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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3년, 이집트 카이로는 지금] 엘시시 예찬·비난 혼재… “혁명이 잘못을 잘못이라 말할 용기 줘”

딸기21 2014. 2. 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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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쫓겨난지 만 3년이 되는 11일(현지시간), 혁명의 중심지였던 카이로 시내 타흐리르 광장에 몇몇 사람이 모여들었다. 오후 4시, 이집트 국기를 들고 광장 한쪽에 모인 이들은 새로 부상한 군부 지도자 압델 파타 엘시시의 사진들을 목에 걸고 있었다. 이집트인들의 영웅인 가말 압둘 나세르와 엘시시의 사진을 나란히 놓은 피켓을 손에 든 사람들도 있었다. 광장은 엘시시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탱크에 에워싸인 '혁명성지' 타흐리르 광장


저녁 6시, 어스름이 깔리자 광장 주변은 살벌했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들은 모두 봉쇄됐고 길목마다 탱크가 포진했다. 군인들이 철조망 옆에서 총을 들고 통행을 막았다. 낮동안 교통체증과 경적 소리에 정신없던 광장은 텅 비었다. 타흐리르에서 조금 떨어진 오페라하우스 부근에서 사제폭탄이 발견됐고, 군인들이 이를 제거하느라 전철역과 도로를 막았다는 얘기가 들렸다. 카이로대학과 멀지 않은 파이살 거리에서는 형제단이 소규모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카이로 ‘두 풍경’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등 엘시시 기념품들이 11일 수도 카이로 압바시아 광장에 진열돼 있다(위쪽 사진). 쿠데타로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달 25일 카이로 중심지에서 경찰과 충돌한 뒤 연행되고 있다(아래 사진). 카이로 _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AP연합뉴스


카이로 시내 곳곳에는 엘시시의 얼굴이 붙어 있다. 나일강을 가로지르는 대교에는 선글라스를 낀 그의 얼굴이 깃발처럼 줄이어 나부낀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엘시시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판다. 노점의 간판, 골목길 포스터 등 어디에서건 그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전철역과 길거리 벽에는 “CC(엘시시)는 살인자, 배신자”라는 욕설이 스프레이로 휘갈겨져 있다. 군인들은 무슨 ‘날’만 되면 탱크를 끌고 나와 광장을 에워싸고, 그 옆 골목에선 용감한 시민들이 “지나가게 해달라”며 항의하고, 엘시시 예찬 포스터와 비난 낙서가 혼재하는 것이 혁명 3년을 맞은 이집트의 풍경이었다.

 

"엘시시가 최선" vs "엘시시는 살인자"


택시기사 압두(60)는 형제단 지지자다. 그는 “군인이 정치하는 것은 싫다”고 했다. “60년 전에는 우리가 한국보다 잘 살았다더라.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 무바라크를 거치며 다 망가졌다. 아스완같은 시골엔 지금 먹을 것도 모자란다. 이런 사정을 살피는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

반면 길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안정을 찾으려면 엘시시가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 택시기사는 “사실 지금도 엘시시가 대통령 아니냐”고 했다. 엘시시는 국방장관이자 부총리이지만, 허수아비 격인 아들리 만수르 과도정부 대통령 뒤에서 모든 걸 좌지우지하고 있다.

 

혁명을 했지만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유엔 산하기구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 직원을 만났다. 그는 “이집트에 개발·원조를 하는 국제기구는 많이 들어와있지만 인권 관련 기구는 단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수십년 군사독재 기간 내내 인권단체들은 카이로에 발붙일 수 없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들어와 있는 국제기구들은 이집트의 정치나 군부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이슬람주의를 억누를 필요성, 엘시시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확실하며 현재로선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다는 점, 현실적으로 군부와 협력하지 않고는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요인이 있을 터였다.


대선에선 엘시시가 이기겠지만


지난달 이집트의 개헌안이 통과됐다. 민주절차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내용에, 이슬람주의자들을 뺀 모든 종교·정파의 뜻을 모으는 형식을 취했다. 개헌안 국민투표도 큰 문제없이 치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대로라면 이집트는 착실히 민주화로 가고 있다. 1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위 유혈진압, 탱크로 봉쇄된 광장, 언론통제와 검열 등을 빼면. 새 헌법안은 30%대의 투표율에 100%에 조금 못 미치는 찬성율로 통과됐다. 군부가 싫은 시민들은 투표소에 가지 않았고, 당국은 딱히 투표부정을 저지를 필요도 없었다. 군부를 받쳐주는 옛 무바라크 지지세력의 찬성표만 거둬들이면 됐다.

 

새 헌법에 따라 6개월 내 대선과 총선이 실시된다. 대선 전망에는 이견이 없었다. 시민혁명 지도자 중 한 명인 함딘 사바히 등이 후보로 나오겠지만 들러리에 그칠 것이며, 낮은 투표율 속에 엘시시가 압승할 거라고 모두들 얘기했다. 분위기를 엘시시 쪽으로 몰아가는 관권선거가 진행되겠지만 ‘투표함을 사막에 가져다묻거나 바꿔치기하는’ 노골적인 부정이 벌어질 가능성은 적다. 국제기구 직원은 “국제감시단이 모니터링을 할 것이고, 군부도 쓸데없이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잘못된 일에는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혁명 후의 유혈참사에는 다들 입을 다물었다. 민주적인 헌법을 힘겹게 만들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새 옷을 갈아입은 또 다른 군인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이들의 희생 속에 이뤄진 혁명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대학생 유시프(20)에게 스스로의 앞날에 대해, 이집트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는 헬완대학교에서 스포츠학을 전공한다. 어릴 때는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졸업하고 은행 대출을 받아 피트니스클럽을 차리는 게 목표다. 


2012년 생애 첫 투표를 하기 전까지 그가 들은 정치 이야기는 “정부가 공장이나 도서관을 지어준다 해놓고 지키지 않는다는 것, 나랏돈을 빼돌려도 다들 깨끗한 척 한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3년 전 나라가 뒤집어졌다. 그 뒤의 혼란은 좀 아쉬웠다. 형제단이 정권을 잡자 유시프의 부모는 “우리(시민들)가 이룬 혁명을 저들이 앗아갔다”며 분노했다고 한다. 

 

여전히 유시프 또래에게 제일 큰 관심사는 ‘정치’가 아니라 일자리다. 하지만 유시프는 “내 삶은 우리 부모 세대의 삶과는 다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수십년 군부통치 속에서 국영기업에 기대어 살아온 부모 세대와 달리, 자신의 세대는 “스스로의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3년전의 혁명이 그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잘못된 일에는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줬습니다.” 이집트의 혁명은 정치절차와 사람들의 생각 모든 면에서 지금도 ‘진행형’이었다.


"한번 자유를 경험한 사람들은 더이상 독재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집트 카이로 시내 도키에 있는 민간싱크탱크 ‘대안을 위한 아랍 포럼(AFA)’ 사무실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국회의원 아므르 알 쇼바키(사진·50)를 만났다. 


쇼바키 의원은 카이로대학과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정치분석가 겸 평론가로 활동하며 여러 언론에 글을 썼다. 2012년 정치인으로 변신해 총선에 출마, 당선됐다. 소속정당은 없다. 그는 혁명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이집트의 상황은 낙관적이며,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대통령이 된다 해도 ‘군부정권의 회귀’라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번 자유를 맛본 이들은 더이상 독재자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혁명 이후 이집트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2012년 출마해 당선됐는데, 나 스스로에게도 50년의 인생 동안 처음으로 자유롭게 해본 투표였다. 우리가 성공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혁명 뒤 모두들 기대가 컸다.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많았다. 하지만 무슬림형제단과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의 실정에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다들 새 체제를 갈망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지금 이집트는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새 헌법을 만들었고, 대선을 치를 것이다. 나는 낙관주의자다. 하지만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어려운 문제들, 도전들이 놓여있다는 걸 인정한다.”


-어떤 것이 향후 이집트의 가장 큰 어려움이 될 걸로 보나.


“경제적 침체와 무슬림형제단의 존재다. 터키나 모로코나 튀니지에도 이슬람 정당은 있다. 하지만 형제단과 그들의 당은 사실 정당이 아닌 종교조직이었다. 애당초 민주정치에 맞지 않는 자들이 정치 영역에 들어와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극단주의는 큰 위험요인이다. 문제는 무르시 개인이 아니라 정치적인 종교조직 그 자체였다.”


-3년 전에는 시민들이 타흐리르를 메웠지만, 지금은 시민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지난해의 유혈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이집트 정치 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하지만 3년간 시위를 할 수는 없지 않나. 시민들은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


-엘시시가 대통령이 되면 또다시 군부정권이 들어서는 것 아닌가.


“우린 좌파인 나세르, 우파인 사다트를 거쳐 무바라크 통치까지 오랜 역사를 거쳤다. 대선은 공정하게 치러질 것이다. 엘시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현재로선 제일 많다. 이스라엘에도 군 출신 총리들이 있는데 그들을 군부정권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밖에서는 우려를 많이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엘시시가 ‘제2의 무바라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으로 사람들은 변화를 경험했고, 선거가 뭔지 깨달았다. 한번 자유를 경험한 사람들은 더이상 독재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30년 독재자’가 다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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