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그린 :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 Hot, Flat, and Crowded
토머스 L. 프리드먼 저/이영민,최정임 역 | 21세기북스
유행이라고 해서 또 꾸역꾸역 읽었다. 이 책에 나온 기후변화/에너지에 대한 것들은 대개 어딘가에 나왔던 것들이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정책이나 국제정세(특히 프리드먼의 강점인 중동 정세에 대한 지식)와 연결지어서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있어 보이게’ 썼기 때문에, 이왕이면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을 보고 어디 가서 아는 척 좀 하고 싶은 독자에게라면 괜찮을 듯.
중동 문제에서 세계화로, 그리고 다시 기후변화 시대의 에너지 전략으로 갈아타는 걸 보면 프리드먼이 저술가로서 능력이 있기는 하다. 프리드먼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도 사실이고.
책에는 아이디어가 넘쳐나는데 정밀하지는 못하고, 또 그 ‘미국 잘난 척’ 때문에 짜증나는 부분도 있다. 자기 글은 어차피 세계가 다 읽는다는 걸 알면서 이렇게까지 나라사랑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이렇게 “내가 이게 다 미국을 사랑해서 하는 소리다”라고 강조하지 않으면 에너지낭비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에게 배척받을까 지레 걱정되어 그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것도 미국인들의 석유중독이 그 정도로 심하다는 반증인 셈인가.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보면 극도로 강력한 두 가지의 또 다른 힘이 지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바로 지구온난화와 세계 인구의 급증이다. 이 책은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로 인해 극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다섯 가지 핵심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점점 부족해지는 에너지 공급 및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의 증가, 석유 강국들과 이른바 ‘석유독재자들’에게로 부가 막대하게 이동하는 현상, 파괴적인 기후변화, 세계를 전기를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로 날카롭게 양분하는 에너지 빈곤, 동식물들이 기록적인 속도로 멸종해가면서 급격히 가속화되는 생물다양성의 감소가 바로 그 핵심 문제들이다.” (50쪽)
저자는 다가올/다가온 시대를 ‘에너지기후시대’라 이름붙이고(이름 짓는 것 참 좋아한다) 서력 기원전·후처럼 앞으로는 ‘ECE(Energy-Climate Era) 몇 년이라는 개념이 통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대테러전 한다며 아랍국들 몰아붙이고 뒤에서는 석유대금 퍼안기지 마라, 걔네들 오일달러로 근본주의 테러범들 육성한다는 것이 앞부분의 이야기의 한 축이다. 뒤에는 에너지기후시대를 앞서가는(저자의 말을 빌면 out-green 즉 친환경 측면에서 앞서가는) 것이 어떻게 돈이 되고 힘이 되는지, 그러므로 미국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특히 미국의 정치지도부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는 것들이 주로 나온다.
IT와 ‘그린’을 엮어 친환경 에너지 그리드 개념을 구체화시킨 것, 중국 지도부의 놀라운 그린 리더십 잠재력에 대한 얘기 등등은 흥미로웠다.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 디지털 & 에너지 디바이드 등등 온갖 층위의 온갖 이슈들을 종횡무진으로 엮을 수 있다는 것은 프리드먼식 저널리즘의 큰 장점이다. 한 권으로 오만가지를 훑을 수 있게 해주니까.
책의 큰 주제와 상관없이 너무 길게 가져다붙인 감은 있지만 중동-이슬람권의 ‘사우디아라비아화’ 즉 이슬람 근본주의화에 대한 얘기들은 내 개인적인 관심사여서 재미있었다.
미국의 석유중독증은 국제 시스템도 다음 네 가지의 근본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첫 번째, 미국이 에너지 구매를 통해 세계에서 기장 편협하고, 반근대적이며. 반서구적이고, 반여권적이며, 반다원주의적인 이슬람 세력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력을 키우는 힘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두 번째, 미국의 석유중독증은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데 사용되는 자금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베를린장벽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민주주의가 퇴행하기 시작한 지역에 해탕하는 이야기다.
세 번째, 미국의 석유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전 지구적인 추악한 에너지 쟁탈전이 격화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에너지 구매를 통해 대 테러전쟁을 벌이는 전선 양면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 (121쪽)
이슬람교 일부 세력은 근대에 들어서 근대성을 기꺼이 수용하고 코란을 재해석하며 다른 신앙에도 관용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수피교나,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민중주의 이슬람교가 그런 경우다. 카이로·이스탄불·카사블랑카·바그다드·다마스쿠스 등지에서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를 통치하는 와하비 가문이나 알카에다가 신봉하는 살라피주의자 등의 일부 분파들은 이슬람교가 가장 순수한 뿌리를 찾아 돌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 시대에나 있었을 엄격한 ‘사막의 이슬람교’로 말이다. 이러한 이슬람교는 전근대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스 살라프 우스 살리 As-Salaf us Salih’는 줄여서 ‘살라프’라고도 하는데, 예언자 무함마드를 바로 곁에서 수행했던 사람들 및 이들 이후의 두 세대를 가리킨다. 이슬람교에서는 이들을 진정한 최고 귀감으로 여긴다. 오늘날 이러한 근본주의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을 살라피 Salafi 라고 부른다.
20세기 이전만 해도 살라피는 아라비아 사막 밖에서는 거의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수입금에서 자금을 얻는 이 살라피 전도사들이, 대다수 이슬람교도들의 신앙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를 포함해 보다 근대성을 갖춘 이슬람교, 그리고 비수니파 이슬람교(특히 시아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살라피즘은 7세기의 칼리프제도 복원이 목표다. 또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파키스탄의 알카에다, 하마스, 수니파 자살폭탄 테러단이 활동하는 동력원이 되어주고 있다. (123쪽)
로렌스 라이트는 알카에다의 역사를 명확히 밝힌 저서 <높이 드리운 탑>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국내에서 최소한의 종교적 자유까지 깨끗이 청소해 버리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이슬람 세계를 전도할 계획을 세웠다. 신도들에게서 걷는 종교세 자카트로 모인 수십억 리얄을 이용해 전 세계에 수백 개의 사원과 대학 그리고 수천 개의 신학교를 세우고, 와하브파의 이맘과 교사들이 그곳에서 가르치게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종국에는 이슬람 인구가 전 세계의 1%에 불과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교 전체 비용의 90%를 후원하게 되면서, 이슬람교의 다른 전통들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이슬람교의 이 원리주의 세력이 성장하게 된 것이 전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력 때문인 건 결코 아니다. 세계화와 서구화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반발이 더 확대된 것도 한몫 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권의 젊은 세대가 실패로 돌아간 이전의 모든 이데올로기(아랍 국가주의, 아랍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도 주효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재력이 엄격하게 정통을 따르는 이 이슬람 교파가 급성장하도록 동력을 제공하고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이다. (125쪽)
<아라비아에서 보내는 펀지>를 펴낸 작가 윌리엄 리지웨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석유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를 자기와 더 비슷하게 만들 수단을 손에 넣은 것과 다름없다.”
리지웨이는 현재 석유 자금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브 분파가 나타난 것은 “아랍 문화(엄밀히 말하면 아랍 영화)의 황금기에 주변부 세력에 머물렀던 사막 분파가 자유주의적인 도시 이슬람을 공격”하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랍 코미디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했던, 요염하면서도 약간 얼빠진 구석이 있던 아랍 여성이야말로 이슬람 세계가 잃어버린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당시 그런 여성들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존재였지만 지금 그런 여성이 있었다간 돌에 맞아죽을 것이다.” (127쪽)
이집트인들은 소위 문화의 사우디아라비아화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모로코부터 이라크까지 오랜 기간 공연 예술계를 지배해온 젓이 이집트였는데, 지금은 석유달러를 잔뜩 움켜쥔 사우디아라비아 투자가들이 가수와 배우들을 다 계약해 버리고 있다. 또 TV 및 영화산업도 자기들 멋대로 재편성하고 있으며, 언론에서도 자유분방한 이집트보다는 엄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치에 더 많이 뿌리를 둔 의제를 다루도록 하고 있다.
정작 자기 나라엔 영화관 하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 현재 이집트에서 제작되는 영화 95%에 자금을 대고 있다고 한다. ...영화제작자들이 35계율이라고 부르는 이 조건들이 포옹, 키스, 음주를 금지하는 건 예사다. 심지어 빈 침대를 보여주는 것도 안 된다. 침대 위에서 누군가가 하는 짓을 상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핵심적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고 있는 교의와 (미국의 핵심적 적대세력인) 알카에다의 교의에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수단만 다를 뿐이다. “사실 와하브파와 알카에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근본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믿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1920년대와 30년대에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 사이에 있었던 것과 유사한 투쟁이다.“ (130쪽)
그렉 모텐슨의 고전 <세 잔의 차, 평화와... 하나의 학교를 일으키기 위 한 한 사람의 사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가 중동 지역 너머의 이슬람 사회까지 미치는 영향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룬 최고의 역작으로 꼽힌다.
“사우디의 와하브파가 수년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따라 모스크를 여러 개 짓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아파의 심장부인 (파키스탄의) 발티스탄에 그들이 새로 지은 그 모든 건축물들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처음으로 그들이 얼마나 방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갔고, 그러자 두려워졌다... 와하브파의 4대 전도 조직 중 하나인 알 하라마인 재단은 지난 한 해 동안 파키스탄과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1,100개의 모스크와 학교, 이슬람교 센터들을 건립하고 3,000명의 유급 전도사들을 고용했다.” (131쪽)
페르시아만에서 처음으로 (여성과 남성 모두 출마하고 투표할 수 있는 자유롭고 공정한 의회선거를 치른 나라가 바레인이란 사실에 주목 했다.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쪽 해안 바다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바레인은 페르시아만 국가 중 처음으로 자국 국민의 생산성과 취업 능력 을 높이고 수입 노동력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맥킨지컴퍼니를 고용하여 노동법을 전면 정비하기도 했다. 또 페르시아만 국가 중 처음으로 미국과의 FTA에 서명하기도 했다. 2007년 오일 붐이 한창일 때 바레인에서는 이 모든 일이 왜 일어 난 것일까. 페르시아만 국가 중 처음으로 1998년경 바레인에서 석유가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석유가 풍부한 이웃 나라들과는 달리 바레인은 1990년대에 이미 더 이상 석유에 기댈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었다. 석유 대신 자국 국민의 재능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141쪽)
오늘날 미국에는 거의 3.20개의 유틸리티가 있으며, 개중에는 서비스 구역이 몇 개 주에 광대하게 걸치는 회사도 있고, 달랑 타운십 한 곳, 또는 카운티의 일부만 관할구역으로 서비스하는 유틸리티회사도 있다. 미국 내 유틸리티회사들과 송전선은 세 개의 지역망으로 통합된다. 미국의 동해안·대초원지대·캐나다의 동부 주들을 포괄하는 이스턴 인터커넥션, 자체망이 있는 텍사스 주를 제외하고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웨스턴 인터커넥션, 텍사스 전력거래소, 이렇게 세 개다. 이것이 미국 전기 시스템의 전부다. (317쪽)
‘그린 호크 green hawk’ 리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린 호크는 버클리대 학교에서 샌들을 신고 자전거를 타고 요구르트를 먹는 히피족만큼이나 태양열 에너지를 옹호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육군이나 해병대의 장교들이다. 내가 아웃그리닝이 군사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미군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린 호크’ 운동에 대해 알게 된 다음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비공식적인 이 장교 집단은 2006년에 등장했다. 당시에 이라크 안바르 주에 주둔한 미 해병대의 리처드 질머 중장은 시리아 국경의 전초 기지에 동력을 공급하는 디젤 연료의 대체품이 필요하다고 펜타곤에 호소했다.
연료 호송차량은 이라크 게릴라들이 만만하게 노리는 사냥감이 되었다. 그래서 재생가능하고 분산된 동력원을 발견해 에너지 공급선을 단축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린솔루션을 통해 소위 ‘알카에다보다 아웃그리닝하기’를 목표로 한 육군의 시도가 시작되었다. (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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