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반기문 사무총장 연임 도전... '제 목소리를 내주세요'

딸기21 2011. 6. 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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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6일(미국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연임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반 총장은 “영광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하겠다”는 출사표 성격의 발표문을 내놨는데요. “내일의 도전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오늘 일을 시작하는 것”이라면서 다시 5년의 임기를 더 해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반 총장은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변화 속의 통합(unity amid change)’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했습니다. 더불어 “모든 국가와 유엔 가족들이 함께 일해야만 유엔의 고결한 목적을 이뤄낼 수 있다”면서 유엔의 과제에 대해 회원국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며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당초에는 임기 마지막해인 올초, 늦어도 올 3월에는 연임하겠다는 뜻을 밝힐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올초 중동·북아프리카 사태에다가 리비아 공습, 일본 지진에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 급박하게 대처해야할 현안이 많아 연임 절차를 시작하는 게 좀 늦어졌는데요.

오히려 잘 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반총장의 지난 4년여 동안의 활동에 대해 뚜렷한 공적이 없다, 유엔 개혁작업을 힘있게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유럽 쪽에서 친미노선인 반총장을 흔들려한다는 얘기도 들려왔고요.

하지만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지역 지도자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국제여론을 주도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줬다는 거죠. 반총장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지지를 굳힌 것도, 리비아 등 중동사태와 관련해 정상들과 만남을 자주 가진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가 추천을 하고, 유엔 총회에서 결정됩니다. 반총장 임기는 올해 말까지죠. 하지만 연임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절차를 끝내고 2기 업무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데요. 반총장 측은 속전속결로 2~3주 안에 모든 절차를 끝내겠다는 방침입니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이미 반총장 연임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정해놨고 다른 회원국들에서도 별로 이견이 없기 때문에 빨리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총장은 6일 기자회견을 앞두고 192개 회원국 국가원수와 정부수반들, 안보리 의장, 총회 의장, 생존해 있는 전직 사무총장 3명, 유엔 회원국은 아니지만 옵서버 국가인 몇몇 나라 정상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친서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 직후 아시아권 대사들과 만난 것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서유럽 등 유엔 내 5개 지역그룹 대사들과 잇달아 회동을 가질 예정입니다. 

안보리는 빠르면 이번주 중으로 반총장을 단일후보로 올릴 것 같습니다. 안보리가 유엔총회에 반총장 연임을 추천하는 결의를 채택하면 그 안이 총회에 올려지죠. 그러면 이달 중 유엔 총회가 열리고, 반총장 연임안이 안건에 회부될 것이고, 아마도 표결 없이 박수로 통과될 것 같습니다.

6일 기자회견을 하자마자 주요국들은 지지의사를 밝혔습니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연임 도전을 환영한다면서 “미국은 유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총장과 협력해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알랭 쥐페 외무장관도 지지한다 했고...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 뒤 아시아그룹 대사들과 조찬모임을 했는데 아시아그룹 53개 회원국들도 지지의 뜻을 모았습니다. 아시아그룹에는 중동 일부 국가들을 포함, 워낙 많은 나라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중요하죠. 이 자리에 참석했던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사도 지지의사를 밝혔습니다. 다만 북측은 공개 지지연설은 하지 않겠다고 했고요. 반총장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마치 연임 축하행사장 같았다고 합니다


특히 중국이 반총장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사를 밝혔습니다. 중국은 이미 올초에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서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고, 이번에 이를 재확인했습니다.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아시아그룹 모임에서 연임을 지지한다고 말했고, 이어 오늘 중국 외교부가 반총장의 연임을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훙레이 외교부 대변인은 “반총장은 아시아인으로서 유엔 사무총장직을 4년간 수행해왔고, 중국은 그가 해온 일에 갈채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도 반총장에게 연임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오늘 오전 기자회견에서 “연임 의사를 밝힌 반총장에게 간 총리의 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면서 “반총장이 계속 국제사회에서 중책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직은 연임이 관례다 할정도로 안정적으로 임기가 유지돼왔습니다. 임시 사무총장이었던 글래드윈 젭(1945-46)과 초대 총장인 트리그베 리에(1946-52)를 빼면 대부분 연임됐습니다. 2대 다그 함마슐트 총장(1953-61)은 재임 중 항공기 추락사했으니 여기도 논외... ;;

그 뒤로 버마 출신의 우 탄트(1961-71), 오스트리아 출신 쿠르트 발트하임(1972-81), 페루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쿠에야르(1982-91), 가나 출신 코피 아난(1997-2006) 모두 10년 임기를 지켰습니다. 다만 아난 직전에 총장을 지낸 이집트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는 미국에 밉보여서 예외적으로 5년 단임(1992-96)으로 끝났죠

반총장 2기의 과제가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연임 절차를 최대한 빨리 하자는 것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을 비롯한 회원국들의 공통된 요구입니다. 상반기 중에 재임 확정짓고, 오는 9월 유엔 연례총회에서는 2기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는 건데요.

반총장은 “국제 사회가 직면한 다중적인 도전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평화ㆍ안정ㆍ개발ㆍ인권을 위한 노력을 선도”하는 것을 2기의 주요 과제로 꼽았습니다. 또 전임 사무총장 시절 유엔 차원에서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큰걸음으로 제시했던 밀레니엄개발목표(MDG)를 달성하기 위해서 힘을 쏟겠다고 말했습니다.

밀레니엄개발목표는 여전히 세계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저개발국 빈곤층을 위해 일종의 보편적인 개발·복지 목표를 설정해놓은 겁니다. 이를 달성하면서, 동시에 그 목표를 뛰어넘는 개발의제를 내놓겠다는 게 반총장의 목표입니다. 아마도 개발의제와 환경의제를 결합시킨, ‘지속가능한 개발’이 아젠다가 되겠지요.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유엔 지속가능개발 정상회의에서 ‘반기문 아젠다’가 도출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유엔 관료주의와 부패를 뜯어고치기 위한 개혁작업에도 더 힘이 실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총장이 2기를 맞으면서 새겨들어야 할 비판들도 적지 않습니다. BBC방송은 반총장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면서 “사무총장직 라이벌이 없으므로 연임이 확실시된다, 상임이사국들이 모두 지지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높였던 전임 코피아난 사무총장에 비해 반총장은 저자세(low-profile)를 보여왔고, 상임이사국들은 저자세 유엔 사무총장을 선호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몸 낮춘 겸손한 행보'였고, 비판적으로 보자면 유엔 나름의 강력한 의지나 입장을 지키기보다는 강대국들에 끌려다녔다는 얘기죠.

Ban‘s understated approach and less-than-perfect English set him apart from his more outspoken predecessor, Kofi Annan, who ran afoul of the administration of then-US President George W Bush for declaring the 2003 invasion of Iraq "illegal". /알자지라



코피 아난 전 총장이 2기 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불법 공격이라고 대놓고 비판했던 것과 비교해서 반총장의 ‘너무 조용한 외교’를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인권단체들이나 외신들은 반총장이 중국 같은 큰나라 문제는 별로 거론하지 않으면서 아프리카 등지의 인권침해만 지적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반총장은 미국의 두 차례 전쟁으로 인한 인권침해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별 지적을 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서방이 미워하는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학살에 대해서는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왔죠. 민주화 시위 이전까지 중동 현안들이나 중동 독재국가들 문제에 대해서는 말한 적 없으면서, 아프리카에 대해서만 인권 얘기를 한다는 느낌이랄까...

자신을 적극 지지해준 중국의 인권문제나 유엔 분담금도 제대로 안 내는 미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포함해, 얼마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가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업적을 가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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