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전 세계 로마가톨릭 교구를 대상으로 동성애와 이혼, 피임 등의 이슈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그동안 ‘가족’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온 교회가 설문조사 형식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가톨릭 신문인 가톨릭리포터(NCR)는 지난달 31일 교황청이 각국 주교회의에 가족 문제와 관련된 설문지를 내려보냈다고 보도했다. 로렌조 발디세리 바티칸 교회회의 사무총장은 지난달 중순 이 설문지를 각 교구로 내려보내면서 “현장의 생각을 들을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교구를 상대로 조사해 빨리 응답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설문지에는 각 교구가 속해있는 국가의 동성결혼 상황과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들의 생각, 동성 커플이 가톨릭 세례를 원할 경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피임에 대한 의견은 어떤지 등의 문항이 들어 있다.
로마가톨릭은 세계 곳곳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움직임이 커지는 현실 속에서도 유독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16세는 낙태나 피임은 물론이고 에이즈 등의 질병을 막기 위한 콘돔 사용까지 반대했을 정도였다. 가족 문제에 대한 가톨릭의 이런 관점은 현대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은 배타적인 태도라는 지적을 받았고, 진보진영으로부터 공격받는 주된 요인이 돼왔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빈곤·불평등 등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발언을 아끼지 않아 왔지만, 가족 문제 등의 교리에서는 추기경 시절까지 보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즉위 뒤 이전의 강고한 보수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가톨릭의 변화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아직 교계는 보수파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변화를 점치기는 이르지만,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이런 설문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NCR은 “교회 수뇌부가 풀뿌리 현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조사를 하는 것은 현 교회 체계가 세워진 1962년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내년 10월 ‘복음화라는 맥락에서 교구들이 부닥친 가족의 문제’라는 주제로 교회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번 설문조사 등으로 파악된 교회 ‘현장’의 목소리를 취합, 내년 회의 때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등을 놓고 논의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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