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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딸기21 2006. 11. 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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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다니엘 네틀 | 수잔 로메인 (지은이) | 김정화 (옮긴이) | 이제이북스 



알래스카 코르도바 지역의 마지막 에야크 인디언인 마리 스미스는 유일한 순혈 에야크인이자 에야크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게 왜 나인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건지 나는 몰라요. 분명히 말하지만, 마음이 아파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35쪽) 
 

테비크 에센크, 붉은천둥구름, 로신다 놀라스케스, 로라 소머설, 네드 매드럴, 아서 베넷은 서로 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곳에서 현저하게 다른 문화적·경제적 환경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들의 사회를 파괴하고, 그들을 죽어가는 언어의 마지막 대변자로 만든 정확한 요인들은 상당히 다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놀랄만큼 비슷하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운명은 어떤 하나의 공통적인 양상을 드러내는데 사실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다. 즉
 
세계의 언어들이 무서운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 5백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의 언어들 중 거의 절반 가량이 사라졌다. (14쪽) 

최대의 생물언어적 다양성은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세계 인구의 4%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언어의 최소한 60%를 사용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생태계들의 일부를 통제하거나 관리하고 있다. (33쪽) 


필리핀 북서쪽 민도로섬에 사는 만2000명의 하우누족은 450종 이상의 동물과 1500종의 식물을 구별한다. 이들은 1000종 이상의 식물을 야생에서 채취하고, 밭에서는 430종을 재배한다. 하우누 농부들은 10종의 기본 토질과 30종의 아종 토질을 구분한다. 토양의 굳은 정도에 따라 네 가지 다른 용어를 쓰고, 서로 다른 토질을 구별하는 아홉가지 색깔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땅의 지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땅의 경사진 정도를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낸다. (279쪽)


토착 언어에 담긴 지식은 토지 관리, 해양 기술, 식물 재배, 동물 사육 등에 관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잠재적으로 매우 귀중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과학 이론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93쪽) 


그러므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언어를 지원해야 한다. 세계의 토착언어들에는 대개 기록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과학적 지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은 여전히 유럽인들과 그 언어들, 특히 영어의 세계관에 주로 토대를 두고 있다. (137쪽) 

위기에 처한 언어들에게 닥치고 있는 여러 변화들은 통해 식물, 동물, 전통 민속과 지식 등에 관한 어휘들과 같은 문화적 특수성을 밀어낸다(93쪽). 


그들의 지식을 그저 '무시하는' 정도라면 차라리 양호한 수준인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서방의 과학자들과 기업들은, 반다나 시바가 지적하듯, 토착민들이 토착언어에 쌓아놓은 지식을 훔쳐다가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로채기도 한다. 

언어적 다양성을 유지한다는게 ‘언어는 변치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경제가 제공하는 신나고 유익한 혜택을 누리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나 다른 세계어를 습득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성이 다양성 유지와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언어들은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하며 공존해 왔다. 더욱이 이중 또는 다중 언어는 강력한 지역적 정체성과 아울러 세계적인 의사교류 체제의 이점을 거의 추가 비용 없이 제공해준다. (290쪽) 


단일 언어를 토대로 한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라는 모델은 자연스런 상태의 세계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도, 토착사회의 대안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니다. 이 모델은 독점적인 식민주의 세력이 강제로 정착시킨 것이다. (292쪽) 일부 정치권에서는 다중 언어 사용과 다문화주의가 마치 최근에야 등장한 것처럼 거론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사회의 존재만큼이나 오래된 삶의 조건이었다. (318쪽) 

어떤 이들은 빈곤 퇴치나 환경보호 등과 같은 다른 문제들이 언어의 사멸보다 더 시급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변방 국가들의 언어 보존과 경제개발 필요성은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한 문제에 대해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상적인 과거에 대한 감상적 찬미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지역 상황에 적합하게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주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256쪽) 


지금껏 사람들은 개발하고 잘 살려면 중앙집권-단일언어 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세상을 끌고 갔다. 소수 언어를 보존하자고? 그럼 그 사람들은 그냥 원시시대로 살라는 거야? 이렇게 ‘보호’와 ‘개발’을 양분해서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언어를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경제적 불이익과 정치적 변방으로 몰아넣겠다는 것이 아니다. 소규모 언어들을 가장 잘 보존할 대책들은 그 언어사용자들의 생활수준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증진하는데 도움을 줄 대책들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지난 30년 동안에 걸쳐, 개발에 관한 많은 전제들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61쪽) 
 

우리가 21세기에 당면한 주요 개발 목표들은 첫째 인류 인구증가를 안정시키고 둘째 개도국 농촌 빈민 뿐 아니라 선진국 고립지역 빈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 셋째 세계의 생물언어적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 주목할 점은 그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권한을 부여받아야 할 사람들이 세 경우 모두 같다는 것이다. 즉 주로 열대 지방에 위치한 변방의 촌락사회가 그 주역들이다. 이들은 생태학적 다양성을 보유한 환경에서 살며, 지속불가능한 개발로 인해 밀려나 낙오되고 있는 빈민들이다. 대부분의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돌보는 이들이 이 사람들이다. 
 

개발과 생물다양성, 그리고 언어적 다양성 문제들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이 문제점들은 역사적으로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해결책 또한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지역 주민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대부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질은 심각하게 저하될 것이다. 만일 내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사람이 된다면,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노쇠해 사라져갈 때마다 "이제 말할 사람이 없네" 하는 처지가 된다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이다. 이 책에 인용된 목소리의 주인공들 중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삶의 의미 자체를 상실하는 것일 수도 있다.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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