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영국 폭동, 문제는 '인종차별+실업난'

딸기21 2011. 8. 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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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폭동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네요.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시작된 청년들의 폭동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런던 곳곳에서 6일부터 청년들의 폭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8일)는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런던 동부 해크니 메어스트리트에서 진압 경찰과 청년들이 대치했습니다. 

경찰이 폭동이 확산되는 걸 막겠다며 불심검문을 하자 거기에 반발해 수십 명의 청년들이 몰려들면서 충돌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일부 청년들은 상점 창문을 부수고 집기와 물품을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차량과 쓰레기통 등에 불을 놓기도 했고요.


런던 동부 그리니치 부근 레위샴과 페컴 지역에서도 방화로 상가 건물이 전소됐고, 거리 곳곳에서 차량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진압 경찰이 주요 도로들을 차단하고 경찰견을 동원해 해산작전에 나섰으나 청년들은 도로 사이를 돌아다니며 계속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인 버밍엄 중심가에서도 8일 밤 청년들이 상점을 약탈하고 경찰서에 방화를 하는 등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항구도시 리버풀에서도 청년들이 차량에 불을 지르고 건물을 습격했습니다. 브리스틀 등 주요 도시 대부분이 폭동에 휩싸습니다. 
  

British police officers charge rioters, during riots in Hackney, east London, Monday Aug. 8, 2011. /AP

폭동의 진원지인 토트넘에서는 사흘째 경찰차와 이층버스, 상가가 불타고 상접들이 약탈당하고 있습니다.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청년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와 트위터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치고 빠지는 식으로 경찰에 맞서고 있습니다. 엔필드, 브릭스톤 등 런던 외곽 지역에서도 청년들이 경찰차에 돌을 던지고 상점을 약탈하고 도로 시설물들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경찰은 지금까지 폭동에 가담한 혐의로 400여명을 체포했습니다. 경찰은 런던 시내에만 1700여명의 폭동진압경찰을 추가 배치했습니다. 또 폭력사태를 일으킨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사태가 가라앉지 않고 있네요.


폭동의 발단은 토트넘에서 일어난 사살 사건입니다.

지난 4일 토트넘에서 경찰이 한 젊은 남성을 사살했습니다. 숨진 사람은 올해 29세의 마크 더건이라는 남성이었습니다. 나이는 젊지만 동거녀와의 사이에서 아이 4명을 둔 아버지였습니다.

더건은 (예상 가능한 일이지만) 흑인 남성입니다. 정확한 경위는 아직은 밝혀지지 않아서 조사가 진행돼봐야 알 듯 합니다만, 아무튼 경찰의 총에 사살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민자 집단 내 총기범죄를 조사하던 경찰이 더건이 타고 있던 택시를 세웠고, 더건에게 4발 이상 총탄을 발사했습니다. 

더건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총을 쏜 경찰도 부상을 입었지만 경상이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곧 퇴원했습니다. 더건이 총을 가지고 있었고, 경찰을 향해 총을 쏘아 총탄이 경찰 무전기에 박혔다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더건은 전혀 총을 쏘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주로 흑인인 지역 주민들에겐 이런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1985년 10월 토트넘에서 한 흑인여성이 경찰 수사 도중 숨지면서 과잉수사 논란이 일고, 흑인들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일으켜 폭동으로 비화됐던 전례가 있습니다. '브로드워터 팜 폭동(Broadwater Farm riot)'으로 알려진 사건입니다. 

그보다 앞서 1981년에도 브릭스턴 폭동이라는 유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주로 흑인들을 골라 불심검문을 하는 데에 항의하면서 일어난 사건이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민들은 경찰이 인종차별적 과잉대응을 하면서 더건이 희생됐다고 주장합니다. 브릭스턴 폭동 이래 30년이 됐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하다는 겁니다.


그럼 이번 사태는 순전히 인종폭동으로 봐야하는 걸까요?
 
발단은 흑인 남성 사살사건이었지만, 사태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폭동의 진원지인 토트넘과 해크니, 브릭스톤 등은 모두 낙후된 지역으로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곳입니다. 도시 인프라는 형편없고, 인종 차별에 일자리 부족에 빈곤이 겹쳐져 있는 곳들입니다. 

정부는 부채를 줄인다면서 긴축재정으로 계속 복지혜택을 없애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빈민층, 특히 저소득 소수인종들과 이주자들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폭동을 일으킨 젊은이들은 가디언, BBC 등 현지언론 인터뷰에서 “몇년 동안 쌓여온 불만이 마크 더건의 피살이라는 불씨에 의해 폭발한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경제난과 빈부격차, 인종차별에 따른 불만이 약탈과 방화로 이어진 것이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9일 긴급비상대책회의인 코브라 회의를 열고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 등과 함께 대응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것이, 얼마 전 머독 그룹 도청사건 여파로 런던 경찰청장이 사퇴해 공석인 상황입니다. 소요가 시작될 당시 경찰이 초반에 진압하지 못했던 데에는 경찰 내부의 혼란이 큰 원인이 됐다고 영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발 주식시장 패닉사태가 런던증시에까지 영향을 미쳐 영국도 금융시장이 공황에 빠져드는 상황인데... 근본적인 문제는 실업난 특히 청년실업과 경제침체, 복지 축소 정책에 있는 거거든요. 캐머런 정부가 단기적, 장기적으로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유럽의 대도시가 폭동에 휩싸여 불타는 모습은 이제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습니다.

2005년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주로 무슬림 이민자 2세들인 청소년들이 격렬한 소요를 일으켜 도시가 화염에 휩싸였더랬습니다. 그 2년 뒤인 2007년 파리 외곽에서 똑같은 양상의 소요가 반복됐습니다.

 
폭동이 벌어진 파리 외곽은 영국 폭동의 진원지였던 토트넘 일대와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거주지역이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영국 쪽은 흑인 빈민들, 프랑스 쪽은 가난한 무슬림 이주자들이 주로 사는 지역이었다는 정도겠죠.  

지난해 1월에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들과 외국인들을 쫓아내자고 주장하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유혈사태가 벌어진 곳은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남부 칼라브리아주 로자르노라는 곳이었는데요.

프랑스에서도, 영국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문제는 실업난과 경제침체입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프랑스에서는 자크 시라크와 니콜라 사르코지(소요 당시에는 대통령은 아니고 초강경 진압을 주도한 내무장관이었죠) 정권, 이탈리아에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정권 등 우파정권이 들어서 복지축소 정책을 펼치던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경제적 모순에 복지축소에 따른 피해, 반이민 정서와 이주자·소수인종 차별이 겹쳐지면서 폭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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