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과학, 수학, 의학 등등

존 홀런드, '숨겨진 질서'

딸기21 2002. 1. 30. 15:35
728x90



숨겨진 질서 - 복잡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Hidden Order 
존 홀런드 (지은이), 김희봉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숨겨진 질서(Hidden Order).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질서(작동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도 되고, 반대로 작동원리가 꼭꼭 숨겨져 있어서 정말 찾아내기 힘들다는 얘기도 될 성 싶은데. 존 홀런드의 '숨겨진 질서'는 바로 그같은, 꼭꼭 숨겨져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질서를 찾는 작업이다.


복잡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이 책의 주제는 바로 이거다. '복잡적응계(CAS)'라고 이름붙인, 보통 복잡계라는 말로 표현되는 아주 복잡한 세계를 대상으로 그 세계의 질서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예를 들면, 뉴욕시와 같은 거대한 도시에서 어느날 빵 공급이 잠시 중단되는 등의 '사소한' 실수도 없이 어떻게 모든 일들이 제대로 되어나가는지(물론 테러참사와 같은 일도 있기는 했지만--), 이 거대한 지구는 생태적인 도전에 어떻게 응대하는지, 조그마한 아메바 따위가 존재하던 곳에 어떻게 인간 같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생물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하는 것들을 파헤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복잡계라는 개념 자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거기에 '유전알고리듬'이니 비트니, 또 숱한 공식들이 나오면 상당히 머리가 아프다. 허나!(경빈 version) 미 MIT 출신의 물리학자인 홀런드는 이 복잡한 세상을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낸다.

복잡한 세상의 질서를 깨우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한 것은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작은 단세포 생물과 같은 기초적인 '행위자'를 설정해놓고, 그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것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전자 조합이 어떻게 교차되고 변형되는지를 살펴보고, 거기에 작동하는 원리를 조금씩 복잡하게 만들어보고, 그렇게 해서 최초에 극히 단순했던 '계'를 복잡계로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 작용하는 원리(질서)에 맹점은 없는지, 이 작은 '계'의 설정과정에 모순은 없는지를 현대 물리학의 여러 성과들을 바탕으로 꼼꼼이 검토해 설명하는데, 꼭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작은 생물들을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은 실제로 아메바를 실험실에 데려다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머리 속의 계산과 상상을 통해 이뤄지는 일종의 탐험이자 게임인데, 책에 나오는 다양한 공식과 유전자 표현을 모두 해석해보지 않고(완전히 이해할 능력도 없지만--;;) 핵심 길잡이만 따라가도 줄거리를 너끈히 소화할 수가 있다. 

굉장히 어려운 모형화 과정을 쉽게 설명해놓은 이 책에 대해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홀런드가 수십년동안 쌓아온 연구성과의 정수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저작"이라고 극찬했다. 그 말 그대로, '생동감 넘치는 지성'이다. 컴퓨터공학과 생물학, 경제학, 수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활달한 섭렵의 과정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모형을 만들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복잡계의 '진화'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세상을 이런 눈으로 볼 수도 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결국 중요한 것은 통찰, 꿰뚫어보고 살펴보는 그 능력이 아닌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