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딸기21 2014. 10. 13.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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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달빛을 받아 반짝이던 연못의 수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지. 그런 네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물에 비치는 달빛 같은 사람이라야 너의 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준비에브, 애인 있어?" 넌 깔깔대고 웃으며 고개만 내저었지. 네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한 계절은 꽃을 피우고, 한 계절은 열매를 맺고, 다시 어떤 계절은 사랑을 가져다주었지. 인생은 그렇게 쉬웠어.

생 텍쥐페리의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린왕자>나 <야간비행>보다, 나는 이 구절이 실린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라는 책을 더 좋아했다. 특히나 저 문구의 마지막 문장, 인생은 그렇게 쉬웠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연상케 하는 청춘의 한 때. 먼 훗날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인생은 그렇게 쉬웠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적어도 삶의 어느 한 때에 나는 인생이 그렇게 쉽다 생각했다고, 웃으며 돌아볼 수 있을까.

그런데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삶은 쉬이 흘러가지 않는다. 넘기 어려운 고비나 간난고초가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늘 우연이, 때론 수상쩍은 사건이 끼어든다. 6년 전의 어느 날을 떠올려 본다. 여름휴가 전날이었다. 일은 많았고, 뭐라도 좀 해놓고 휴가를 떠나야 했기에 늦도록 회사에 남아 있었다. 그날 밤 회사 문을 나서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그 사람들의 무리 속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던 것만 말해두자. 아무튼 나는 그날 밤, 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일해왔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우연은 끼어든다.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사건이. 어쩌면 그래서 삶은 재미있고, 때로는 힘겹고, 앞날은 예측불허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MBC 노조위원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해고된 박성제 기자의 책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를 읽었다. 이런 종류의 에세이에 나는 익숙지 않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 가을날의 햇살을 받으며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겼다. 책은 재미있고 우습고 아프고 슬펐다. 아마도 책의 앞쪽 3분의 1을 읽으면서는 좀 울기도 했던 듯 싶다. 책은 "그저 살다 보니 해직된 MBC 기자, 어쩌다 보니 스피커 장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다. 띠지의 표현을 빌면 "20년째 다니던 직장에서 졸지에 쫓겨난 중년 아저씨의 우여곡절 인생 2막 개척기"다.

"만약 내가 헐크였다면 그 순간 인사위원회장은 풍비박산 났을 것이고, 내가 늑대인간이었다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갈가리 찢긴 시체가 됐을 것이며, 내가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발사할 수 있었다면 모두들 시커먼 숯덩이로 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침착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어차피 해고는 정해진 것. 차분하게 대처하자. 그게 이기는 거다. 억울함과 분노를 꾹꾹 눌러 삼키면서, 천천히, 경고하듯, 최대한 냉정해 보이도록, 나는 말했다."

한국의 밥 우드워드를 꿈꾸며 특종을 줄줄이 했던 잘 나가는 기자의 취재 스토리라면 애당초 나 같은 아둔하고 꿈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 책장을 펼칠 일도 없었을 터다. 어쩌다 보니 해고됐고, 직장 잃고 마냥 놀 수만은 없으니 '인격수양' 삼아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고, 식탁과 와인장 따위를 만들다가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스피커 만들기에 도전했고, 하다 보니 디자인에 소질이 있어서 스피커 회사를 차려 나름 '사장님'이 된 아저씨. 그는 '어쩌다 보니'라 말하지만 우린 안다. 인생의 '어쩌다 보니'에 100%의 우연은 없다는 것을.

사실 나는 기자로서 그의 모습을 잘 모른다. 어떤 분야에서 주로 취재했고 어떤 스타일의 리포트를 했으며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지 모른다. 방송 뉴스조차 제대로 안 보는 나같은 게으름뱅이는 보도를 하는 그의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 가운데 그가 '어쩌다 보니'의 주인공이 된 것은 그가 회피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그는 '부작위'의 혐의로부터는 벗어나 있다.



나는 그가 한 커뮤니티 웹사이트에 올려 놓은 목공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영상 속 그는 '사포질'을 하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음악 관련 동호회 사이트에 올린 동영상이었지만 배경음악 하나, 대사 한 마디 없이 그는 정말 사포질만 했다. 만약 그가 차인표 같은 배우였다면 '분노의 사포질'이 됐을 것이고 김동성 같은 선수였다면 '분노의 질주'가 됐겠지만 안타깝게도 동영상 속 그는 얼굴도 몸매도 '분노의 OOO'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앞치마를 걸친 곰처럼 그저 사포질만 하고 있었다. 그가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오늘날의 그가 된 건 그렇게 사포질 하듯 살아왔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 텍쥐페리의 책으로 돌아가 본다. 


"캄캄한 어둠 속을 비행하며 우리는 밤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불빛, 어둠을 뚫고 새어나오는 불빛들. 몇몇은 외로운 집에서 나오는 빛이리라. 탁자에 팔꿈치를 괸 채 등잔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농부는 자기의 소망을 누군가 알아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자기의 소망이 빛을 품고 하늘까지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등잔이 자기 집의 초라한 식탁만을 밝혀 준다고 생각하지만 절망하듯 비틀거리며 타오르는 그 불빛의 소리를 누군가는 먼 곳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책 한 권으로 타인의 인생을 훔쳐보는 것은 재미있지만 어떤 사람의 삶도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책에는 익살이 넘쳐난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튄' 아빠 같이 태평하다. 그러나 책은 소설이 아니다. 유신 시절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평생 언론민주화 투쟁을 해온 성유보 선생이 며칠 전 돌아가셨지만, 우리 앞에는 우리 시대의 해직 기자(언론인)들이 남아 있다. "그 때, 인생은 그렇게 쉬웠어"라고 언젠가는 이 중년 아저씨도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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