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지난 27일 전화 통화를 하며 핵 협상과 시리아 문제 등에 대한 협의를 진전시킨다는데 뜻을 모았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두 나라 정상 간의 접촉은 처음이다. 유엔 총회에서 화해 의지를 확인한 두 나라는 관계개선으로 급속히 이동해가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오바마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렸으며, 백악관도 홈페이지를 통해 대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로하니 측이 미국을 떠나기 전 유엔 대표부를 통해 오바마와 대화하겠다는 뜻을 전해왔고, 이를 받아들인 오바마가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하던 로하니에게 전화를 걸어 ‘역사적인 통화’가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Link to video: Obama on historic phone call with Iran’s Rouhani
두 정상은 통역을 사이에 두고 15분 동안 통화하면서 핵협상을 진전시키는 문제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 문제 등을 논의했다. 로하니는 오바마의 전화에 감사의 뜻을 표했고, 오바마는 핵협상과 시리아 문제 등에서 두 나라간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이 중동 역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하니는 영어로 “좋은 하루를 보내라(Have a Nice Day)”고 인사했고 오바마는 파르시(이란어)로 “호다하페즈(신의 가호를)”라 화답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백악관은 “친밀하고 건설적인 대화였다”고 평했다.
미국과 이란 정상 간의 접촉은 1979년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이 레자 샤 이란 국왕과 통화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뉴욕 유엔총회에서 오바마는 로하니와의 만남이 이뤄지길 바랐지만, 로하니 측이 자국 내부 정세를 고려해 거절했다. 하지만 로하니는 마지막 날 통화로 오바마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관계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분석됐다. 앞서 26일에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만나 ‘34년 만의 첫 각료급 회동’을 하는 등 두 나라 관계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버락오바마가 @하산로하니에게, 우리 사이에 발전이 있으면 #핵문제와 #시리아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하산로하니가 @버락오바마에게, 전화해줘서 감사. 미스터 프레지던트, 좋은 하루 되시길.”
오바마와 통화를 한 로하니는 27일 곧바로 트위터에 두 정상의 통화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전화 대화를 브리핑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로하니의 멘션들은 곧바로 삭제됐고, 저장된 화면 이미지들만 남아서 온라인에서 돌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로하니다운 행보이자 이란의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조심스레 줄타기를 할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로하니는 서방으로부터 이번에 확실하게 인심을 얻었다. 이란과 핵협상을 해온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P5+1)은 로하니 정부의 핵협상 의지에 대한 의심섞인 시선을 거두었다. 지난 24일 오바마와 로하니가 유엔총회 연설에서 주거니받거니 대화할 뜻을 밝힘과 동시에 협상은 시작됐다.
26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만나 핵 문제를 논의했다. 유럽국 대표들도 동석한 자리이긴 했지만, 양국간 각료급 직접 대화는 1979년 이래 처음이었다. 로하니는 27일 유엔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바마와 나의 만남에는 선결돼야 할 아젠다들이 있다”면서도 “이번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거절해야 했던” 오바마와의 정상회담을 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유엔 행보를 총평하자면 로하니는 서방의 신뢰를 얻었고, 핵협상의 교착 국면은 끝났다. 이란의 전임 강경파 정권시절보다는 물론이고, 이전 개혁파 정권 때보다도 핵협상의 진전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로하니 본인이 핵협상 대표를 지냈기에 현안을 가장 잘 안다. 오바마와의 대화를 비롯해, 대미관계를 풀 모티브도 생겼다. 오바마 정부도 얻은 게 많다. 이집트 시위에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 등 악재만 계속되다가 간만에 호재를 만난 셈이다. 잘하면 이란과의 관계 개선은 오바마 집권 기간 최대의 외교적 치적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란 내부의 동향이다. 서방이 로하니 취임 뒤 이란의 변화를 반기면서도 섣부른 환호 대신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란이 로하니의 뜻대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방과의 관계를 푸는 것은 현재 로하니 정부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합의 아래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내부 보수세력의 ‘핵 야심’과 오랜 반미정서까지 이른 시일 내 해소되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서방은 이란 내부의 동향과 로하니 정부의 ‘실행의지’를 주시하고 있다.
로하니의 최대 고민거리는 서방의 태도가 아닌 내부의 반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로하니는 28일 귀국 뒤 테헤란의 메흐라바드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미국이 2700년 전 페르시아 제국의 은제 술잔(위 사진)을 돌려줬다”고 발표했다. 전설 속 동물인 그리핀 모양을 한 이 술잔은 2003년 이란에서 빼돌려져 미국에 밀반입됐다가 미 세관에 압수됐다. 로하니는 이 유물을 보여주며 자국민들에게 미국 측의 ‘환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귀국한 로하니를 맞은 것은 자국민들의 엇갈린 반응이었다. 로하니 지지자 200~300여명이 “변화를 가져올 대통령”이라며 환영한 반면, 60여명의 보수파 시위대는 “미국에 죽음을”이라 외치며 로하니가 탄 차에 신발과 달걀을 던졌다. 이란 국영 언론들은 이 사건을 아예 보도하지 않았지만, 알자지라 방송은 “우파 세력이 ‘바시지 민병대’ 대원 등이 시위대에 섞여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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