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녹색평론사
미국 출장 가기 전 FTA에 대해 뭐라도 좀 알고 가야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책꽂이를 뒤져 골라든 책이 이해영 교수 <낯선 식민지, 한미 FTA>와 이 책이었다. 국내에서 FTA 반대의 이론적 근거가 된 것이 아마도 쌍을 이루는 이 두 책이 아닐까 싶다.
‘낯선 식민지’의 경우 구국의 일념과도 같은 충심은 느껴지지만 좀 감정적인데다 ‘나라 망한다’로 일관된 주장이어서 다소 설득력이 더 떨어졌다. 우석훈씨 책은 조목조목 정리는 잘 돼 있는데, 독설도 좋지만 너무 비비꼬아서 ‘나라 망한다면서 말장난 하나’ 싶은 반감도 적잖이 들었다.
FTA로 나라가 망할지, 나라가 완존 도약을 해 선진국(참 이노무 선진국 주문은 수십년을 울궈먹어도 지치지들 않는지)이 될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는 있어야 하고, ‘최악의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 비관적인 예측도 반드시 해보기는 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정부나 이메가 정부나 그놈이 그놈이란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암튼 이 책은 바로 그 ‘최악의 경우’에 대한 예측을 하고 있다. 이 분 말씀하는 대로 “꼭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는 생각 안 한다. 하지만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경고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 이해영 교수 책은 협상의 세세한 항목들을 설명하면서 제도적 분석을 하고 있는데, 거기 비하면 이 책은 좀더 개괄적으로 협상이 추후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내다본다. 글로벌한 차원의 분석이 좀더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할까. 노동력의 ‘인적 이전’의 중요성을 얘기한 부분 등 잘 몰랐거나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용들을 짚어주어, 재미도 있고 도움도 많이 됐다.
▷6000만원 이하 소득 가정은 이민 가라
한미 FTA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생각해 본다면, 최소한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의 국민들에게 한국 땅은 ‘지옥’이 된다.
▷EU 방식과 나프타 방식의 결정적 차이
EU 방식과 나프타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노동력의 국가간 이전을 포함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나”이다. EU와는 달리 ‘노동력의 국가간 이전’을 나프타에서는 제외하고 있다. 북미지역에서 진행된 경제통합은 상품과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까지 허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작은 차이’가 두 가지 통합방식을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게 만들었다. EU의 경우는 체코와 헝가리 등 구 동구권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논란거리가 되었고, 최근에는 터키와 같은 ‘변방의 유럽국가’를 받아들이면서 물질과 인력 사이에 조화를 만드는 것이 본질적인 논의사항이 된 것이다.
‘인적 이동의 자유’라는 요소를 순전히 조직 진화론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시키고, 또 통합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약한 나라를 무력화시키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즉 미리 의도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작동하는 셈이다. 만약 동구 국가 시민들이 파리나 베를린으로 대거 이동해서 끊임없이 노동시장에 저가 노동력으로 공급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통합의 경제적 사회적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는 점을 금방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럽 국가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라도 통합을 통해 사회가 붕괴되거나 기본 체제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여러 가지 배려를 하고 지원책을 만들게 된다. ‘착취’ 혹은 ‘기생’이 아니라 ‘공생’ 관계로 경제협력을 전환시키는 장치가 바로 ‘노동력의 이동’이다.
▷차라리 ‘완전한 경제통합’이 낫다
그런데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협정에는 ‘인적 이동’을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경제적 이득만을 챙겨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미국은 국경에 새로운 장벽을 치는 것, 혹은 군대를 투입시키는 것만으로 멕시코 경제의 붕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떠안지 않고 안전하게 이익만 챙길 수 있다.
노동력의 이전을 제외하는 ‘약한 수준의 통합’이라는 장치 하나가, 실제로 상품과 자본 관계에서는 충분한 이득을 취하면서도 노동력이라는 부담을 떠안지 않는, 쉽게 말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비대칭적 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극히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 ‘어설프게 FTA를 추진할 것이라면 차라리 미국의 52번째 주가 되는 협상을 추진하라’는 주장이 게임이론이라는 시각에서는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한미 FTA에 하나의 옵션, ‘노동자의 자유로운 취업을 보장’하는 장치를 집어넣는다면, 역설적이지만 지나치게 강력한 한미 FTA를 통해 한국 경제와 주권이 회북 불가능하게 붕괴되는 것을 제어하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APEC 망친 노무현
APEC은 개도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이 참여하는 아주 느슨한 공동체였다. 미국은 아시아라는 거대한 경제권역에 속한 국가들끼리 조기 개방에 관한 논의를 힘있게 진행해주길 기대했지만,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이 ‘눈 시퍼렇게 뜨고’ 참여하는 상황이라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일본이 여러 분야에서 자금과 기술을 제공하고 역내 국가들이 상호 지원하는 ‘아주 즐거운 계모임’으로 APEC은 부드럽게 발전하고 있었다.
이 상호공동체를 다시 ‘차가운 세계화’의 반열로 돌려놓은 것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제주선언’이었다. 이 ‘역사에 남을 바보 같은 선언’ 이후로 APEC은 윈-윈 하는 협력체에서 살벌한 검투장으로 변질됐다.
▷무역협정을 다루는 한미 의회의 시스템 차이
원칙적으로 미국은 상원과 하원이라는 두 개의 국회가 동등한 권한을 보유한 채 별도로 작동한다. 이런 종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주로 상원이다. 수많은 외교적 문제 뿐 아니라 협상과정에 참여하는 상원은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청문회 절차를 만들고 사전에 권고안을 채택하는 등, 국회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들을 다양하게 고안하면서 적절하게 개입하고 협상의 한 주체로 실질적으로 협상에 참여한다.
상원이 이렇게 국회의원 개개인이 스스로 헌법기관처럼 움직이는 한편 하원의원들은 연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생산이 중요한 지역의 하원의원들 혹은 섬유업과 관련된 지역의 의원들이 연게해서 특정 주에 일정한 내부 입법을 해서 미리 대비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하는 등 협상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시스템으로만 비교하면 한국 국회도 이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통상문제에 대한 영웅적 활동의 전통이 약해서 그런지 한국 국회는 잘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외교부의 폭주 과정에서 정부가 국회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실제로 정치문제로 직접 폭발한 경우는 2005년7월 쌀 협상에서의 이면계약에 관한 문제였다.
다른 종류의 이면 계약을 정부가 했는지 안 했는지 국회가 알 수가 없다면 ‘조인’ 절차와 관련된 입법부의 견제기능이라는 것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로 이런 일이 있다면 을사늑약 같은 일이 발생할 때 또 멍청히 당하게 된다.
정부가 국회를 속이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면 사실상 순순히 속아주는 것 외에 방법이 별로 없다. 청문회라는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국회 왕따 만들기
핵심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에서 국회가 ‘외부’에 해당하느냐라는 문제이다. ‘담당관’이라는 관점에서는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국의 통외통위 담당관들은 모두 정부 직제절차에서 담당관에 해당한다. 외교부의 폭주는 원래 국회가 막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국회 비준권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다. 따라서 협상문도 공개하지 않는 상황은 군사행위로 비유하자면 친위쿠데타에 해당한다. 자국 국회에 “당신들은 외부”라면서 협상안을 감추는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또 존재할까.
더 이상한 것은 비공개의 이유가 ‘미국의 요구’라는 점이다. 미국은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각종 협회를 통해서 주요 업체로부터 체계적인 의견서를 받아들고 본협상에 임한다. 미국의 철강협회나 자동차협회, 심지어는 풍력발전협회와 이들과 협력관계에 있는 로펌의 변호사들이 실질적으로 한국의 협상초안을 집어삼킬 듯 꼼꼼히 살펴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 있는 미국 기업들도 이미 보았을지도 모르는 한국의 초안의 기본 내용들을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안 보여주겠다는게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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