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건물 사이로 삐져나온 젊은 여성의 발, 살려달라 외치다 끝내 구조되지 못한 채 숨져간 여공, 언니·동생과 한 공장에서 일하다 변을 당할뻔한 어느 소작농의 딸.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는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자 글로벌 경제의 노동착취 사슬이 만들어낸 참극이었다. 파렴치한 고용자들과 부패한 정부, 아웃소싱으로 저가제품을 팔아온 외국 기업들,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한 세계의 소비자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인구는 1억6000만명이 넘지만 글 읽는 어른 비율이 60%에도 못 미치는 방글라데시에서 못배우고 돈 없는 여성들의 희망은 공장 뿐이다. 다카 등지에 있는 5000여개의 의류공장에서 하루종일 일해 한달에 4만원가량을 번다. 이 돈으로 가족들은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고, 오토바이를 사고, 장사 밑천을 삼는다.
방글라데시 사바르의 공장건물 붕괴현장에서 사망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데일리스타(www.thedailystar.net)
이들의 생살여탈권을 쥔 것은 1차적으로는 공장주들이다. 지난 24일 무너진 다카 외곽 사바르의 ‘라나 플라자’에는 5개 의류공장에 소속된 노동자 310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30일 현재 368명이 숨졌고 2400여명이 구조됐다. 노동자의 대부분인 여공들은 공장 관리인들에게 떼밀려 금이 간 건물에 들어갔다. 그저 값싼 생산도구였을 뿐, 그들에겐 어떤 인권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없었다.
여공들을 죽음으로 내몬 또 다른 범인은 뻔뻔한 건물주와 부패한 관리들, 정치인들이었다. 라나 플라자의 소유주인 소헬 라나는 집권당 간부이며,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대 재산을 모았다. 라나는 인도 접경지대로 도망치다 붙잡혔다. 법원은 30일 라나와 공장주 5명에게 재산 몰수명령을 내렸다.
여성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방글라데시의 뻔뻔한 기득권층만은 아니다. 이 나라에서는 해마다 30만~50만명이 도시로 유입돼 값싼 노동력 공급원이 된다. 200억달러 규모의 의류·섬유산업은 방글라데시의 주요 달러 수입원이다. 벌집 같은 공장에서 여공들이 만들어내는 옷은 주로 미국과 유럽으로 향한다. 라나 플라자의 의류공장들은 중간 유통회사를 통해 유명 체인 27곳 이상에 의류를 공급하고 있었다(경향신문 4월26일자 10면 보도).
이 물건들을 팔아온 영국 의류판매체 프리마크와 캐나다의 로블로는 29일(현지시각) 이례적으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 베네통은 납품계약을 부인했다가 뒤늦게 인정했다. 스페인 망고, 네덜란드 C&A, 미국 월마트 등도 자국 내 소비자들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도 Lonely Planet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쇼핑과 방글라데시 공장붕괴’라는 기사를 싣고 “빠르고 값싼 죽음의 노동”을 소비해온 사람들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글라데시 노동단체들은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을 달군 ‘나이키 논쟁(나이키 하청공장 인권문제)’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과 소비자들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 의류업체가 필리핀과 방글라데시에서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들을 폭행·감금했다가 물의를 빚은 전례가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 전반의 ‘인권 감수성’이 낮고, 노동착취 상품에 대한 거부감도 적다.
국제제조업노조연합체인 인더스트리올의 윤효원 자문위원은 “한국 업체의 아시아 하청공장은 파업이 잦은 것으로 유명하다”며 “한국에도 글로벌기업들이 많지만 국내외 사업장의 연대나 감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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