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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라투슈, '탈성장 사회'

딸기21 2014. 9. 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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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 사회- 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

세르주 라투슈. 양상모 옮김. 오래된생각. 8/29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로 기만하지 말라, '발전'은 그 자체로 '지속 불가능함'을 내포하고 있다! 탈성장이라고 말하라. 그 말뜻이 와닿지 않는다고? 이상한 번역어라고? 그렇다면 누구나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의,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라! '스와데시'라고, '피드나'라고, '밤타레'라고, '수막 카우사이'라고! 


탈성장에 대한 책은 몇 권 봤지만 그래도 또 재미있다!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탈성장이 가지는 사회 질서 파괴의 잠재력을 중화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종종 탈성장을 지속 가능한 발전의 흐름 속에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탈성장이라는 슬로건이 탄생한 동기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확장적 용법이 만들어내는 기만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단어의 정의로는 동어반복법이며 실제 내용으로는 모순어법이다. 발전이라는 개념은 이 개념의 위대한 이론가인 로스토에 따르면 자기 유지적인 경제 성장을 이미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동어반복이다. 발전은 항구적인 것도 유지 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순어법이다. (63쪽)


오늘날 신화로서의 지속 기능한 발전은 형용사를 붙인 개발[인간 개발, 사회 개발 등]이든 그렇지 않은 개발이든 다양한 개발 정책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공평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지정학적으로 용인 가능하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발전이다. 그야말로 블랙 스완[극히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탈성장에 의한 성장 사회와의 단절은 언어와 물적인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상념의 탈식민지화이며 다른 세계의 구축을 의미한다. (61쪽)


역생산성은 이반 일리치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이다. 역생산성이라는 생각은, (사회적 발명이든 기술적 발명이든) 제도는 초기 단계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지만 어떤 수준을 넘어서면 부정적인 효괴를 낳게 된다는 관찰에 기초한 것이다. 의료는 인간을 병들게 하고 학교는 인간을 무지하게 만들며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은 인간을 가난하게 한다. 


장 로베르와 장 피에르 뒤퓌의 공동 작업으로 시행된 역생산성의 분석 중 가장 극적인 것은 자동차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오래전에 일정 수준을 넘어선 이후, 자동차가 가져온 것으로 생각되는 이동의 자유는 헛된 꿈이 되었다. 대도시에서는 자동차의 수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보행자가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자동차 교통 시스템은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베이징에서 자동차 이용자의 평균 이동 거리는 시간당 8킬로미터를 초과할 수 없다. 만약 자동차에 의한 이동 시간에 정체에 의한 정지 시간을 더하고, 그 위에 자동차 구입비를 내고 또 휘발유, 타이어, 통행 요금, 보험, (교통사고시) 범칙금을 지불하기 위하여 일하는 시간을 더한다면 자동차의 총 유효속도는 시간 당 6킬로미터, 즉 보행자의 보행 속도를 초과하지 못한다. (123쪽)


치아파스에서는 벨기에 정도의 큰 지역이 사파티스타(자치구)로 조직되어 있다. 2003년 8월, 미디어가 이미 이 봉기를 잊고 다른 곳에 주목하고 있을 때, 다섯 개의 ‘선한 정부평의회’가 구성되었다. 이 다섯 개의 평의회는 각각이 하나의 카라콜('달팽이')에 자리를 잡았다. 카라콜은 첼탈, 초칠, 출, 토홀라발, 맘, 소케 등 수천의 원주민 그리고 비원주민 가족의 생활을 조직하는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이다. 


에보 모랄레스는 2008년에 원주민의 지식을 가르치는 대학을 최초로 설립했다. 그해 9월 28일 에콰도르에서 채택된 신헌법은 일인당 국내 총생산의 최대화가 아니라 ‘수막 카우사이’라는 원주민의 이념을 국가의 목표로 하고 있다. 수막 차우사이는 케추아어로 ‘[지역에 뿌리 내린] 충실한 삶을 의미하는 말이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에서 자연은 권리의 주체로 인정되며 그 결과는 ‘천연의 부’의 착취를 탐하는 해외의 광물 자원 개발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히는 것이었다. 물은 공유재산으로, 자연과 인간에게 필수적인 기본재로 선언되었다. 즉 물은 불가침의 유산이고 만인의 것이며 사유화할 수 없다. 에보 모랄레스는 제3회 아메리카 사회포럼의 ‘10대 원칙’에 이러한 원리를 통합적으로 정리했다. 이 견해는 모두 볼리비아인 오스카 올리베라가 지적 했듯이, “물은 어머니인 대지(파차마마)를 비옥하게 하는 세계 창조의 신(위라코차)이 주신 것이며, 생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원주민의 생각에서 유래한다. (23쪽)


내가 2007년에 프랑스에 제안한 10가지 정책 방안은 이러한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1) 생태 발자국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시킨다. 

(2) 적절한 환경세(세금)에 의한 환경 비용의 내부화를 통해 교통량을 줄인다. 

(3) (경제·정치·사회적) 제반 활동의 재지역화를 실시한다. 

(4) 농민 주체의 농업(전통농업)을 재생한다. 

(5) 생산성 증가분을 노동 시간 절감 및 고용 창출에 할당한다. 

(6) 대인관계 서비스를 기반으로 생산을 촉진한다. 

(7) 에너지 소비를 4분의 l까지 줄인다. 

(8) 광고 공간을 크게 제한한다. 

(9) 과학 기술 연구 방향을 전환한다. 

(10) 화폐를 재영유화한다(지역 사회에 환원한다). (74쪽)


이 목표에 어떤 명칭을 부여해야 한다면, 그것은 이븐 할둔의 말에 따르면 ‘성숙(개화)’을 의미하는 움란(umran)이며, 간디에 따르면 ‘만인의 사회적 조건의 개선’을 의미하는 스와데시(국산품 장려)-사르 보다야(모든 사람의 깨달음)이다. 서아프리카 투쿨로르족의 말로는 ‘모두 사이좋게 지내다’를 의미하는 밤타레(bamtaare)이며, 에티오피아 보라나스족의 말로는 ‘건강하고 모든 걱정에서 해방된 인간의 밝은 표정’을 뜻하는 피드나/가비나(fidnaa/gabbina)이다. 또한 에콰도르 케추아족의 말에 따르면 ‘선한 삶’이라는 목표는 단순명쾌 하게 ‘(지역에 뿌리를 둔)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수막 카우사이(Sumak Kausai)이다. 


현재 곳곳에서 현실화되기 시작하는 이러한 지역 고유의 표현은 탈개발의 희망을 싹퇴우고 있다. 문자 그대로 데크루아상스의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하며 탈개발 패러다임이 본래 다원적인 것을 감안하면 완벽한 번역은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각 사회 문화는 각각의 방법으로 생산력 지상주의의 전체주의에서 탈출해 뿌리와 전통의 다양성을 기초로 하는 정체성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85쪽)


프랑스 작가 에르베 르네 마르탱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빈곤국 주민에게 자국의 국내 총생산의 감소 이상으로 좋은 것이 달리 있을까...... 그들 국가의 국내 총생산의 증가는 경제적 손실의 증대를 나타내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빈곤국 주민에게 경제 활동의 감소(탈성장)란 자연 자산의 보존, 힘든 공장 노동에서의 탈출, 자급자족의 농업·가내 공업·소규모 상업의 회귀, 그들 사회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관리히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곤경에서 벗어나는 요령이 풍부한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비공식 영역의 아프리카인에게 상황이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세계 시장에서 크게 소외되어 왔기 때문에 주식 시장의 변동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생존 기술을 배워 왔다. 2008년 10월에 마푸토(모잠비크)에서 개최된 비아 캄패시나(농민의 길: 식량 주권을 주창한 국제농민운동 조직) 세계 회의에서 남반구 국가의 전통 농가의 대표는 이 점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북반구 국가의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남반구 나라의 전통 농가에게 금융 위기란, 그들이 성장 사회의 상념의 사슬을 끊는 것이 가능하다면 경제적 의존의 사슬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한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 하나는 아프리카인이 그들의 자동차 산업을 회복시키기 위해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에 자동차 토착 산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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