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도시 Rebel Cities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8/8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많았지만... 정리하기 힘드니, 스크랩만.)
내가 말하는 도시권에 대한 요구는 도시 공간의 형성 과정에 행사하는 권력, 즉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고 뜯어고치는 방법을 지배하는 권력을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28쪽)
자본주의는 도시 공간의 형성에 필요한 잉여생산물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 정반대의 관계도 성립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려면 도시 공간의 형성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본주의 발전과 도시화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29쪽)
도시권은 점차 사적 이익집단 혹은 준(準)사적 이익집단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 시장인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는 개발업자와 월스트리트, 초국적 자본가계급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뉴욕을 재편하고, 뉴욕을 고부가가치 산업이 들어설 최적의 입지, 최고의 관광 여행지로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억만장자 폴 앨런(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은 시애틀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세계 최고의 부자 카를로스 슬림이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도로를 자갈로 재포장했다.
뉴헤이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교 중 하나인 예일 대학교가 시 당국이 재정곤란으로 도시 재투자를 하지 못하는 틈을 파고들어 도시 구조를 입맛에 맞게 뜯어고쳤다. 볼티모어 동부에서는 존스홉킨스 대학교가, 뉴욕 몇몇 지역에서는 컬럼비아 대학교가 예일 대학교와 비슷한 짓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 정치·경제 엘리트는 자신들의 특수한 수요와 욕구에 가까운 모습으로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58쪽)
1960년대부터 미국 도시의 저소득층은 질 낮은 식품 등 기본 생활필수품을 비싼 값으로 구입해왔다. 또한 저소득층 밀집 지역일수록 공공 서비스가 부족한 탓에 그곳에 사는 저소득층은 금전적으로나 실무적으로 추가 부담을 떠맡는 부당한 일을 겪어왔다... 핵심은 수많은 대도시에서 취약계층을 상대로 착취와 약탈이 끊이지 않고 자행된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싸워 실질임금을 얻어 냈다 해도 소비 영역에서 벌어지는 착취 활동이나 약탈 활동을 통해 자본가는 그만큼을, 아니 그 이상을 손쉽게 도로 가져간다. 도시 저소득층 대다수는 노동을 과도하게 착취당하는 것도 모자라 빈약한 자산마저 약탈당하고 있다. 이는 재생산의 최저수준을 유지하는 그들의 능력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소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08쪽)
공공 공간과 공공재를 영유하거나 공유재의 본래 기능을 발휘하게 하려면 시민과 민중의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사회의 여러 세력이 상호이익을 위해 공교육을 영유하고 강화할 때 공교육은 하나의 공유재로 자리 잡는다.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 등은 공공 공간이지만 사람들이 거기 모여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요구의 목소리를 높임에 따라 일정한 도시 공유재가 되었다.
도시의 공공 공간과 공공재를 공동의 목적을 위해 영유하려는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공유재를 보호하려면 공유재의 질을 떠받치는공공재의 흐름을 보호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공공재에 지출하는 재정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공유재도 줄어들고 있다. (137쪽)
지대를 우려먹는 것은 공유재를 영유하는 첫 번째 수단이다. 내부의 민족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도시의 중산계급화를 저지하려고 분투하는 지역사회 집단은 갑자기 지역 부동산 가격(그리고 부동산세)이 치솟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활기찬 거리, 다채로운 다문화 생활양식 등 그 지역의 ‘개성’을 부유층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이렇게 파괴적 위력을 과시하는 사이 지역 원주민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유재를 약탈당할 뿐만 아니라 종종 지대와 부동산세가 치솟는 바람에 쫓겨나기까지 한다.
공유재 자체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고 변질되는 일도 벌어진다. 미국 볼티모어 남부에서는 도시 중산계급화를 통한 지역사회 재활성화를 추진하는 정책 탓에 활력과 생기가 넘치던 거리 생활은 사라지고 말았다.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아니아 지구, 함부르크의 세인트파울리 지구, 뉴욕의 윌리엄스버그 지구와 덤보 지구도 볼티모어 남부와 비슷한 운명에 처할 위기에 있다. 뉴욕 시의 소호 지구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망가졌다. 지역사회에서 활기차고 재미있는 일상 생활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부동산 개발업자, 금융업자 상류층 소비자의 약탈 행위에 직면해 일상생활을 잃어버리고 도시 고유의 사회적 상상력을 빼앗기고 만다. (145쪽)
오늘날 도시에 투입된 집단적 노동이 생산해낸 방대한 공유재가 곧 대도시라고 하면 어떨까? 공유재를 사용할 권리는 공유재를 생산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 사실은 당연히 도시를 만들어낸 집단적 노동자가 도시권을 요구할 근거가 된다. 이제 도시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은 자본을 겨냥한다.
도시 정치에 수반되는 부패의 상당 부분은 공공투자의 분배 방법과 관련이 깊다. 다시 말해 공유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권적 부동산 소유자의 개인적 자산을 증진하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쪽으로 공공투자를 분배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도시 공공재와 도시 공유재의 구분은 유동적이고 위험하리만큼 허술하다. 국가가 공동이익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도시 개발계획에 보조금을 지급할 때 지주, 금융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사례는 정말 쌔고 쌨다. (146쪽)
볼티모어의 사례를 보자. 저임금·불안정 고용 노동자의 조직가는 볼티모어 이너하버 지역 전체를 모든 노동자가 생활임금을 받아야 하는 ‘인권구역’, 즉 일종의 공유재로 선포했다. 볼리비아 엘 알토 El Alto 에 깊게 뿌리 내린 지역단체 연합은 2003년에서 2005년에 걸쳐 주민 전체가 들고 일어나 지배 정치권력과 맞선 이른바 엘 알토 반란의 거점 구실을 했다. 인클로저는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일시적으로 이용할수 있는 정치 수단이 될 수 있다. (147쪽)
이중의 정치 공세가 필요하다. 먼저 국가를 향해서는 공공 목적에 부합하게 공공재를 공급하라는 공세를 펼쳐야 한다. 더불어 주민이 스스로 조직화에 힘써 비상품적 재생산 공유재와 환경 공유재의 질을 확대하고 높이는 방향으로 공공재를 영유하고 이용하고 보완해야 한다. (159쪽)
독점 지대를 획득하려는 시도로 인해 어떻게 지역에서 꽃핀 문화와 전통이 경제학의 계산 대상으로 편입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게 유익하다. 열렬한 세계화 옹호자들 대부분은 독점지대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개발을 지지한다.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에서 흔히 벌어지는 폭력사태와 마약전쟁을 생생한 화면에 담은 브라질 영화 <시티 오브 갓>이 2002년 개봉된 이후 기업가 정신에 충만한 관광산업은 위험도가 높은 빈민가 몇 개를 관광 코스로 묶은 관광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179쪽)
교통·통신이 발달하고 무역 장벽이 낮아져 독점력이 사라짐에 따라. 독점지대의 기반인 집합적 상징자본을 둘러싼 투쟁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문을 열자마자 일대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을 어떻게 셜명할 수 있겠는가? 또 국제적 이해관계에 민감한 거대 금융기관이 구겐하임 프로젝트에 기꺼이 자금을 댄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바르셀로나가 유럽적 도시 체계에서 두드러진 위상을 차지하는 이유는 상징자본과 뛰어난 도시임을 보여주는 징표를 착실히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카탈루냐의 독특한 역사와 전통의 발굴, 카탈루냐에 산재한 예술 작품과 역사적 건축물(가우디의 건축물도 당연히 포함해서)의 홍보, 독특한 생활 양식과 문학전통의 마케팅이 매우 중요했다. 카탈루냐의 독특함을 찬양하는 책과 전시회, 문화 이벤트 등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런 모든 것들은 독점지대를 획득할 절호의 기회를 연 바르셀로나 올림픽 덕분에 빠르게 추진되었다(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던 사마란치는 마침 바르셀로나에 대규모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성공을 거두자마자 모순에 깊게 빠져 든다. 다국적 상품화의 물결에 휩싸이자 바르셀로나만이 가지고 있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약해지고 있다. 워터프론트 개발은 후반부로 가면서 다른 나라와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다국적기업이 운정하는 대형 점포가 지역 토박이 상점 자리에 들어서며, 도시의 중산계급화 탓에 오래전부터 살던 주민은 쫓겨나고 유구한 역사적 건물은 철거되고 었다. 결국 오늘날 바르셀로나는 기존의 탁월성 중 일부를 잃어버리고 있다. 게다가 천박한 디즈니화 징후조차 엿보인다.
아래의 물음은 이런 모순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누구의 집단적 기억이 존중받아야 하는가? 이카리아인 같은 아나키스트인가? 카탈루냐 민족주의자인가? 프랑코와 격렬하게 투쟁한 공화주의자인가? 안달루시아 출신 이주민인가? 아니면 사마란치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프랑코를 지지한 인물인가? 누구의 미학이 정녕 평가받을 만한 것인가? 오늘날처럼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는 투쟁의 초점이 탁월성과 집합적 상징자본의 축적에 맞춰진다. 여기서 누구의 집단적 기억, 누구의 미학, 누구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온갖 문제가 제기된다. (187쪽)
리버풀에 있는 앨버트 독 Albert Dock 복원 사업을 시작할 무렵 노예무역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을 지워 없애려는 시도는 카리브해 계통 주민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주변화된 주민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적 연대의 움직임이 일었다. 베를린에 남은 흘로코스트의 기억은 끝없이 이어지는 논쟁의 불씨로 작용했다. 상징적 의미가 확고하게 정립돼었다고 상삭처럼 여겨지는 아크로폴리스 같은 고대 기념물조차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논쟁은 간접적이기는 해도 광범위한 정치적 의미를 담는다. 대중을 동원해 새로운 도시 공유재를 생산하는 것, 집합적 상정자본을 축적하는 것, 집단적 기억과 신화를 동원하는 것, 특수한 문화적 전통에 호소하는 것, 이런 것은 조우를 막론하고 모든 형태의 정치적 행동에서 중요한 측면을 이룬다. (188쪽)
독일이 통일된 후 베를린 재건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수많은 논쟁을 생각해보자. 베를린의 상징자본을 정의하려는 투쟁이 전개되면서 다양한 세력이 충돌했다. 집단적 기억, 신화, 역사 문화,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정체성 투쟁도 벌어졌다.
지방 정부기관의 후원을 받는 지역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 중에는 l9세기 베를린 건축양식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분파들이 있었다. 그들은 특히 카를 프리드라히 싱켈 Karl Friedrich Schinkel의 건축 전통을 중시했고 그 이외의 것은 배제했다. 또한 누가 베를린 사람인가 누가 도시권(특정 가치관과 신념에 대한 애착과 계보라는 좁은 의미로 정의된 도시권)을 갖고 있는가를 규정하는 여론의 분위기(다양한 담론에서 표현되는 여론의 분위기)와도 연관이깊다.
이들은 민족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 함의가 가득한 지역의 역사와 건축 유산을 발굴한다. 이주민 학대와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는 그런 행동은 암묵적으로 정당화될수도 있다. 오늘날 베를린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많은 터키인은 무수한 학대와 모욕에 시달렸고 시내 중심부에서 쫓겨났다. 터키인이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얼마나 이바지했 는지는 철저하게 무시된다. (189쪽)
이 공간은 대안적 생활양식은 물론 사회철학을 탐구하는 장이 될 수도 있다(브라질 쿠리치바는 도시생태의 지속가능성 개념을 선구적으로 주창해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문화와 역사의 힘은 브라질 노동자당이 이끄는 정치운동에 힘입어 그 어디와도 다른 방식으로 동원되었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 런던의 테이트갤러리 증축이 추구한 것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집합적 상징자본을 추구한 것이다. (195쪽)
계급적 착취의 역학은 일터에만 한정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착취의 이차적 형태’는 주로 상인, 지주와 건물주, 금융업자가 조직적으로 저지른다. 그 영향은 공장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에서 주로 감지된다. 착취의 이차적 형태는 자본축적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계급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 언제나 필요한 것이었다.
‘약탈에 의한 축적’, 지대와 임대료 갈취, 화폐와 이익의 부당한 착취 등은 일상생활의 질을 둘러싸고 대다수 주민들이 느끼는 수많은 불만의 핵심을 이룬다. 도시의 사회운동은 보통 이런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노동은 물론 생활을 둘러싸고 계급권력의 영속화가 조직되는 데서 도시 사회 운동이 발생한다. (221쪽)
노동자 투쟁을 추진할 때 지역사회를 조직하는 것은 직장을 조직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01년 경제가 붕괴한 직후 공장 점거가 활발했다. 이때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던 공장은 지역사회로 돌아가 문화·교육센터로 자신을 변모시켰다. 이런 점이 투쟁전술로서 공장 점거의 강점 중 하나였다. 이들 센터는 지역사회와 직장을 이어주는 가교 구실을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영국 탄광파업에서 노팅엄 등 분산된 도시권에 살던 탄광노동자는 먼저 굴복했지만, 직장의 정치와 생활공간의 정치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던 노섬브리아에서는 노동자 연대가 끝까지 유지되었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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