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노쇠한 만델라 찾아가 '정치쇼'한 남아공 주마 대통령

딸기21 2013. 5. 2. 00:24

남아프리카공화국 SABC방송에 지난달 29일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94)의 모습이 비쳤다.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 앉아 손님을 맞은 그는 병색이 역력했다. 폐렴 치료를 받고 퇴원한 지 3주밖에 안된 데다 워낙 고령이어서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만델라의 트레이드마크인 환한 웃음은 보이지 않았고, 짧은 감탄사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대중 앞에 공개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이었다. 노쇠해진 거인의 모습은 남아공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그날 옆에 앉아있던 ‘손님’은 희희낙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이컵 주마 현 대통령이었다. 주마는 이날 측근 두 명과 함께 찾아와 농담을 하고 말을 건넸지만 만델라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현지 일간 내셔널포스트는 “만델라가 악수조차 하지 못해 주마 스스로 내민 손을 거둬들였다”고 전했다. 사진을 찍을 때 간신히 미소짓는 시늉을 했을 뿐, 만델라는 카메라 플래시에도 깜짝 놀라 얼굴을 찡그렸다. 이 또한 시력이 약한 노령의 환자에 대한 심한 결례였다.


SABC에 나온 주마(왼쪽)와 만델라 할아버지...
아, 정말... 할아버지의 저런 모습을 보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주마는 방문 뒤 “만델라는 상태가 아주 좋았다”면서 “대화하고 악수를 나누고 왔는데 보다시피 웃는 얼굴이었고 안정돼 보였다”고 말했다. 성폭행 기소 전력과 거친 언행으로 늘 논란을 빚어온 주마의 이 말에 남아공 전역이 들끓었다. 트위터에는 비난글이 쇄도했다. “만델라의 존엄을 깨뜨리는 짓이다.” “만델라의 상태가 그대로 보이는데 국민의 면전에서 거짓말을 하느냐.”

남아공 언론들은 웃음짓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 보이고, 베개를 받치지 않고는 몸조차 가누기 힘든 노인을 앉혀놓고 ‘정치쇼’를 했다고 질타했다. 만델라의 큰딸 마키지웨는 30일 “주마가 아버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촬영기자들을 데리고 찾아왔다”며 “제정신이라면 이 상태의 노인을 대중 앞에 보이고 싶어할 가족이 있겠느냐”고 맹비난했다.

 

만델라가 이끈 흑인 정치조직이자 현 집권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올 7월쯤 총선을 실시한 뒤 대통령을 뽑을 예정이다. 그런데 민족회의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9년 총선에서 민족회의는 400석 가운데 264석을 얻는 데 그쳤고, 백인 진보주의 정당과 흑인 신생 정당이 약진했다. 

경제민주화와 빈곤 퇴치에 실패한 주마와 민족회의가 내세울 것은 ‘만델라의 후광’뿐이다. 흑인들은 물론이고 백인 유권자들에게도 만델라의 이름은 엄청난 위력을 가진다. 정치권은 만델라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전전긍긍하고, 그가 입원이라도 하면 나라가 들썩인다.

 

주마와 민족회의는 “만델라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라고 반박하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국민들은 만델라를 이용하는 행태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주마를 손가락질한 마키지웨 등 만델라의 가족들도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지난해부터 만델라의 이름을 달아 와인 사업을 하고 있는 마키지웨는 여동생 제니나와 함께 얼마 전 만델라의 측근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만델라 관련 상품의 수익금을 관장하는 신탁기금의 이사들을 쫓아내려 한 것이다. 둘째딸 제니나는 아버지의 명성을 등에 업고 지난해 아르헨티나 주재 대사가 됐다. 만델라 가족의 정계입문설도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