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세상이 다 아는 앙숙이었다. 유엔총회장에서 부시를 조롱하고, 미국이 미워했던 이란 대통령과 친하게 지내고, 미국이 국제 왕따로 만들어버린 쿠바를 돕고,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거대 개도국들과 어울려 구미 강국에 맞섰다. 그가 떠난 지금은 누가 뒤를 이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미 지도자들의 시대는 갔다.’ 미국의 오만함을 일갈하며 힘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던 차베스 같은 돈키호테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당분간 눈에 띌 것 같지 않다. 6일 영국 BBC방송은 웹매거진에서 “차베스는 세계 무대에서 미국을 대놓고 공격하던 최후의 비판자였다”고 보도했다.
사진 trueslant.com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여전히 당 기관지 그란마 등에 글을 쓰고 있지만 나이와 건강 때문에 공개무대에 나오지도 않는다. 동생 라울은 여전히 형의 그늘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쿠바는 세계 2위 석유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 같은 국력이 없다.
베네수엘라의 뒤를 잇는 자원대국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어떨까. 아마도 그가 차베스 이후 미국의 최대 숙적이 되겠지만, 그에겐 언변과 쇼맨십이 없다. 부시에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보낸 적은 있을지언정, “지옥불의 유황 냄새가 난다”고 공격했던 차베스같이 풍자와 독설을 마음껏 구사하는 달변가는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3연임 금지조항에 묶여 올 대선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에, 곧 이란 대통령 자리를 내줘야 할 처지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진작에 숨졌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처형됐고 오사마 빈라덴은 사살됐다.
이런 ‘적’들뿐 아니라, 미국과 힘겨루기를 할 배짱이 있던 영웅형 지도자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왕년의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처럼 미국의 잘못을 질타할 권위 있는 지도자도 없다. 차베스의 벗이던 제이콥 주마 현 남아공 대통령은 성폭행 스캔들 등으로 망신살이 뻗쳐, 남을 손가락질할 처지가 못 된다.
명실상부 제3세계의 맹주였던 룰라 다 실바의 뒤를 이은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스타가 될 카리스마가 없다. 차베스가 후계자로 지명한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이 베네수엘라 대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높으나, 그는 몸을 낮추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투사들이 떠난 자리를 관리형·실무형 후계자들이 메우는 양상이다.
시대적 변화도 있다. 2000년대 첫 10년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그에 맞선 반미의 시대였다. 그런데 미국의 정권이 바뀌고 두 차례 큰 전쟁은 얼추 끝났다. 오히려 세상사람들은 침체에 휘청이는 미국이 빨리 일어나 세계경제를 이끌어주길 바랄 정도다.
BBC는 “최근에 눈길 끈 인물이라면, 미국을 비난하는 노랫말을 썼다가 공개 사과한 ‘강남스타일’의 싸이 정도”라고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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