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에 대한 기사를 읽거나 쓴 적은 많았지만, 그가 숨졌다고 이렇게 허전함을 느낄 줄은 몰랐다. 애플 제품을 직접 써본 것은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온 뒤였으니 얼마 되지 않는다. 잡스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한 뒤 열흘 동안, 허전하면서도 신기했다. ‘잡스 없는 세상’이 화두가 됐고, 잡스 이야기가 넘치고 흘렀다. 나는 그의 죽음에 왜 허전해진 걸까. 우리는 잡스에게 무얼 투영하고 있었나. 디지털기기를 만들어 팔던 남의 나라 경영자에게 무얼 기대하고 있었고, 무얼 얻고 있었던 걸까.
하도 잡스를 놓고 떠드니, 반작용처럼 그가 뭐 대단하냐 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자기네 기업 이익을 위해 매진한 것밖에 없는 사람을 두고 신화를 만들어 좋을대로 써먹고들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맞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한때 잡스를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에고마니아(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로 꼽았다. 3년 전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실수로 잡스 사망기사를 냈다. 정확히 말하면 오보였다기보다는, 언론사에서 흔히들 유명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비해 미리 만들어놓는 ‘오비추어리(부음 기사)’가 온라인에 공개되어 버린 실수였다. 그 소동 때 경제잡지 비즈니스위크는 “잡스가 사망한다면 빌 게이츠 같은 박애주의자로 기록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미디어들이 잡스 앞에 가장 많이 쓴 수식어는 ‘영감을 주는’이라는 말이었지만, 흔히 말하는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아니었다. 게이츠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잡스는 애플의 수익을 올리려고 사내 사회공헌 프로그램들까지 다 없앴다. 한들 그걸 가지고 잡스가 나빴다 할 수는 없다. 토머스 에디슨도 이기적이었고 남의 특허를 가로채기 일쑤였다잖은가.
대지진과 원전사고 뒤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스타로 떠올랐다. 손 회장은 트위터로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일본 정부의 한심한 대응과 도쿄전력의 작태를 연일 질타했다. 피해 복구에 100억엔을 내놓겠다는 약속도 했다.
한국에선 다들 안철수 서울대 교수 얘기다. ‘무릎팍도사’에 나오고 토크콘서트에 다니며 ‘한국인들에게 영감을 주던’ 안 교수가 갑자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 1990년대가 게이츠의 시대였던 걸 생각하면 정보기술(IT)업계의 잘 나가는 경영자들이 대중적인 스타로 군림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잡스가 사라지자 세상은 또 다른 영웅을 찾아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며칠 전 손정의 회장이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제2의 잡스가 될 것”이라면서 ‘끊임없는 혁신’을 그 근거로 들었다. IT 스타들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 데엔 이유가 있다. 혁신과 변화의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다. 게이츠가 세계 최고 부자가 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거대 제국이 된 뒤, 지구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게이츠의 노력엔 가속도가 붙었으나 그의 인기는 떨어졌다. 이미지가 바뀐 값이다. 어쨌든 저런 이들이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구, 초인을 갈구하는 심리에 들어맞는 디지털 시대의 영웅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IT 업계의 총아라는 이유만으로 스타가 된 건 아니다. 한국에도 그 쪽 재벌회사들은 많이 있다. 애플과 자웅을 겨룬다는 회사도 있다. 그 분야의 최고경영자들이 다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서는 IT 업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 전 사장이 2005년 화려하게 정계에 들어섰다가 곧 바닥으로 추락했다.
16일 잡스 추도식을 앞두고 온통 잡스 마케팅이다. 아이폰4S뿐 아니라 잡스 터틀넥까지 인기다. 하지만 잡스나 손정의나 안철수 같은 이들에게서 이미지와 스타일만 베껴온다고 성공하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내 눈엔, 저 사람들은 그냥 정석대로 자기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자기네 사업 열심히 하고, 시대 흐름에 맞춰 사람들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할일을 제대로 했을 뿐이다. 누군가 트위터에 썼다. “애플의 후계자 성이 잡스가 아니라는 것만 봐도 그 회사는 희망이 있지 않느냐”고.
기업경영자들에게 남달리 선량하고 고아한 품성과 대단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일 제대로 하길 바랄 뿐이라는 얘기다.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며칠 전 ‘잡스 패러디’로 물의를 빚고 사과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세이 미야케의 터틀넥을 입는다고 잡스가 되겠는가. ‘나쁜 남자’의 매력 따윈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안철수 같은 바른생활 사나이에게 한국사람 50%가 열광한 건 우리 사회에선 너무나 드물게도 정석대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저들 스타들은 영웅도 아니고 초인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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