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미래
Day of Empire : How Hyperpowers Rise to Global Dominance--and Why They Fall
에이미 추아 저/이순희 역 | 비아북
지난해부터 읽기 시작해서 한동안 책장을 덮어두고 있다가 얼마 전 마음잡고 다시 펼쳤다. 결국 이 책이 2010년에 처음으로 읽은 책이 되어버렸다. 별로 의미 없는 짓이긴 하지만, 나는 해마다 그 해 처음으로 독서기록장에 남길 책을 나름 선별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올해 첫 책으로 삼고 싶었던 것은 이 책은 아니었다. 벌써 1년도 넘게 조금씩 읽고 있는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를 첫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제국의 미래>가 생각보다 술술 읽혀서 순서가 바뀌었다.
이 책은 술술 읽힌다. ‘찾아보기’까지 포함하면 558쪽,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이지만 저자 후기부터 찾아보기에 이르는 뒷부분 곁다리들을 빼고 나면 본문은 477쪽 분량이다. 요즘 책들 다 그렇듯이 글씨는 크고 줄 간격은 넓고 글자들이 ‘공간을 넓게 쓰는 플레이’를 하고 있다. 물리적인 밀도 뿐 아니라 내용의 밀도도 낮다. 술술 읽히는 것은 그 때문이며, 다 읽고 나서도 ‘대작을 읽었다’는 뿌듯함을 주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중국인의 ‘혈통’임과 미국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한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와 법학교수를 하고 있는 미국인 이민자 2세로서 저자는 미국이라는 ‘현대의 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에서부터 로마, 중국(당), 몽골,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만, 명(明), 무굴, 영국에 이르는 과거의 제국들을 살펴보며 그들이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과 쇠망하게 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미국에 시사하는 바를 살핀다.
저자는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취급할 나라 혹은 제국’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그 나라의 권력은 동시대의 경쟁국들이 장악한 권력을 분명히 능가해야 한다. 또한 그 나라는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경제력, 혹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그 나라는 단순히 특정한 한 지방 혹은 지역에서의 우위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서 지구상의 방대한 구역과 방대한 인구에 대해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런 제국들이 커나갈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인은 ‘관용’이었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여기서의 관용은 현대의 인도주의적 관용 개념하고는 다르다. 저자가 최초의 패권국가로 꼽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이 인도주의자, 인종평등주의자였겠는가. 그들은 전략적으로 인종, 종교, 혹은 민족에 상관 없이 관용적인 모습을 보였다. 인재를 등용하고 돈 벌 길을 열어 주어 그들의 두뇌를 제국의 두뇌로 삼은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관용은 이런 거다. 차별 없는 너그러움이 아니라, 두뇌와 기술을 쓸 수 있게 마당을 열어주는 것. 그렇게 해서 피정복민들을 제국의 동력으로 만든 것이 성공요인이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관용은 인종, 종교, 민족, 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일컫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관용에는 존중이 포함되지 않는다. (중략) 요컨대 이 책의 핵심적인 개념은 ‘상대적인’ 관용이다.”
사람들(두뇌와 기술)은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나라로 흘러들어간다. 관용이 없어져 지배 분파의 배타주의가 강해지고 이민족을 핍박하게 되는 순간 제국은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케이스스터디라고 하는데, 과거의 제국들로 꼽은 나라가 8곳이나 된다. 사례는 많지만 깊지는 않다.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이 남들의 역사연구를 바탕으로 논지를 펼치다보니 새로운 사례들이나 학술적으로 눈길을 끄는 내용보다는 ‘다 알려진 내용’을 중심으로 주장을 전개했다. 니얼 퍼거슨의 <COLOSSUS>나 세계체제를 다룬 책들에서 흔히 보던 내용을 논거로 들어서, 읽는 동안 새로운 디테일을 습득하는 잔 재미는 없었다. 그래서 동어반복이 심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런 부분들을 슥슥 지나가다보니 책장이 마구 넘어갔다.
충분히 새겨들을만한 논지이긴 한데, 가장 중요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제국이 관용을 잃어 쇠락하는 것인가, 아니면 제국이 쇠락해지다보니 관용이 없어지고 배타적이 되는 것인가?
저자가 예로 든 몽골의 경우 지배자들의 내분과 능력부족 등 여러 요인들 때문에 제국이 흔들리게 됐다. 그러자 “중국에 거주하는 쿠빌라이 칸의 자손들은 자신들이 ‘지나치게 중국화’되어 허약해졌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관용을 잃는 것과 제국이 쇠락하는 것은 선후관계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문제일 것이다. 즉 관용이 사라져 제국이 망하는 측면도 있고, 제국이 쇠락하다보니 반작용으로 배타적이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요새는 ‘미국은 제국이며 제국이어야 한다’는, 이 책과 비슷한 논지의 책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이 책의 저자도 재수 없는 니얼 퍼거슨 류하고 맥락을 같이 한다. 미국을 사랑하는 이민2세의 충정이라고만 해두자. 9.11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배타적이 되고, 이민자들에게 문 닫아걸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니 현대의 제국인 미국의 ‘관용 상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미국이 관용을 잃으면 안 된다고, 온 세상에 더 문을 열어젖히고 세계 모든 곳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을 받아 예전처럼 미국이 두뇌로 삼으라고 말한다.
내가 궁금한 것은, 첫째 미국이 지난 10년간 보여준 배타적인 태도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은 것인가, 혹은 그 배타적인 모습이 ‘이미 쇠락이 시작된 데에서’ 나온 반작용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 제국의 쇠망을 말하는 이들은 많다. 대테러전 이전부터 제국의 주기(週期)를 들어 쇠망을 우려한 논자들은 빼고, 대테러전 이후 미국의 옹고집을 보며 쇠락을 경고한 사람들도 많다. 즉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작태만을 놓고 걱정한 사람들이라면 오바마가 일방주의를 다자주의로 돌리겠다고 최소한 말로나마 선언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 제국의 지위를 유지할 의지와 능력과 유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앞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으려면, 미국이 아닌 유라시아 변두리 땅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있으려면 앞날을 예견케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두 번째로, 한국은 어떤가 하는 점이다. 한국도 ‘미국의 관용’의 덕을 보았고, 미국의 관용에 기대어 우러르고 혜택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이들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얼마나 익숙한가.
제국이 되기 위해서 관용을 키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전략적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관용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공동체가 성장하게 만든다. 제국 뿐 아니라 모든 사회는 관용(다자주의, 개방주의)이라는 토대에서 자란다. 제국의 관용만 이야기한 이 책을 읽으면서 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저자는 제국의 필요조건으로서 관용을 이야기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지만, 제국만이 관용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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