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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타고, 치타와 뒹굴고...'현대판 모글리'

딸기21 2013. 5. 3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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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 어린 소년 말란이 앉아 있습니다. 3살난 말란의 곁에 있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친구랍니다. 동물들 중 가장 빠르다는 치타거든요. 말란과 여동생 카일라에게는 ‘와쿠’와 ‘스카일라’라는 두 마리 치타가 제일 좋은 동무들입니다. 


이들이 사는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케이프. 남매의 아버지 하인 슈만(29)과 어머니 킴 슈만(29)은 가든루트 게임 롯지라는 자연공원에서 게임레인저로 일합니다. 게임 롯지는 우리 식으로 하면 ‘사파리 관광지’이고, 게임레인저는 관광객들을 이끄는 안내원입니다. 


남매와 치타들의 인연은 지금부터 약 1년 전 가든루트에서 시작됐습니다. 말란은 겨우 2살이었고, 카일라는 태어난 지 석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지요. 슈만 부부는 야생에서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던 새끼 치타 2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부부는 두 치타를 ‘입양’해서 우유를 먹이며 자식들과 함께 키웠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케이프에서 치타와 놀고 있는 카일라. 사진 bild.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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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치타들과 남매는 친형제처럼 어울렸습니다. 물론 행동을 조심할 필요는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치타에게 등을 보이지 말라’ ‘치타들 앞에서 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치타의 야생적인 본능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요. 또 아이들은 치타들을 사랑하면서도 자기네 장난감은 함께 가지고 놀지 않는답니다. 모두 부서질 게 뻔하거든요.


서로 간에 규칙이 있긴 하지만 부모가 보기에 이 ‘네 형제’ 사이에는 특별한 교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잡지 이그재미너는 지난달 현대판 ‘모글리’처럼 자라나는 아프리카 남단의 이 남매를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치타들이 영원히 함께 지낼 수는 없겠지요. 부모는 치타들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언젠가는 야생으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요.


인도네시아의 빈탄 섬에 사는 데오 사푸트라는 네살배기 소년입니다. 데오의 친구는 ‘푸트라’라는 이름의 기본(긴팔원숭이의 일종)입니다. 데오의 아버지는 오토바이 수리공입니다. 데오는 방이 5개인 콘크리트집에서 대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친구는 푸트라 하나입니다. 섬의 외딴 곳에 살아서 ‘사람 친구’가 없거든요. 


빈탄 섬의 사진작가 안드리 메디안샤는 아기 때부터 함께 커온 데오와 푸트라의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올초 실린 소년과 원숭이는 다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본 안드리는 “둘은 언제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데오의 부모는 푸트라를 애완용으로 구입했지만, 이제는 데오의 형제처럼 여깁니다. 


인도네시아의 빈탄 섬에 사는 데오 사푸트에게는 '푸트라'라는 오랑우탄이 유일한 친구랍니다. 사진 dailymail.co.uk


 

마테오 발흐는 오스트리아에 사는 8살 소년입니다. 마테오의 친구는 낯을 가리기로 유명한 설치류 ‘알프스마못’입니다. 마못과 마테오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5년 전. 부모와 함께 그로슬로커라는 알프스 산골마을에 여행을 갔다가 마못을 사귀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다니는 마못들은 유독 마테오를 좋아합니다. 해마다 마테오는 마못들을 만나 우정을 나눕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에밀리 블랜드(6)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게임 롯지에 사는 오랑우탄 ‘리시’와 친구 사이입니다.

 

‘현대판 모글리’ 중 최고 스타는 티피 데그레(23)입니다. 티피는 1990년 아프리카 남단 나미브 사막과 초원이 이어진 나미비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 알렝 데그레와 어머니 실비 로베르는 프랑스 출신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진작가이자 여행자였습니다. 이들은 나미비아의 초원에 머물면서 딸을 진짜 모글리처럼 키웠습니다.


티피는 코끼리를 타고, 타조의 등에 매달리고, 어린 표범과 뒹굴고, 수박만한 개구리를 끌어안고, 뱀을 무릎에 앉히고, 아랫도리만 가린 채 주민들과 화살을 쏘며 자랐습니다. 미어캣(포유류의 일종), 몽구스, 기린, 얼룩말, 카멜레온이 티피의 친구들입니다. 이미 현대화된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에서 티피처럼 자라는 아이들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티피의 어린 시절은 아프리카인들에게도 ‘사라진 유년기’의 모습입니다. 


티피의 이야기는 2008년 <아프리카의 티피(Tippi of Africa)>라는 책으로 나와 화제가 됐습니다(인터넷 검색해보니 여러 버전으로 여러 나라에서 출판됐네요). 국내에서는 최근 티피의 이야기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남다른 유년을 보낸 티피는 10살 때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갔지만 “파리의 아이들에게는 흥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2년 동안 학교에 다니다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했고, 디스커버리채널과 함께 아프리카를 오가며 자연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파리의 소르본누벨대학교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물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어린 아이들. 너무 낭만적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인도 벵갈 지방에서 발견돼 ‘모글리 소년’이라 불린 사내아이가 있습니다. 서벵갈의 야생에서 지내던 이 소년은 8살가량 됐을 때 근처 힌두교 공동체 사람들에게 발견됐습니다. 이름도 없고, 말도 못 하고, 먹을 것을 주어도 야생동물처럼 나뭇잎을 먹었다고 합니다. 14살 무렵인 2007년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탓에 병원으로 실려갔고, 현지 언론들을 통해 알려졌지요. 

 

‘모글리’는 잘 알려진 대로 영국 작가 루디야드 키플링(1865~1936)의 연작 소설 <정글 북>에 나오는 소년의 이름입니다. 영국 숲 탐험가인 기스번이라는 사람이 인도 중부 펜치 지역의 숲에 들어갔다가 동물처럼 야생의 본능과 재주를 지닌 모글리를 만나게 되지요. 어린 시절 숲에 들어왔다가 부모가 호랑이들에게 희생되는 바람에 혼자 남게 된 모글리는,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형제처럼 늑대의 젖을 먹으며 자라납니다. 소설 속 모글리는 사냥 기술을 비롯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원시인으로 묘사됩니다. 


<정글 북>의 배경인 인도에는 유독 현대판 모글리들이 많습니다. 1970년대에는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 라마찬드라라는 12세 소년이 ‘양서류 같은 생활을 하다가’ 발견됐는데, 사람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1982년 숨졌습니다. 안타깝게도 라마찬드라를 보고 깜짝 놀란 마을 여성이 끓는 물을 끼얹는 바람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지난달 17일 콜카타에서 발행되는 텔레그래프 신문에는 하자리바그에 사는 한스다 가족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아버지 찰리(67)와 어머니 라다(60), 아들 비제이(28)와 비나이(21)는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채 마을에서 39㎞ 떨어진 숲속에서 줄곧 살아왔습니다. 신문은 ‘모글리와 타잔이 합쳐진 가족’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들이 살던 곳과 마을 주변에 마오주의 반군이 진을 치고 있어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가족이 알고 있는 ‘세상의 위험한 것’은 독이 있는 코브라와 성난 늑대, 배고픈 코끼리뿐이었답니다.


<정글북>의 작가인 영국 소설가 겸 시인 루디야드 키플링. 사진 위키피디아



루디야드 키플링이 창조해낸 모글리는 야생이라는 ‘열등한 존재’에 대한 백인들의 이색취향을 자극하는 캐릭터였습니다. 1967년부터 미국 월트디즈니사가 제작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정글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작품들 속 모글리는 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야생 판타지’였습니다. 그래서 모글리를 둘러싼 원주민들 또한 ‘동물’과 비슷한 존재로 그려지죠. 모글리가 문명과 조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지 주민들이 아닌 ‘서양 사람’과 만났을 때입니다. 


키플링은 실제로 제국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겨 필리핀을 차지하고 학살극을 벌였을 때 키플링은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이라는 시를 발표하며 열등한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것은 백인의 신성한 의무라 주장했지요.

 

하지만 오늘날의 모글리들은 제국주의와는 반대로 받아들여집니다.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온 야생에 대한 본능적인 감수성을 건드리는 것이죠. 국내에서도 <정글의 법칙> 방송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만, 동물들과 함께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특히나 사람들의 동경을 자아냅니다. 어린이라는 순수한 존재와 야생의 만남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근대 이후로 떠나온 것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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