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블루 모스크의 추억

딸기21 2003. 7. 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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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너무 늦게 올리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스탄불의 국제공항에 내려서 환전을 하는데, 뭔놈의 화폐 단위가 그렇게 큰지. 1달러에 자그마치 169만리라나 됐다. 지폐 생긴것도 다 어슷비슷하니 주의하라는 말을 들었더랬다. 그래서 주의한다고 했는데, 사실 돈 쓸 시간도 없기는 했다. 
터키에는 워낙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나는 지난번에 아주 잠시(대낮에 몇시간 정도) 비행기 갈아타기 위해 들른 것 밖에 없기 때문에 가본 곳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일단 이스탄불에 들렀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블루모스크. 워낙 유명한 곳이니까 더이상 설명은 하지 않겠다(실은 설명할 수 있을만큼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면 설명이 될까.
나는 작년 가을 이라크에서 유프라테스 강변의 모스크들을 본 적이 있다. 이번 전쟁에서 교전이 벌어졌던 나자프와 까르발라의 시아파 사원들인데, 압바스 모스크와 알리 모스크, 그리고 후세인 모스크는 시아파의 최고 성지에 해당된다. 그때 모스크를 보았던 기억과,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를 보았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이라크 남부의 모스크들이 종교 사원이라면, 블루모스크는 제국의 모스크였다. 이슬람세계의 중세에서 근대까지를 장악했던 투르크제국의 모스크에서는 위압적인 멋이 풍기는 대신, 사막의 모스크가 주는 묘한 정서는 덜한 것 같았다.

재미난 것은, 나자프와 까르발라의 사원들이 파란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이 돋보였던 반면에 정작 블루모스크는 회색에 가까운 빛깔을 하고 있었다는 점. 아랍의 색채와 투르크의 색채는 한눈에 달라보였다. 희뿌연 모래바람 속에서 은은하게나마 빛을 발하려면, 사막의 모스크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갖춰야만 한다. 그러나 이스탄불은!
지중해에 이어진 마르마라 해협의 이스탄불은, 도시 자체가 푸른 빛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이 저렇게 파랗고 바다가 저렇게 푸른데 모자이크 따위가 무에 필요하랴! 블루모스크를 저만치 앞에서 바라보면 청회색 돔 위에 하늘이 너무나 푸르다. 저런 걸 '시리게 푸른 하늘'이라 한댔지. 그래서, 모스크를 둘러싼 푸른 공기, 그것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 부르나 싶었다.

모스크의 한켠에는 조그만 골방이 있었다. 입장료를 150만 리라(그래봤자 1달러도 안 되지만)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카펫 뮤지엄이었다. 카펫! 이스탄불에서 중세의 카펫을 구경할 기회가 생기다니! 아래 위로 작은 방 두 칸, 그리고 아주 짧은 오르막 복도에 카펫들이 걸려 있었다. 
킬림이라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카펫의 문양인데, 이렇게만은 사실 설명이 안된다. 만다라가 문양을 넘어선 사상체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킬림 역시 단순한 패턴은 아니다. 사막을 오가던 부족들이 눈에 보이는 자연을 단순화시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패턴이다. 카펫도 카펫마다 다르다. 투르크의 카펫과 페르샤의 카펫, 베두인의 카펫이 달랐다. 페르샤와 투르크의 카펫은 몹시 화려했던 반면, 베두인의 카펫은 패턴이 훨씬 단순했다. 
카펫 뮤지엄에서 만난 친구(이름은 명함을 찾아봐야 ^^;;)가 있다. 그곳 안내하는 문화부 직원이다. 이 친구(아저씨)는 원래 내가 박물관 안에서 함부로 사진 찍나 안 찍나 감시하러 온 거였다. 감시할 겸 해서 설명을 해주는데 재미가 있었다. 프레이어 러그(prayer lug)를 구경할 때였다. 기도하는 사람? 
"아, 그럼 이 윗부분이 메카를 향하게 되는 거군요"
"네, 그래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죠? 이슬람에 관심 있어요?"
(이 시점에서 나는 자연스레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를 떠올렸다)
"네! 관심 많아요"(생글생글)
이렇게 해서 나는, 관광객들이 들끓는 블루모스크에서 밥을 얻어먹는 개가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를 사원 뒷구석으로 안내해 갔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곳이 그 곳이다. 옆은 바닷가였다. 저보다 더 아름다운 정경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 나는, 암만에서 몸도 마음도 지친채 서울로 오던 중이었음을 상기하기 바람. 이건 딴 세상이었다. 나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터키식 식사를 했다. 닭도리탕과 거의 유사한 국물, 그리고 내가 도저히 못 먹겠지만 억지로 먹었던 희한한 스프, 무를 썰어서 무친 상큼한 나물, 그리고 예의 투르키시 커피.

친구가 말했다.
"오늘 점심, 너한테는 오래도록 못 잊을 추억이 되겠구나"
"그래, 아주 오래도록 기억할 거야"

햇볕이 너무 따뜻했다. 3월말, 암만에서 눈보라에 덜덜 떨며 지냈던 차였기에 그 햇살이 너무 반가웠다. 정원으로 들어오는 문 위에는 터키의 '붉은 초승달'이 휘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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