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기에게. 지평, 요슈타인 가아더 그 많던 철학은 모두 어디갔을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우커의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인지 모르겠다고.
늘 그렇지만, 친구의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줄 수 있는 때는 없다. 대신에 요슈타인 가아더의 글을 하나 선물로 보내줄께.
나는 공고문이라면 언제나 꼼꼼하게 읽는다. 국가정보국에서 보낸 통지문들이라면 특히 성심껏 연구하는 기분으로 읽는다. 결국 그것들은 나를 위해서 씌어진 것이 아닌가. 국가는 그의 아들들 중의 하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마치 아버지나 어머니가 내키지는 않지만 그의 자식들과 그 어떤 심각하고 교육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라도 할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도 윗사람의 말을 거역하는 그런 유형은 아니다.
담배를 끊어야겠어. 보다 적게 마셔야겠어. 왜 세금을 물어야 하는지를 알아야겠어. 협정과 법률의 변동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해. 그리고 4년마다 국가를 위해 선거에 참여해야 해. 내게 먹이처럼 주어지는 그 모든 주의와 경고에 대해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반응할 수가 있다.
내 생각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것은 다소간 무미건조하고 장황한 연재소설과도 같다. 보잘것 없는 나도 미미하나마 참여하여 함께 써나가는 연재소설 말이다.
지평,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적당한 단어인 것 같다. 이 영원하고 지속적인 정보의 활동, 이 지평이 때로는 나에게 좁고 무의미하게 보인다.
세무서에서 돈을 돌려받는 것은 신이 나는 일이며, 화재경보기와 소화기를 설치하는 것은 정말 당연하고도 옳은 일이다. 보통으로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예컨대 별의 비밀이라든지, 생의 비밀이라든지 내가 읽어야 하는 중요한 책 같은 것은 국가의 소관사항이 아니다. 내가 그런 일 때문에 골머리를 썩힐 필요는 없다. 이 지구는 나의 도움 없이도 태양 주위를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나는 나 자신이 존재하는지 어떤지 잘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바로 이 순간만 여기에 있을 뿐 그 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사실은 쉽게 잊혀지고 있다. 잠시 생각해 보더라도 나는 그 사실을 언제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그 사실을 알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이 문제만큼은 그 누가 친밀하게 지적해주지도 않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나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의 모든 중요 일간지에 다음과 같이 공고하고 싶다. '남녀 시민 여러분 모두에게 알립니다: 세상은 여기 그리고 지금 존재하는 것입니다'
별 생각 말고 읽었길 바래. 가아더의 글이 마침 눈에 보이길래 보내는 것 뿐이니까.
정은이가 이렇게 적어놓으니 마치 내가 개그맨(조우커) 지망하다가 오디션에서 실패해 좌절한 채로 소주들이키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네요...
사실은 조금더 우아한 고민이었답니다.며칠전 딸기 책대여점에서 요슈타인 가아더가 쓴 '카드의 비밀 '이란 책을 빌려읽고, 잃어버린 '순수한 철학적 호기심'에 대해 약간의 한탄을 했었답니다.
누구나가 그렇지만 어릴때는 지금보다 더 철학적이었지요. 도대체 난 왜 태어났고, 무엇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 ... 지금 생각해보면 어쭙잖게 심각한 주제를 붙들고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순수했던 시절이었고, 무엇보다 '철학적'이었습니다.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그 많던 철학은 모두 어디 갔는지 알 수도 없고, 속물근성에다 쪼잔함에 찌든 내모습이 반성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었죠.
가아더는 세파에 찌든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통 카드로, 순수한 철학적 호기심을 간직한 채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을 '조커'카드로 대비했답니다.
글쎄요. 현실적으로 가아더가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커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요. 이런 생각은 듭니다. 자나깨나 '성공,성공'혹은 '생존,생존'하며 사는 것보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별을 보며 '이 행성에 어쩌다 내가 살게됐쥐?'하고 질문던지는 삶이 더 인간다워 보일 수도 있겠다라고요.
대학일학년때 들은 바로도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아무것에도 제약받지않는 순수한 사고를 할 수있기 때문이라더군요.
.....고등 때 철학에 심취한 내 모습을 보고 철없는 친구들로부터 '애늙은이'라 별명붙여졌던 정은이 대학칭구 주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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