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

딸기21 2010. 2. 26. 09:59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  The Shackled Continent(2004) 
로버트 게스트 저/김은수 역 | 지식의날개(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아프리카에 대해 국내에 출간돼 있는 책들을 다 보지는 못했어도, 관심 있는 주제여서 무엇이 나왔는지는 대략 훑어본다. 뭐,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다룬 책은 거의 없으니까. 근래 유행하는 여행기 종류로는 몇 종 나와 있다. <쌀집 아저씨> 김모 PD의 책은 얼핏 서점에서 훑어보니 눈길을 끌긴 하는데 나처럼 ‘일’로 아프리카 정보를 얻어야 하는 사람들이 골라서 볼 책은 아닌 것 같다. 황학주 선생님의 책들은 사진과 글이 좋지만 역시나 여행기 혹은 에세이 성격이다. 


이산출판사에서 나온 존 아일리프의 <아프리카의 역사>는 매우 훌륭한 책이다. ‘제대로 된’ 아프리카 역사책은 이거 하나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문제는 이 책이 ‘너무 늦게 하지만 너무 일찍’ 나왔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 책들이 좀 있어서 그런 것들을 맛보기로 읽고 이 책을 읽는다면 아주 좋겠지. 왜냐면 아일리프의 책은 인구사적인 측면을 하나의 테마로 잡고, 인구통계학의 관점에서 아프리카의 역사와 국가의 발달(혹은 미발달)과 노예무역과 그 폐해 등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이고 교과서적인 서술의 역사책을 보고 나서 이렇게 예리하고 충실한 책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 그렇게까지 알려고 하는 독자층이 두텁지 않기에, 제대로 된 공부의 순서를 밟기가 힘들다. 
 

아일리프의 책이 나온 지 몇 년이 지나고 최근 들어서야 아프리카에 대한 책들이 서점에 등장을 하는 모양이다. 그 중의 한 권은 지금 내 책상에 놓여 있는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다. 제목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아일리프의 책을 읽기 전에 훑어보면 딱 좋을 ‘맛보기용 역사책’인 셈이다.


이코노미스트 기자 출신인 로버트 게스트의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은 역사책은 아니다. 이 책은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특파원 생활을 해온 한 외부인(서유럽 제국주의국가 후손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은 아니므로 굳이 서구인이라고 못 박고 싶지는 않다)의 시선으로 본 ‘현재의 아프리카’를 담고 있다. 장점은 저널리스트의 저술다운 현장감이다. 그러면서도 미국 저널리스트 작가들처럼 몇몇 사례 얹어놓고 설(說)을 풀어가는 식의 경박한 접근을 피한다. 

무엇보다 그의 접근은 비판적이다.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해 그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지만 논조는 매우 ‘비판적’이다. 아프리카는 현재 이러저러한 것을 잘못 하고 있고, 그러니 제대로 되려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이다. 아프리카를 보는 제국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벗어나보겠다며 얄팍한 낙관주의적 묘사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아프리카의 국가지도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신랄하다. 제목의 ‘뱀파이어’라는 말은 옮긴이에 따르면 가나의 학자 조지 아이테이가 만들어낸 것으로, 국민의 고혈을 착취하는 탈식민지 시대의 아프리카 정부를 가리킨다.


“저자는 현대 아프리카의 양면성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다. 그는 첫 장에서 식민지 해방투쟁 지도자였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수십 년째 국가와 국민의 고혈을 빨아 온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뱀파이어’같은 이런 정치인들이 대륙을 빈곤의 구렁텅이에 빠뜨려 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대륙의 희망인 남아공에 할애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을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수립된 남아공 혹인 정부가 백인과의 진정한 화합을 통해 모든 인종과 분화가 어우러지는 ‘무지개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지 저자는 고뇌하고 있다. 그에게 아프리카는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인 것이다.” (옮긴이의 글)


“아프리카에는 사악한 지도자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는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통제제도가 거의 없어 선의의 지도자들도 종종 국가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 존경받는 전 탄자니아 대통령 줄리어스 나에레레 Julius Nyerere는 진정 국민을 잘살게 만들기 위해 수백만 명을 거대한 집단농장으로 보내, 식량 자급능력을 대부분 파괴해 버렸다.”


서구 저술가들이 옛 식민지 지역들에 대해 서술할 때, 노골적인 식민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서구 저술가들 뿐 아니라 누구든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의 식민주의 유산과 그 파괴적인 영향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아프리카의 빈곤과 내전의 책임 중 식민지 종주국들의 책임을 몇 %로 볼 것인가가 항상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게스트의 접근은 ‘용감하다’. 최근 미국과 유럽 논자들의 경향이기도 한데, 과감히 ‘모든 것을 식민주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참으로 복잡한 문제다. 한국은 일본 식민주의로 인해 얼마나 피폐해졌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파동에서 볼 수 있듯 우리 내부에도 여러 가지 의견들이 존재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한국은 발전했다’는 것, ‘아프리카는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한국은 발전했고, 한국 등 ‘동아시아 호랑이’ 발전모델은 아프리카 식민주의의 파괴적인 영향을 ‘줄여서 말하려는 쪽’이 항상 언급하는 사례다. 똑같이 가진 재산을 도둑질 당했지만 한 쪽은 그 뒤에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됐는데 한쪽은 여전히(혹은 오히려 더) 가난하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아일리프 식으로 말한다면 아프리카는 인구 구조가 동아시아와는 달랐고, 따라서 장기적인 노예 수탈의 폐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는 기후와 풍토 자체가 많은 인구를 지탱하기 힘들다. 여기에 제프리 삭스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식의 조언을 덧붙이면, 그러므로 아프리카 경제의 ‘마중물’이 되어줄 수 있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원조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게스트가 치고 들어가는 곳은 이 지점이다. 가난과 원조 사이. 도둑질한 놈들은 나쁜데 그 탓만 할 수는 없다, 아니 그 탓 하느라고 오히려 더 발전에 지장을 받고 있다. 나쁜 놈들은 도둑 탓을 하면서 지금 그 집안을 망치는 놈들이다. 기계적인 원조는 안 된다, 시장이 때로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일 리가 있는 지적이니 이런 주장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세계은행에서 올해 일해온 윌리엄 이스털리 등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식민통치자들이 떠난 후에도 식민주의 유산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일부 아프리카 사람들은 남아공의 스티브 비코 Steve Biko 가 말한 ‘사고의 식민지화’가 아프리카 대륙을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현실을 모두 식민 유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한 시각은 어떻게 하면 이런 재난이 종식될 수 있느냐에 대한 아무런 단서를 제공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서구인들은 과거 식민주의자들의 죄업에 대해 특별한 죄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다. 또 아프리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수십 년 동안 부유한 국가들이 실천해온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아프리카가 왜 그렇게 가난한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아프리카가 왜 그렇게 비생산적인지를 알아야한다. 독립 이래로 아프리카 정부는 국민을 실망시켜 왔다. 일반시민이 공권력의 압력 없이 스스로 부를 이룰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한 아프리카 국가는 거의 없다. 법치를 유지하고 계약을 지키거나 재산권을 보장해주는 국가도 거의 없다. 나이지리아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듯이 탐욕스러운 정부는 일반적으로 국가를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더 나쁜 것은, 콩고와 라이베리아에서 보듯이 권력이 부를 가져  오면 그것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운다는 것이다.”


지금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문제는 ‘정치’, 바꿔 말하면 ‘흡혈귀 같은 정치지도자들’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종족 분규만 봐도 그렇다. “아프리카에서 종족 분규가 불가피한 것만은 아니다. 탄자니아에는 12개의 서로 다른 종족이 있지만 정치인들이 종족 간 갈등을 부채질하지 않은 덕에 독립 이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종족 문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종족주의를 이용하려 드는 무리들의 영향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아프리카 정치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원 싸움으로 빚어진 내전이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종족·종교 등을 끌어들인 다양한 사례들이 거론된다. 


요는, 비참하리만치 가난한 사람들을 보았을 때 과연 누구를 탓하는 것이 그 상황에 대한 가장 올바른 판단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의 가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들을 찾아서 고쳐야 한다,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를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감이 가는 지적이다. “착취보다 더 나쁜 착취 없는 무직(無職)생활”이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외부인(특히 서양인)이 하기 힘든 과감한 지적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의 문제는 현지인들이 탐욕스러운 다국적 기업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다국적 기업들이 이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아프리카에서의 사업이 어렵고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사업하기를 주저한다. 또한 나쁜 평판을 얻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 노동 착취에 연루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일부 다국적 기업은 개도국 공장을 폐쇄했고 이에 따라 고용도 줄어들었다.” 

스웻 샵(sweat shop. 저개발국의 노동착취형 공장) 문제는 항상 복잡하다. 따라서 인권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접근하다가는 오히려 빈곤지역의 빈곤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이, 이 ‘검은 대륙’은 진실이 가려지기가 참으로 쉬운 곳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이 책에서 나이지리아 군부독재 정권 시절 사형당한 환경운동가 켄 사로-위와 Ken Saro-Wiwa 의 사례를 들고 있다. 저자는 “석유회사 셸이 사로-위와의 사형을 막아내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다소 억울한) 비난을 받았다”는 식으로 써놓았다.


책에는 켄 사로 위와의 이름만 언급돼있고 자세한 사정은 나와 있지 않다. 사로-위와는 유전지대인 니제르 델타 지역의 오고니 원주민 거주지역에서 셸의 환경파괴에 항의하는 운동을 벌였던 원주민 운동가다. 


셸은 70년대부터 20여년간 니제르델타의 오고니족 원주민 거주지역에서 원유 캐내면서 환경을 파괴했고, 93년에는 파이프라인을 만든다며 40일간 원유를 누출시켰다. 사로-위와는 셸에 항의하며 오고니 지역 내 채굴 중단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사실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셸에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다. 얼마 안 있어 사니 아바차 장군이 이끄는 나이지리아 군부독재정권은 오고니족 탄압에 나섰고, 사로-위와는 5명의 동료들과 함께 군인들에 체포돼 처형됐다. 처형된 이들의 유족 10명은 미국 국내법인 ‘외국인 불법행위 배상청구법’에 따라 미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셸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셸은 개입 혐의를 부인했으나 2001년 그린피스가 “셸이 군정에 돈을 댔다”는 증언을 폭로해 망신을 당했다. 이어 나이지리아군이 사로-위와 등을 체포할 때 셸의 헬기를 타고 밀림에 들어간 사실이 드러났고, 셸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증인들을 매수하려 했던 것까지 폭로됐다. 2003년 셸 나이지리아 법인은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행동이 현지 분쟁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일부 책임을 시인했다. 지난해 6월 셸은 미 법원에서 일부 책임을 인정하고 1550만 달러(약 200억원)를 내기로 합의했다.


게스트의 책은 2000년대 초반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가 사로-위와와 관련된 셸의 추잡한 행동에 대한 ‘속보’들을 몰라서 안 썼는지는, 아니면 알면서도 “그래도 셸은 좀 억울하다”라고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인권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인권보호의 대상’인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하나의 중요한 잣대를 무시해버릴 수도 없다. 그래서 복잡한 것이다. 

저자의 ‘과감한 충고’들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박정희라는 ‘효율적인 독재자’를 가졌던 우리는 복 받은 나라였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프리카처럼 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오로지 박정희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부류들도 있지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말 그대로 ‘조건이 달랐으니까’ 박정희 아닌 다른 사람이 좀더 민주적인 개발을 진행했더라도 잘 살게 되었을지 혹시 아나? 몇 %가 ‘똑똑한 지도자’의 덕분인지는, 몇 %가 ‘식민주의의 탓’인지를 계산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 개발과 경제성장과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감하면서도 마음은 살짝 불편하다.


아프리카 비관주의(Afro - pessimism)라는 것이 있다. 원조를 아무리 퍼부어도 가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원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경제발전 대신 내전에 피바다로 치닫는 아프리카를 보면서 낙관론자가 되기는 것은 쉽지 않다. 아프리카를 얘기하면서 늘 자연공원과 동물과 사파리와 빅토리아 폭포, 혹은 사막 트레킹이나 식민주의의 우울한 유산만을 언급할 수는 없다. 


저자의 말마따나 ‘아프리카는 왜 가난한가’,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며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같은 방대한 주제에 대해 집필할 경우 글쓴이는 실제 자신이 아는 바가 얼마나 적으며, 그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자신을 얼마나 쉽게 바보로 만들 수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가난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에 “완곡한 표현이나 회피하는 태도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신랄하다. 희망과 낙관을 섣불리 이야기하기보다는, ‘비관적인 현실을 고칠 방법을 솔직하게 얘기해보자’라고 제안하기 때문이다. 

“일부 아프리카 사람들은 언론인은 현지 언론이건 외국 언론이건,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너그러워야 하지 않느냐고 내게 말한다. 가난한 나라의 정부가 부유한 나라의 정부처럼 효율적이고 깨끗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누가 프랑스 정부에게서 몇 백만 유로를 사취한다면 이 것은 범죄행위이고 그는 구속되어야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일반 프랑스 시민의 생활은 변함없이 안락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 말라위 정치인이 비상용 비축식량을 횡령한다면 사람들이 굶주리게 된다.”


그러니 아프리카의 우울한 현실과 ‘식민주의 책임론’을 생각하며 조금은 씁쓸해지다가도, 신랄한 지적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표면적인 것들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하며 많이 보고 많이 느껴온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랄한 지적 밑에 숨어있는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이니까. 하지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가 대륙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어느 나라에서 언제 내전이 일어났는지 정도의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아마도 한국의 독자들 대부분이 거기에 해당되겠지만)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뒷부분은 특별히 저자가 특파원으로 오래 지냈던 남아공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제이콥 주마로 대통령이 바뀌기 전의 상황이어서 시의성은 조금 떨어진다. 



▶ 돈이 전부는 아니다. 문제는 농민으로서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 하면 아프리카 사회가 발전해 더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얌을 재배하는 것 말고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그 해답은 정치에 있다고 본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난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무능한 정부 밑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짐바브웨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따스하고 온화한 기후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풍광, 햇볕과 야생생물, 폭포와 음악과 예술, 그리고 꽃과 맛난 음식이 있다. 봄에는 자카란다 나무가 거리를 온풍 푸른 꽃잎으로 뒤덮는다. 짐바브웨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친절하며 남을 잘 대접할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가장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에 속한다. 땅이 넓고 대부분이 가축을 기르거나 밀과 옥수수, 담배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 땅 밑에는 금, 백금 및 귀금속 광맥이 매장되어 있다. 이 나라는 현대적인 금융센터, 숙련된 제조업과 적절한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독립한 지 20년이 지난 현재, 짐바브웨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고 수명도 10년 이상 단축되었다.


▶ 대부분 아프리카 농민들은 토지 소유권이 없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대출 담보로 재산을 이용할 수가 없다. 대출을 받지 못하면 농기구나 종자를 구입하기가 어렵고 사업을 시작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페루의 경제학자인 에르난도 데 소토에 따르면 1997년 기준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법적으로 보장 받지 못하는 도시지역 주택들의 총 가치는 5800억 달러나 되었다. 그는 아프리카 농민들이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방목하고 있지만 공식 소유하고 있지 않은 농촌 토지 가치를 3900억 달러로 추정했다. 주택 가치를 합산하면 거의 1조 달러가 된다. 개발도상국 전체로 볼 때 사장된 자본의 총 가치는 9조 달러가 넘는다.


▶ 표면상으로 보아서는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보상하기 위한 법에 반박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당한가’가 아니라 ‘그것이 효과가 있느냐’다. 

남아공 경제는 아파르트헤이트와 그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에 침체되었다. 프리토리아 대학의 경영학 교수 템바 소노는 이렇게 말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부가 얼마나 심하게 국가 전체를 궁핍하게 만들었는지 아는 남아공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 흑인 1인당 소득은 남아공 백인보다 높고, 남아공으로 이주해 정착한 네덜란드인과 프랑스인 후손들은 유럽에 남아 있던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더 가난하다. 50년 전 일본은 남아공과 GDP 수준이 비슷했지만 오늘날 남아공 국민 1인당 GDP는 일본의 20%에 불과하다. 

적극적 우대 정책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이 정책의 수혜자는 주로 중산층이다. 최상의 교육을 받은 흑인들이 빠르게 관리자급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흑인경제권한이양 Black Economic Empowerment 은 ANC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 중 하나다. 

(중략) 문제는 이 같은 이론은 그야말로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흑인 거물 기업인 중에서 대기업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흑인권한이양이 적극 추진됨에 따라 젊은 흑인 기업가를 위한 몇 가지 그릇된 역할모델이 생겨났다. 아주 큰 부자가 된 흑인 기업가들은 주로 정치적 영향력을 십분 활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사업 일부를 차지함으로써 부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새로운 공장이 설립될 수가 없고 새로운 직업도 창출되지 않는다. 남아공에 진정 필요한 것은 다수의 흑인들이 무(無)에서 시작해 스스로 사업체를 세우는 것이다.


▶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글’보다는 식량과 의약품이다. 그렇지만 정보통신 기술 IT은 이 2가지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아프리카 휴대전화기업은 개인소유이며 많은 기업이 경쟁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라고스나 나이로비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매장에 들어간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조치가 끝나고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유선전화의 경우 오랫동안 독점적 지위를 가진 국영 유선전화 회사는 가정용 회선을 연결시키는 데에만 수년이 걸리며, 열악한 서비스에 비용은 엄청나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신용경력이 없어 전통적인 전화회사에는 계좌를 개설한 수 없다. 그러나 개인 이동통신 회사들은 선불 전화카드를 판매한다. 지불한 금액만큼의 시간이 소진되면 새로운 카드를 구매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매달 말이면 지불 능력을 초과한 액수가 찍힌 청구서를 받을 가능성은 없으며, 이들에게는 이 점이 중요하다.


▶ 지난 수년 동안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일들은 매우 고무적이다. 오바산조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에는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빈곤 원인인 부패 억제를 위해 거의 아무 일도 한 게 없다. 그러나 두 번째 임기에는 부패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직하고 성실한 전문가 출신 관리자로 구성된 팀을 임명했고, 은고지 오콘조 이웰라 Ngoji OkonJo Iwela 재무장관이 이 팀을 이끌고 있다. 나는 장관이 공항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대개의 권력 있는 나이지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나이지리아의 석유수출 대금이 각급 지방 정부에 얼마나 지급되고 있는지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매달 공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