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2009년 이후 시작된 유럽 경제위기 뒤 처음으로 22일 그리스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긴축재정이 그리스의 인권, 특히 보건·교육 같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리스에서는 2009년부터 거의 3년간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젊은이들의 긴축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달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에서는 구제금융 협상안에 반대하며 10대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스페인에서는 16~24세 젊은 층 실업률이 50%가 넘는다. 가톨릭 구호단체 카리타스는 최근 “긴축 재정 때문에 유럽 대륙 전역에서 ‘잃어버린 몇 세대’가 생겨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라빚을 줄여야 한다며 유럽 각국이 긴축에 들어간 뒤 벌어진 일들이다. 최근 몇년 새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내 여러 나라가 구제금융을 받고 긴축에 들어갔지만 정부와 기업들의 실패를 서민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라는 반발이 컸다. 이제 더이상 허리띠를 졸라맬 수는 없으며, 긴축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고백이 유럽 지도부 안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22일 유럽의 긴축이 ‘정치적 한계’에 부딪쳤다며 “정책이 성공하려면 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아일랜드의 존 버튼 사회보호장관도 “우리는 지금 긴축의 한계에 왔다”고 실토했다. 아일랜드는 2008년 이후 계속 재정지출을 축소해왔다.
긴축정책으로 돈 없는 서민들이 희생됐을 뿐 재정건전화 효과는 별로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럽연합 통계국이 22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로존 각국의 정부지출은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51.2%에서 2012년 49.9%로 소폭 줄었다. 이 기간 각국 채무 총액도 줄어들었다. 이 점을 들어 AP통신은 "긴축이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에 효과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기간 GDP 대비 재정적자는 오히려 커졌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키프로스 등의 적자 비중은 특히 커졌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적자 총액이 줄어든 것은 덩치 큰 독일의 재정이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축의 '효과'가 있었는지, 긴축과 재정적자가 어느 정도나 상관관계가 있는지 말하긴 힘들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사설에서 “긴축이라는 아이디어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조해온 긴축정책이 유럽에서 한계에 부딪쳤다면서 “긴축 피로감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언론들은 “그리스 국민 59%는 긴축보다 차라리 훈타(군부정권)가 낫다고 본다”는 여론조사를 전했다. 격렬한 긴축 반대 시위가 일어났던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긴축 대신 부자 증세를 약속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집권했다.
긴축정책을 실시한 나라들
이스라엘 1949~59년
멕시코 1985년
쿠바 1991년
캐나다 1994년
니카라과 1997년
팔레스타인 2006년
라트비아 2009년
스페인 1979년, 2010년
일본 2010년
루마니아 1981~89년, 2010년
아일랜드 2010년
체코 2010년
포르투갈 2010~11년
그리스 2010~12년
이탈리아 2011~13년
2009년 당시 영국 보수당 대표이던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는 "긴축의 시대(Age of Austerity)"라는 말을 했고, 이듬해 웹스터 영어사전은 '긴축'을 그 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긴축'은 유럽의 현재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하지만 국민들이 고통을 겪는데도 정부 씀씀이를 줄이는 것만이 만병통치약인 양 여겨온 데 대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정적자가 경제의 최대 위협인 양 중시하면서 긴축을 성장의 처방으로 내세웠던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케네스 로고프다. 그는 동료 교수 카먼 레인하트와 함께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부채가 GDP의 90%를 넘으면 성장이 정체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컴퓨터 소프트웨어 엑셀프로그램 조작 실수로 논문의 통계가 잘못됐다는 사실이 얼마전 드러났다. 로고프와 반대로 경기부양을 강조해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지난 18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엑셀 경기침체'라는 제목의 컬럼에서 “수학적인 실수가 정보시대에는 재앙이 된다”며 “경제위기를 악용해 사회복지를 줄이고 실업문제에 등 돌려온 긴축 매니아들”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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