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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일기/ 사람을 다스리는 이

딸기21 2012. 12. 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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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견오(肩吾)가 미친 사람 접여(狂接輿)를 만났는데, 접여가 물었습니다. "일전에 중시(中始)가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하던가?"

견오가 대답했습니다. "사람을 다스리는 이가 스스로 원칙과 의식과 규례를 만들어 내면 사람들이 듣고 교화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접여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엉터리 덕이다. 세상을 그렇게 다스리는 것은 마치 바다 위를 걸어서 건너고, 강에다 구멍을 파고, 모기 등에다 산을 지우는 것이다. 성인이 다스리는 것이 어디 밖을 다스리는 일인가 먼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나서 행동하고 일이 제대로 되는가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새는 하늘 높이 날아야 화살을 피하고, 들쥐는 사당 언덕 밑을 깊이 파고들어야 구멍에 피운 연기 때문에 밖으로 튀어나와 잡히거나 파헤쳐져 잡힐 걱정에서 벗어난다. 자네는 오히려 이 두 미물보다 못하군."


이게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의 정치' 혹은 '놓아둠의 다스림'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오강남 선생은 이런 풀이를 붙였다. "백성은 언제 실직할지도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사는데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요정'이니 '안가'니 하는 데서 밤을 보내고, 인민들은 굶어 죽는데 '기쁨조'와 희롱이나 하면서 큰소리로 법령이다, 규제다, 운동이다, 개혁이다, 혁명이다 떠들어 보아야 헛일"이라고. 

이 분이 오래 전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살고 계시는데, 저 글귀를 보니 박정희-김일성 시절의 남북한을 염두에 쓴 것 같다. 지난 시대의 일들이라고 하자니... 요정 좋아하고 안가 만들던 사람의 딸이 남쪽에서 권력을 잡겠다 하고, 북에서는 인민들 굶기고 기쁨조와 놀았다는 사람의 손자가 3대 세습을 했고. 과거는 현재와 겹치게 마련이지만, 과거가 미래의 발목까지 잡을 것 같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우... 


3. 천근이 은양 남쪽에서 노닐다가 요수에 이르러 우연히 무명인(無名人)을 만났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무명인이 말했습니다. "물러가시오. 비열한 사람. 어찌 그렇게 불쾌한 질문을 하시오. 나는 지금 조물자와 벗하려 하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저 까마득히 높이 나는 새를 타고 육극(六極) 밖으로 나가 '아무것도 없는 곳(無何有之鄕)'에서 노닐고 '넓고 먼 들(壙埌之野)'에 살려고 하오. 당신은 어찌 세상 다스리는 일 따위로 내 마음을 흔들려 하오?"

천근이 또 묻자 무명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마음을 담담(淡淡)한 경지에서 노닐게 하고, 기를 막막(漠漠)함에 합하게 하시오. 모든 일의 자연스러움에 따를 뿐, '나'라는 것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하오. 그러면 세상이 잘 다스려질 것이오."


잘났다, 무명인... 니가 갑이다... 

그런데 '넓고 먼 들'의 한자를 해설자는 '황량지야'라 읽었는데 찾아보니 음이 '황' 아닌 '광'이고, 그 옆의 '량'자는 아예 없어서 인터넷 검색해서 베껴왔다. 어려버라.

'육극'은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오복과 육극'이라 해서 오복의 반대 즉 피해야 할 여섯가지 흉사(재난을 만나 갑자기 죽는 것/불치의 병으로 신음하는 것/큰 근심이 끊이지 않는 것/ 생활이 빈곤한 것/모질고 추악한 용모로 고통받는 것/심신이 허약한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닌 지리적 개념인 듯. 유교넷에 검색해 들어가니 이 장자 '응제왕' 편을 예로 들면서 "사방(四方)과 상하(上下)를 가리키는 육합(六合)의 뜻"이라 풀이를 해놨다. 그러니 무명인은 이 세상 천지 사방을 초월해 무하유지향으로 가겠다 하는 건가보다. 


이제는 지나가버린 나의 예쁜 가을... 니가 왕 해라



장자를 읽다 보면 '누가 누구를 만나 물었습니다' 하는 구절이 참 많다. 거의 대부분이 이렇다. 저 시절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의 의견을 구하고 배우는 게 정치의 시작이라 생각했나보다. 묻고 구한 뒤에 다스리려 하는 사람들, 어디 없는지, 묻고 구하고 싶으오.


블로그에 시덥잖은 글이라도 좀 올려볼까 했지만 나는 무명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인은 더더욱 아니지만 ㅋ) 이틀 남은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까 걱정(?)되어 뭔가 진득하게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좀더 읽어볼까나... 


4. 양자거가 노자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메아리처럼 민첩하고, 기둥처럼 튼튼하고, 사물을 뚫어 보고, 머리가 명석합니다. 그러면서도 도를 배우는 데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가히 '명철한 왕(明王)'에 비견할 만합니까?"

노자가 대답했습니다. "성인과 비긴다면 이런 사람은 고된 종이요, 일에 얽매인 재주꾼에 불과하오. 몸을 지치게 하고, 마음을 졸일 뿐이지. 호랑이나 표범의 무늬는 사냥꾼을 끌어들이고, 재주 부리는 원숭이나 너구리 잡는 개는 목줄에 매이게 되는 것. 이런 사람을 어찌 명철한 왕에 비길 수 있다는 건가?"

양자거가 놀라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명철한 왕의 다스림은 어떠하온지 여쭙고 싶습니다."

노자가 대답했습니다. "명철한 왕의 다스림이란, 그 공적이 천하를 덮어도 그것을 자기가 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변화시키는 힘이 만물에 미쳐도 백성들이 그에게 굳이 기대려 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들먹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한 것으로 알고 기뻐하기 때문이라. 이런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서 있고, 없음의 세계에 노니는 것이다."


나왔다, 노자 선생님. 나는 무지하니 걍 내 맘대로 생각하련다. 왕이 아무리 잘난들 내 위에 왕이 있어 나를 다스리면 좋을 거 하나 없다. 메아리처럼 민첩하면 메아리로 살고, 기둥처럼 튼튼하면 기둥으로 살아라. 왕, 나는 필요 없다~ 이거시 진정한 백성의 애티튜드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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