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말, 글, 이야기.

딸기21 2005. 1. 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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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J. 옹 (지은이) | 이기우 | 임명진 (옮긴이) | 문예출판사 | 1995-02-01



오랜만에 재미난 책을 읽은 느낌.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던 것에 대한 지적인 도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다'- 이 책은, 바로 '책'과 '읽는다'는 것, '말'과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책이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이행(모든 사회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이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문자와 책과 인쇄가 어떻게 인간의 사고방식을 시각적인 텍스트로 '고정'시켰는지에 관한 '책'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구술문화를 바라볼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요구가 다름 아닌 '책'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어쩌랴, 책은 그렇게 쓰이라고 만들어진 도구인 것을. 다만 무심결에 줄지어선 문자들을 눈으로 보고있는 나를, 평소 의식하지 못하던 '책읽는' 행위를 의식하게 만들어줬다는 것, 그 자체가 저자의 선물이라면 선물이다.

"옛날 옛날 한 옛날 어느 마을에"로 시작되는 오래된 이야기들 하나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라 해도 될 것이다. 할머니들의 입을 통해 오랫동안 세대와 세대를 거쳐 첨삭되고 꾸며진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저자는 인간이 현대인의 생각 이상으로 오랜 기간 동안 '구술문화'의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구술문화, 즉 저자가 '1차적 구술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로만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이야기로만 역사가 전달되는 그런 문화를 말한다.

인류가 문자를 만들고 발전시킨 오랜 역사를 생각해보면, 구술문화 단계가 아주 최근 즉 근대 직전까지 계속돼왔다는 지적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장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는 읽고쓰기를 못하는 '문맹'이 흔했다는 사실. 이른바 '식자층'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구술문화는 아주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왔고, 정치경제적 '지배층'의 언어문화와 다르게 실제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했던 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그런 문화였다는 것이다.

문자문화 사회에 속하는 우리들이 1차적 구술문화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역설적이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담은 책(문자)들이라든가, 얼마 안되는 '원주민 사회' 정도다. 저자 또한 현존하는 '구술문화 집단'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결과들에 상당부분 기대어서 구술문화의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문자문화와 비교했을 때 구술문화에서 '이야기' 혹은 '말하는 방식'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설명한다. 구술문화가 지배적이던 시기, 입에서 입을 통해 역사와 지식이 전달되던 시기에 말은 곧 행동이었고, 이름은 곧 힘이었다. 사고(思考)는 대화를 통해 이뤄졌고, 기억은 패턴 혹은 리듬(관용구)을 통해 이어져왔다.

저자가 논리를 풀어가는 화두로 삼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을 비롯한 '옛이야기'들에서 영웅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심리학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자는 언어학적 측면에서 이를 설명한다. 기억을 저장하기(고정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뚜렷한 특징을 가진 인물, 혹은 유별난 행동을 한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성'이다. 지리하다 싶을 정도로 장황하고 후렴구가 반복되는 옛노래들, 옛이야기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구술문화의 특징을 다루면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지금의 우리'의 의식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서방/지식인/스스로를 문명인이라 생각하는 자들의 오만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자문화는 '기억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인간의 의식을 해방시켰고, 인간의 사고는 책이라는 저장도구가 생겨나면서 날개를 달았다. '듣는' 부담이 사라지고 논리와 추론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이야기는 사물(책)이 되었다. 인쇄는 이 특별한 '물건'의 대량생산을 가능케하면서 대부분의 사회에서 구술문화를 밀어내는 역할을 했다(이렇게 변화된 사회를 우리는 '문명'이라 부르고, 이렇게 변화된 시기를 '근대'라 부른다). 그리고 문자문화는 구술문화에서와는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냈다. '쓰기' 즉 문자化가 어느 한 지방의 말을 '기록되는 언어(기록방언)' 혹은 '공식 언어'로 만들면서 '국어'가 형성되고 근대민족주의 시대가 열렸다. 아마도 베네딕트 앤더슨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런 논지가 그닥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책에서 언뜻언뜻 스치고 지나가는 몇가지 테마들은 지금, 우리의 언어문화를 되돌아보는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 '위대하시고 영명하신' 등등 독재자 앞에 따라붙던 수식어구가 구술문화가 가진 반복성의 위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구술문화 시기 엘리트들의 독점적 문자문화에서 배제됐던 여성들이 훌륭한 이야기꾼이자 소설 애호가가 된 이유, 추론과 논리를 '지성'과 동일시하는 우리의 버릇이 사실은 글 못 읽는 나뭇꾼의 체험적 지식보다 우스운 것일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깊디 깊은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저자의 설명은 '풍부한 예시'보다는 추론에 많이 기대고 있고, 특히 후반부 전자문화의 영향력을 암시하는 부분에서는 아이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0여년전에 쓰여진 책임을 감안하면, TV 방송을 '2차적 구술문화'라 간파한 정도만 해도 충분히 탁견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21세기의 독자로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 문화를, 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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