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스토리

딸기21 2014. 10. 1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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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영특했다. 늘 교육을 강조하며 밤늦게까지 딸을 앉혀놓고 정치토론을 벌이던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9세에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 앞에 나와 학교 교육에 대해 발언할 정도로 조숙했다. 11살 때에는 영국 BBC방송 블로그에 가명으로 자신의 생활과 소녀들이 학교에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17·사진)가 살던 곳은 파키스탄 북서부 팍툰콰주의 밍고라였다. 소아마비 접종을 해주는 보건요원들이 외국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극단세력의 공격을 받는 파키스탄이지만, 그중에서도 밍고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깝고 탈레반이 기승을 부리던 곳이었다. 탈레반은 2009년 1월 모든 소녀들의 교육을 금지시킨 뒤 여학교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곡절 끝에 다시 학교들이 문을 열기는 했으나 극단주의자들은 여학생들을 계속 위협했다.

AP 자료사진



당시 이미 말랄라는 BBC 블로그와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 등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2012년 10월 9일, 하교길 말랄라가 탄 버스에 탈레반이 들이닥쳤다. 이마와 어깨에 총탄을 맞은 말랄라는 수도 이슬라마바드 부근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찾지 못했다.

말랄라는 가족과 함께 영국 버밍엄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이 사건이 보도되자 세계가 들끓었다. 파키스탄 온건 이슬람지도자 50여명은 범인들을 규탄하는 포고를 발표했고, 여성교육권 운동에 200만명이 서명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서둘러 교육권리법안을 통과시켰다. 유엔 글로벌교육특사였던 고든 브라운 전 영국총리는 2013년 ‘나는 말랄라(I am Malala)’라는 슬로건으로 2015년까지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말랄라’라는 이름은 그가 속한 파슈툰족 말로 ‘비탄에 빠진’이라는 뜻이고, ‘유사프자이’는 유력한 부족연합체 이름이다. 시인이자 교사인 아버지 지아우딘은 파슈툰의 유명한 시인이자 여전사였던 말랄라이 마이완드의 이름을 딸에게 붙여줬다. 말랄라는 어린 나이에 공포와 고통을 겪었지만 ‘비탄에 빠진 채’ 머무르지 않았다. 영국으로 터전을 옮긴 그는 건강이 회복되자 세계를 돌며 여성교육을 역설하는 운동가가 됐다.

“테러리스트들은 제 목표와 열망을 빼앗아가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변한 게 있습니다. 저의 약함, 공포, 절망은 사라졌고 강함, 힘,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저는 모든 아이들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유엔은 이 날을 ‘말랄라의 날’로 정했으며 반기문 사무총장은 그를 “우리의 영웅”이라 불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10대 소녀’가 된 말랄라는 석달 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파키스탄에서 드론(무인기) 공격을 하는 것에 항의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말랄라를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10일 “말랄라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 여성교육권을 위한 싸움을 해온 여성교육의 대변인”이라며 그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이 “세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로 뽑힌 말랄라는 오는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상을 받는다.


노벨평화상, 올해엔 '무난하네'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모하마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곳곳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미국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의혹을 들어 이라크전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이란 핵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IAEA가 이런 시기에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2009년 집권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핵 없는 세계를 만들자”는 연설 덕에 그 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자 논란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잘 하라고 주는 상이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비판은 지난해 수상자 발표 때 극에 달했다.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으로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비롯해 최대 1000여명이 숨졌는데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수상자로 뽑혔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애당초 이 위원회는 ‘정치적으로’ 구성된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유독 평화상만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 쪽에서 정하는데,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의회에서 추천한 정치인들로 이뤄진다. 2009년부터 의장을 맡고 있는 토르뵤른 야글란트(64)는 노동당 정권 때 총리를 지냈고, 부의장 카치 쿨만 피베는 보수당 정권 각료 출신이다. 잡음이 계속되자 노벨위원회 위원 구성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비판들 때문인지 올해의 평화상은 별로 이견이 없어보이는 인물들에게 돌아갔다. 공동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인도)는 억압과 고초를 겪으며 여성·아동을 위한 투쟁을 해온 사람들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올 평화상 후보가 모두 278명의 개인·단체여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노벨위원회는 매년 2월까지 추천을 받아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후보를 추리며, 만장일치가 이뤄질 때까지 표결을 거듭해 발표 직전 수상자를 정한다. 

관심을 끌었던 미 개인정보감시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유력후보로 거론됐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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