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한 공장 앞에 지난 2일 노동자와 불교 승려, 시민·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 정예부대인 911공수여단 군인들이 갑자기 시위대를 에워쌌고, 한 군인이 시위에 참가한 승려에게 물병을 던졌다. 격분한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맞섰다. 무장 군인들은 소총과 곤봉으로 시위대를 내리치며 승려 5명을 비롯해 10명을 체포했다고 프놈펜포스트는 전했다.
시위가 벌어진 곳은 프놈펜 시내 푸르센체이에 있는 한국계 의류업체인 ‘약진’ 공장이었다. 같은 날 루세이케오 지구에 있는 한국계 의류공장 ‘대영’ 앞에서도 시위가 일어났고 역시 충돌이 빚어졌다. 인근 카나디아산업지구에서도 무장경찰 200여명이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했다. 이 지역에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공급할 방재복을 수출하는 하청업체가 있다.
프놈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올려달라며 한달 가까이 시위를 벌여왔다. 계속된 충돌은 결국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3일 푸르센체이에서 무장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해 최소 5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사망자들이 한국 기업과 관련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미 시사주간 타임 인터넷판은 “한국 기업 앞 소규모 시위를 진압하는 데 군을 동원하면서 긴장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캄보디아데일리는 “한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군 정예부대까지 투입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당국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911공수여단의 숨삼낭 부사령관은 “폭력 시위에 무력 대응한 것뿐”이라고 답변했다.
인권단체들과 노동자들은 유혈진압을 맹비난하고 있다. 공동체법교육센터 활동가 리카도는 “약진 공장 앞 시위에 군을 투입한 것은 정부가 평화시위를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지 명백히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와 임금협상을 벌여온 6개 노조단체와 인권단체들은 체포된 이들을 석방하고 정부가 유혈진압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캄보디아 신발·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월 최저임금은 지난해 5월 66달러에서 80달러로 인상됐으나, 노동자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친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기름값과 생활물가가 오른 것이 노동자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최저임금을 월 95달러로 올리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노조들은 160달러를 요구하며 거부했다. 사용자단체인 캄보디아의류생산자연합회(GMAC)는 최저임금을 올릴 경우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임금협상 참가를 거부했다.
사진 캄보디아데일리(cambodiadaily.com)
정부 대응이 강경해진 데에는 최근의 정국도 영향을 미쳤다. 1985년 집권한 훈센 총리는 지난해 7월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연장했다. 하지만 야권은 부정선거라며 반년 가까이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프놈펜 시내에 최대 8만여명의 시민들이 집결했다.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노동자 시위, 물가가 오른 데 항의하는 시위 등이 겹쳐 정국은 최악의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통합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을 이끌며 훈센에 맞서온 삼랭시는 유혈진압을 맹비난했고, 노조들은 임금을 올려주지 않을 경우 훈센 퇴진 시위에 결합하겠다고 선언했다.
캄보디아의 수출용 의류산업은 연간 50억달러 규모로, 이 나라 전체 수출액의 80%를 차지한다. 캄보디아는 저임금 노동력을 발판으로 성장해왔으나 최근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가 늘면서 분쟁이 증가했다. 노동분쟁 접수건수는 2009년 91건에서 2012년에는 155건으로 늘었다.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처장은 “선거 논란과 노동분쟁이 겹쳐지자 위기감을 느낀 훈센 정부가 강경대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캄보디아 정부는 그동안에도 외국계 의류회사들 편에서 노동자들을 억눌러왔지만, 군까지 투입해 노동자들에게 발포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캄보디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 봉제업체는 60여곳이다. 현지 한국기업 모임인 섬유봉제협의회는 시위가 격화되자 지난달 27일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놈펜 주재 한국대사관의 최용준 참사관은 “섬유산업 전체의 임금협상이 문제가 된 것이고 한국 기업이 시위의 타깃이 된 것은 아니다”라며 “아직까지 한국 기업에 대한 공격이나 교민 피해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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