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콘돌리자 라이스- 별 하나? 별 둘?

딸기21 2006. 7. 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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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The Condoleezza Rice Story 

안토니아 펠릭스 (지은이) | 정승원 | 오영숙 (옮긴이) | 일송북 | 2003-05-02


작년부터 콘돌리자 라이스에게 관심이 많이 생겼다. 내가 뭐 콘돌리자 라이스를 아는 사이도 아니고(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한 인물을 내가 어케 알겠는가? 영어도 못하는데...)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편의상 조지 W 부시가 부르는대로 ‘콘디’라고 부르기로 한다(이 책에서 하도 콘디, 콘디 해서 귀에 못이 박혔다).

부시 정권 들어서고 나서 콘디 빼놓고는 미국 뉴스 담기가 힘들 정도로 콘디라는 인물의 비중은 막대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일 때에도 부시가 귀담아듣는 건 콘디와 체니의 말 밖에 없다는 둥, 백악관에 살다시피 하며 말 그대로 지근거리에서 부시를 보좌하고 있다는 중, 콘디네 흐름이 콜린 파월의 흐름을 이미 진작에 압도했다는 둥, 콘디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들이 미국 신문들에는 차고도 넘쳤다.

그런데 그렇게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콘디가 한 짓이 결국 부시가 한 짓이고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세계 만방을 돌며 미국 패권을 휘두른 것들이다. 그러니 그 능력 있다는 콘디라는 사람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흑인에, 여성에... 어퍼머티브를 잔뜩 주고 싶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마는 이렇게 주류적이고 보수적이고 패권적일수가. 콜린 파월이 겉만 검은 공화당 골수 보수파라더니, 콘디라는 이 여자는 한술 더떴다.

작년에 콘디가 국무부를 완전히 장악한 것을 넘어서 ‘개혁’까지 하면서 파월 시절 도널드 럼즈펠드의 국방부에 빼앗겼던 외교 주도권을 되찾아왔다는 미국 언론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학자 출신인 콘디라는 여성이 관료사회를 어떻게 장악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당연히 생겨났지만, 외신에 나오는 fact들 만으로는 이 사람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가 좀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콘디의 캐릭터를 알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지난해 콘디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이집트 국경검문소 폐쇄 소동을 해결했을 때였다. 이스라엘은 국경검문소를 닫아 가자지구를 봉쇄했고, 먹고 살 길이 막힌 가자 주민들은 아우성을 쳤다. 콘디는 이-팔 양측을 방문해 팔레스타인을 죄고 이스라엘을 야단쳐 국경을 다시 열게 했다. 어쩌면 이것은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의 승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을 옹호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식의 자유주의적(더 나아가면 ‘좌파적’) 발상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보수적인 현실주의자 콘디가 풀어냈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미국에서 콘디와 함께 ‘여성 대통령감’으로 지지자와 안티세력을 몰고 다니는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유대인들의 표와 돈을 원한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보이며 콘디와 같은 시기에 이스라엘을 방문, 유대인 비위맞추기에만 몰두해 눈총을 받았다(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지금도 힐러리는 열심히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라는 책은 콘디의 ‘위인전’이다. 머리 좋은 콘디가 자서전을 썼다면 절대로 이렇게는 안 썼을 것이다 싶을 정도로 유치찬란하다. 도대체가 국민학교 때 간디니 처칠이니 하는 사람들 위인전을 숙제 삼아 읽은 이래로, 이렇게 유치한 위인전을 다시 읽는 것은 처음이란 말이다. 게다가 무슨무슨 대학 총장을 했다는 번역자는 기본적인 단어의 뜻도 모르는 것 같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버젓이 ‘3부 요인’이라고 해놨다. 미국 국가안보위원회(NSA)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보리’로 표기했다. 안보리의 ‘리’가 이사회의 약칭이란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모스크바의 세인트피터즈버그’라는 코믹한 지명까지 등장할 정도이니, 유고의 베오그라드를 ‘벨그레이드’라고 쓴 것은 애교 삼아 용서해줄 수 밖에.

번역 때문에 눈에 가시가 걸린 것은 그렇다 치고, 책에 쓰여진 수사들은 참으로 화려하다. 콘디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며 그의 훌륭한 부모들은 콘디를 위해 헌신하였고 보수적인 남부에서 어린 딸이 인종차별의 설움을 겪지 않도록 완벽하게 보호했다. 콘디는 피아노 천재에 어려서부터 책 읽고 공부하고 스케이트도 잘 탔는데 이 모든 것은 ‘남보다 두배 열심히 해야 한다’는 라이스 가문의 가훈을 따른 것이었다. 콘디는 위대한 스승(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아버지)을 만나 학문의 길을 걸어 뛰어난 성과를 거뒀고 정·관계는 물론이고 기업체 이사로서도 명성을 쌓았다(콘디가 셰브론 텍사코 이사를 지낸 경력이 정경 유착 의혹의 한 빌미가 됐던 것도 저자에겐 ‘미담’이다). 콘디는 외교무대에서도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며 조지 부시 부자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콘디는 인격적으로도 뛰어나서 보수적이면서 우아하고 완벽하고... 탁월하고... 완벽하고... 뛰어나고... 우아하고... 탁월하고... 완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면, 첫째 콘디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상상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 저자의 화려한 찬사를 잠시 뒤로 치워놓고 골자를 보면 콘디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힘의 논리’에 충실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문제를 머리 속으로 ‘정리’하고 타인을 ‘설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흑인 여성으로서 스탠퍼드대학교 교무처장을 지낸 것은 우습게 볼 경력이 아니다. 국무장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계가 됐든 외교문제를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됐든 혹은 에너지기업이 됐든, 다양한 분야에서 인맥을 쌓으며 성공/승리/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했다. 언제나 노력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심지어 체력관리도 ‘스탠퍼드대학 운동선수들 수준으로’ 완벽하게 한다니! 콘디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아직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조지 W 부시보다는 낫지/나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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