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의 부리(The Beak of Finch). 네이처지에서 '그동안의 과학저술 중 최고'라고 격찬했다...고 책 뒤표지에 써있는데, 정말 네이처지에 그런 서평이 나왔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정도의 찬사가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라고 하는데, 어떤 호평을 붙여도 이 책을 다 칭찬하기에는 미흡할 거예요. 실은 저는 말이죠, 이 책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난 오늘 오전에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동' 때문에 정신이 막막할 정도였답니다(조금 허풍을 떨자면 ^^;;)
계속 도는 칼, 보이지 않는 해안, 보이지 않는 문자들, 낯선자의 힘, 특별한 섭리...이 책의 단락단락에 붙여진 소제목들인데, 꼭 판타지 소설의 소제목들 같죠. 이 아름다운 '소설'의 주인공은 갈라파고스 군도에 사는 참새과의 작은 새들, 핀치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한마리 한마리를 20년간 지켜보면서 열정적으로 연구활동을 펼친 진화생물학자 그랜트 부부와 제자들. 주인공은 또 있습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 말입니다.
이 책은 갈라파고스 군도의 작은 섬 '다프니 메이저'에서 외롭지만 의미있는 연구작업을 해온 그랜트 부부의 활동을 꼼꼼히 기록한 '인물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진화생물학의 모든 성과들을 모아놓은 '진화의 역사책'이기도 합니다. 부부 생물학자의 학문적 열정도 인상적이지만, 진화론의 역사와 의미를 입체적(말 그대로 입체적입니다!)으로 접할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앞서 이 책을 판타지 소설에 비유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주 유려해서 읽는 재미가 어느 문학작품 못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진화생물학 연구 현장과 다프니 메이저의 지나온 20년, 그리고 150여년전 다윈의 항해에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뇌파의 활동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판타스틱'하기 그지없습니다.
지나친 찬사가 아니냐구요. 과학저술가인 지은이 조너던 와이너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2000편의 책과 논문을 뒤졌다고 합니다. 당초 그랜트 부부의 활동을 다큐식으로 쓰기 위해 다프니 메이저에 갔다가, 지은이 자신의 진화론의 역사에 푹 빠져든 거죠. 진화에 관한 논문 뿐 아니라 성경과 셰익스피어를 포함해 방대한 자료들을 문장 속속에 인용해놓았습니다. 그래서,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책의 부제를 아주 눈여겨 보는데, 이 책에는 '갈라파고스에서 보내온 생명과 진화에 대한 보고서'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갈라파고스에서 보내온 이 보고서가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왜 진화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하는가-
인간은 오만합니다. 어느 정도 오만하냐면, 자기들이 이 세상 40억년 진화의 역사, 진화의 방대한 나무에 달려 있는 작은 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간해서는 인정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다른 생물의 한 종류를 아예 절멸시키려 하기도 하고, 지구의 생태계를 마치 핀치가 선인장 씨 빼먹듯 멋대로 빼먹으려 하기도 하지요. '핀치의 부리'는 그런 인간들에게, "진화는 나의 집 마당에서, 가로수에서, 내 방 안의 화분 위에서, 심지어는 나의 몸 안에서도 언제나-지금 이순간에도 이뤄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오만함으로 눈을 가린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이 지구의 생물들은 끝없이 적응하고 투쟁하고 공존하고-즉 '진화'해 나간다는 겁니다. 지구 환경에 대해 인간이 오만하게 주먹을 들이댈수록 자연의 적응, 즉 진화는 인간이 의도한 반대방향으로 가속화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합니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되풀이해 읽고 싶은 책을 이 봄에 만나게 돼서 아주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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