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와 중남미는 바티칸에서 들려온 소식에 열광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에서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했으며 눈물을 터뜨리는 신자들도 보였다.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가톨릭의 리오넬 메시”라며 새 교황 탄생을 환영했고, 아르헨티나 트위터 이용자들은 왕년의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의 일화에 빗대 “또 한 번 신의 손이 작용했다”면서 떠들썩한 반응을 보였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베르골리오 추기경에게 “아르헨티나 국민과 정부의 이름으로 축하를 전한다”고 말했다. 반면 일간 클라린 등은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새 교황이 과거 갈등관계였음을 꼬집는 기사들을 실었다. 새 교황은 페르난데스는 물론이고 페르난데스의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대통령 시절부터 정부와 불편한 관계였다. 새 교황이 추기경 시절 대선·총선에서 야권 지지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 하지만 ‘국가적 경사’를 맞게 되자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목자로서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기 바란다”며 축하했다.
Roman Catholics celebrate the election of Argentine Cardinal Jorge Bergoglio as the new Pope,
at the Metropolitan Cathedral in Buenos Aires, March 13, 2013. REUTERS/Enrique Marcarian
이웃한 브라질은 기뻐하면서도 아쉬움을 달랬다. 1억5000만명의 신자를 가진 세계 최대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 첫 교황이 나온다면 자국에서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있었다. 브라질은 특히 이번 교황선거에서 상파울루 대교구장인 오질로 페드로 스셰레스(63) 추기경이 유력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주교협의회는 “희망의 대륙 라틴아메리카에서 사상 첫 교황이 탄생한 것을 환영한다”면서 라틴아메리카 교회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바티칸은 전임 베네딕토16세 교황 시절 낙태 문제 등을 놓고 브라질 노동자당 정부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브라질 정부는 새 교황 탄생을 계기로 서먹해졌던 관계가 풀리길 바라고 있다.
멕시코,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 라틴아메리카는 모두 새 교황 선출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현재 12억명에 이르는 세계 가톨릭 인구 중 4억8300만명 이상이 라틴아메리카에 있지만, 그동안 교황 자리는 유럽이 독식해왔다. 유럽의 가톨릭 인구는 2억7700만명으로 라틴아메리카에 크게 못 미친다. 가톨릭의 판도로만 보면 교황 직은 진작에 남미로 넘어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쾌거’는 결국 유럽도 가톨릭의 중심이동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과는 가톨릭 역사가 다르다는 점도 라틴아메리카 신자들의 감성을 크게 좌우하는 부분이다. 라틴아메리카 가톨릭은 15~16세기 이후 스페인 등 유럽 제국의 가혹한 점령과 함께 시작됐다. 그러나 ‘정복자들의 종교’에서 출발한 가톨릭은 옛 식민세력의 후손들은 물론 원주민들에게도 뿌리를 내렸고, 해방전쟁과 20세기의 굴곡진 역사를 거치며 ‘민중들의 종교’로 자리잡았다. 유럽에선 기원 전후 ‘베드로 시절 이래로’ 가톨릭이 권력으로 군림해왔으나 중남미에선 ‘해방의 종교’로 더 큰 기능을 했던 것이다.
16세기 멕시코시티 부근에 발현했다는 ‘과달루페의 성모’는 지금도 민중의 어머니로서의 가톨릭을 대변하며 수많은 성지순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1980년 총탄에 맞고 쓰러진 엘살바도르의 대주교 오스카 로메로 추기경의 삶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계인들에게 각인됐다.
새 교황은 라틴아메리카의 이런 가톨릭 전통이나 해방신학과는 거리를 둬온 인물이다. 오히려 그쪽보다는 요한바오로2세의 교리 인식이나 노선과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신학적으론 보수적이면서 빈민 구제 등에 관심을 보이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 시절 명예가 실추된 아르헨티나 교회를 일으켜세우는 과정에서 보여줬듯 소탈하고 서민지향적인 모습이 신자들에게 감동을 줘왔기 때문에,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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