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상상 여행

1. 상상 여행의 시작 - '동유럽'이란?

딸기21 2012. 4. 19. 16:37



3년 전 동유럽에 대한 개괄서(A Concise Historical Atlas of Eastern Europe)를 번역을 했는데, 아쉽게도 책은 나오지 않았고(딱 짐작이 가시겠지만 상품성이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해보이죠? ㅎㅎ) 이런저런 곡절 끝에 문제의 출판사는 그만 사라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번역한 원고는 제 DB에 남겨져 있지만 결국 책은 없는 상황이랄까... 

(바로 요 책... 저자는 Dennis P. Hupchick와 Harold E. Cox)


번역한다고 애를 썼는데... 안 돌아가는 머리 굴리느라고 고생했는데... 머, 동유럽에 대한 공부에는 도움이 됐습니다. 동유럽에 대해 니가 알아서 머해... 라고 하면 또 할말은 없지만서도... 책의 내용, 곁다리로 공부한 것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일어난 것들을 뒤죽박죽 섞어서 동유럽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할까 합니다. armchair traveller가 꿈이기도 하거니와... 동유럽 역사에 대해 국내에 별로 출간돼 있는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1. 동유럽은 어떤 곳- 동유럽의 지리적 개관


동유럽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가리킬까요? '확실한 경계'라는 것은 없지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중동이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아시아냐, 하는 문제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세상 사람들이 '어디를 동유럽이라 부르느냐'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구분이 될 것 같은데요. 


러시아는 대개들 동유럽이 아닌 '러시아'라 따로 치고, 그리스는 동유럽 아닌 '그냥 유럽' 혹은 '남유럽'으로 분류하지요. 유라시아 땅덩어리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확실한 자연적인 경계는 없지만 대략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러시아연방으로 이어지는 선을 유럽의 동쪽 경계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지도는 CIA 월드팩트북 상의 구분입니다. 월드팩트북은 동유럽과 남동유럽을 살짝 다른 색깔로 다시 구분해놨네요. 아무튼 이 지도에서 주황색과 담황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통칭 동유럽이라 보면 될 것 같고요. (벨라루스 서쪽, 러시아와 같은 색깔로 표시된 곳은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지역입니다)


동유럽 안으로 들어가보지요. 동유럽 내부의 지리는 다시 세 지역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남쪽의 발칸 반도입니다. 동유럽, 하면 사실 '발칸'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발칸 반도는 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 동쪽으로는 흑해, 남동쪽으로는 에게 해, 남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하고 있습니다. 북쪽의 경계선은 카르파티아 산맥입니다. 다뉴브 강을 비롯한 여러 강들도 발칸 반도와 그 위의 지역을 구분해주는 자연적인 경계가 됩니다.


이 지도에서 환하게 표시된 부분(나라들)이 발칸 반도...


발칸 반도의 70%는 산악지대라고 합니다. 좁은 해안 평야들을 제외하면 내륙의 저지대는 깊은 강의 계곡을 따라 형성돼 있습니다. 얼마 안 되는 농경지와 도로들도 이 강들을 따라 이어져 있습니다. 반도 내의 기후는 다양합니다. 해안은 지중해성, 내륙은 대륙성 기후랍니다. 


전반적으로 발칸의 자연환경은 거칠고 제각각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발칸=화약고'라고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요... 아마도 1차,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정이 유럽인들에게 그런 등식을 각인시켰겠죠? 역사적으로 보아 발칸 사람들의 삶은 안정이나 번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정된 자연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민족이 수백 년 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인 이유도 거기에 있겠지요. 



발칸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를 읽어보세요. 

이것이 바로 유명한 비셰그라드의 다리... 원래 이름은 파샤 소콜로비치 다리인데 그냥 '비셰그라드 드리나 강 다리'라고들 부른다고 하네요. /위키피디아



발칸을 지나 북부의 다뉴브 분지로 넘어가면 지리적 조건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다뉴브 유역 중심부의 분지는 비옥하고 드넓은 평야랍니다. 다뉴브 강이 발칸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하는 지역에서부터 북서쪽으로는 비엔나까지 평야가 펼쳐지고, 산들이 둘레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사슬처럼 감싼 산들 사이사이에 두 개의 넓은 고원이 있어 분지와 바깥을 가르는 경계가 됩니다. 남동쪽에 있는 것은 트란실바니아 고원, 북서쪽에 있는 것은 보헤미아 고원입니다. 두 고원과 분지 가운데의 평야는 강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대륙성 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이 평야에서 오랜 세월 농경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다뉴브 강의 흐름을 중심으로 본 지도. /위키피디아


드넓은 지역에 걸쳐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다뉴브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들 덕에 교통·수송이 발달했고, 그 덕분에 이 일대는 오랫동안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도 영토의 심장부에 위치한 풍요로운 다뉴브 분지 덕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보시면 알 수 있듯, 결코 이 지역도 '평탄'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하기사 세상에 평탄했던 지역이 어디 그리 있겠냐마는). 이 지역을 지배한 세력은 계속해서 변했거든요...


특히 1차 대전 뒤 합스부르크 제국이 조각조각 쪼개지면서 생겨난 민족국가들은 제각각 다뉴브 분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고, 통합된 제국 시절 번창했던 경제적 연결망은 국경선들로 어지러이 갈라졌습니다. 그 결과 새로 생겨난 나라들은 모두 풍부한 자연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정치적, 경제적 실패를 떠안게 됐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동유럽의 스토리... 


암튼 경치는 좋습니다... 위키에서 퍼온 겁니다만... 현재의 루마니아 안에 있는 트란실바니아의 전원 풍경.



다뉴브 분지 바로 위쪽으로는 지대가 낮아집니다. 북쪽으로 640㎢ 올라가면 발트 해가 있고, 그 사이에는 저지대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 일대는 남북으로는 산맥과 바다에 막혀 있지만 동서로는 뚜렷한 지형적 경계가 없습니다. 서부에는 오데르 강, 동부에는 비스와 강이 흐르며 폴란드 평야를 적셔줍니다. 이 평야는 발칸 반도와 다뉴브 분지 외에 동유럽의 세 번째 권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슬라브어로 ‘폴레(pole)’라는 단어는 들판, 벌판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따라서 ‘폴란드’라는 이름은 ‘들판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폴란드 평야의 지형은 남쪽의 산맥에서부터 북쪽으로 갈수록 서서히 낮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남쪽 산맥 부근에는 저지대에 둘러싸인 고지대들이 제각각 소규모 지역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광물자원과 농경지를 보유한 지역권들은 오랫동안 서로 치열한 경쟁을 펼쳐 왔습니다. 반면 물결치듯 펼쳐진 가운데 평원과 북쪽 해안지대에는 이렇다할 자원이 없다네요. 북부는 대지의 양분을 빨아먹는 소나무 숲으로 덮여 비옥하지가 못한데다 거친 대륙성 기후라고 합니다. 또 동서로 열려 있는 지형이라 외부로부터의 침략도 잦았고요. 이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적들에 맞서 땅을 지키려 애쓰며 살아온 이들은 정치적 독립을 중시하는 성향을 띠게 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유럽의 동쪽 부분은 이렇게 세 부분- 동부·남동부 유럽(발칸 반도)과 중·동부 유럽(다뉴브 분지), 북동부 유럽(폴란드 평야)으로 나뉘어 있다고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