린 우와예수는 “호랑이가 나타날까봐 겁이 나서” 밤새 잠 못 이루고 덜덜 떨기도 했다.
사진 우와예수 페이스북.
우와예수가 아홉살이 된 2001년의 어느 일요일, 미국 출신의 구호활동가 클레어 에피옹이 쓰레기장에 들렀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낯선 외국인을 보고 도망쳤지만 우와예수는 그러지 않았다. 굶주리고 지저분한 소년에게 구호활동가는 “너는 어째서 도망치지 않았냐”고 물었다. 우와예수의 대답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르완다 학살이 벌어진 지 어느 새 20년이 지났다. 지난 4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각국 대표들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르완다 제노사이드 20주년을 추모했다.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국제사회의 무책임과 무기력을 자책하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20년 동안 르완다는 새 정부를 세우고 정치적 안정과 경제개발을 향해 착착 나아가고 있다. 르완다의 성과에 국제기구들은 이견 없이 높은 평점을 매긴다. 하지만 르완다 정부의 성취 못잖게, 역경을 헤치며 살아온 고아소년 우와예수의 삶도 엄청난 변화를 거쳤다.
이제 22살이 된 우와예수는 올 가을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다. 앞으로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22일 ‘쓰레기장의 고아 소년’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한 곳의 학생이 된 우와예수의 사연을 인터넷판 머릿기사로 소개했다.
우와예수의 인생을 바꾼 것은 13년 전 쓰레기장에서의 만남이었다. 에스더재단이라는 자선단체에서 일했던 에피옹은 우와예수를 재단이 운영하는 고아원에 받아들이고 학교에 보냈다. 우와예수는 첫 해부터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그는 영어·프랑스어와 동부 아프리카에서 널리 쓰이는 스와힐리어·링갈라어를 배웠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자선재단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다. 하버드대는 매년 25명 정도의 아프리카 학생을 선정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기회를 준다. 해외입학담당관이 직접 아프리카를 방문해 입학시킬 학생들을 선발하기도 한다.
우와예수는 미국에 와서 처음 먹어본 랍스터, 동성애자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에 놀랐던 일 등을 뉴욕타임스에 털어놨다. 미국의 풍요로움에 놀랐지만, “이렇게 부유한 나라에서 집 없는 사람들이 구걸을 하는 것을 보니 빈부에 대해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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