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이보아 저 | 민연
약탈 문화재 논란에 대해 쉬우면서도 개념 있게 설명한다. 엘긴 마블스, 로제타스톤으로 시작되는 고대 유적·유물, 나치의 치밀한 문화재 약탈·파괴공작, 약탈 문화재를 둘러싼 ‘문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대립, 그리고 외규장곽 도서를 비롯한 한국의 빼앗긴 문화재 실태와 반환운동에 대해서까지 폭넓게 다뤘다.
약탈 문화재 그림들과 유명 박물관에 대한 설명들이 곁들여져 있어 읽을거리 겸 볼거리가 된다. 단점이 있다면, 저자가 자기 박사논문을 풀어서 좀 손쉽게 책으로 만들었다는 느낌. 어떤 때는 ‘보론’ 해가면서 학술서적 쓰듯이 했고, 어떤 때는 ‘미술 읽어주는 여자’ 식으로 편안히 썼다. 그래도 내용은 꽤 알차고 좋다.
파르테논 신전은 13세기엔 그리스 정교회, 15세기 중엽엔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되는 비운을 겪었다. 17세기 그리스를 정복한 터키군은 이곳을 화약고로 사용하였는데, 베니스 함대가 포격하는 바람에 신전에 안치된 아테나 여신상을 비롯해 주요 조각품이 대부분 파괴됐다. 이 때 남은 조각품을 ‘파르테논 마블스’라 부른다. 그런데 1810년 당시 터키 주재 영국대사인 엘긴 경(본명 토머스 브루스)이 영국으로 약탈애가면서 ‘엘긴마블스’라 부르기 시작했다.
엘긴이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르내린 건 1816년경. 말년에 생활이 어려워진 엘긴에 영국 정부에 엘긴 마블스를 팔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처음에는 구입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국회 투표결과에 따라 엘긴 마블스를 3만5000파운드에 구입하게 된다. 그리스는 1941년 돌려달라고 요청하였고, 처칠의 노동당 정부도 반환 방침을 밝혔지만 2차 대전이 끝나자 ‘반환불가’로 입장을 바꿨다. 80년대 그리스 문화장관이 된 멜리나 메르쿠리는 엘긴 마블스 반환요구 캠페인을 시작, 전세계에 ‘약탈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83년 그리스 정부는 영국에 다시 반환을 공식 요청했으나 영국은 ‘문화재 구제론’을 근거로 거부했다. 엘긴이 터키 정부가 승인한 합법적인 방법으로 옮겼고, 영국은 최적의 과학적 시설에서 유물을 보존하기 때문에 그리스로 돌려줄 경우 오히려 공해 등으로 훼손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83년 72%, 86년 68%, 97년 92%로 반환에 찬성하고 있다. 98년에는 대영박물관이 세계문화유산인 엘긴 마블스를 손상시킨 뒤 이를 숨기려 했던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문화재 보호규정은 1874년 브뤼셀 회의에서 결의한 ‘브뤼셀 선언’ 제 8조 “역사적 기념물이나 예술품, 과학 작품에 대한 압류, 파손, 또는 고의적 손상은 모두 권한 있는 당국이 기소를 해야 한다”에도 나온다. 이미 존 로크 등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문화재 반환의 도덕적 원칙’을 이론으로 정립한 바 있다. 이들은 “과학과 예술 문화재는 영원히 해당 국가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태로 보존해야 하며 약탈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는 반입 문화재를 자국의 ‘제2의 문화유산’으로 주장하는 소위 ‘수집자 소유 원칙’이 지배적이었다.
그후 국제조약들과 국제 재판소 판례는 전시 문화재 약탈과 훼손을 일관되게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제 245조에서는 독일이 1차 대전 뿐 아니라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일어난 모든 문화재 반출 책임을 지도록 했다. 생제르맹 조약은 오스트리아가 폴란드에게 171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문화재를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1921년 리가 평화조약은 폴란드와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체결한 것인데 1772년 폴란드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완전히 반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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