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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체스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지은이) | 김명섭 (옮긴이) | 삼인 | 2000-04-01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지은이) | 김명섭 (옮긴이) | 삼인 | 2000-04-01
'유라시아 변두리 인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엔 참 거북스런 제국주의의 솔직한 고백이라고 할까요.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 세계는 인권과 자유의 길로 발전해야 한다는 믿음,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은 평화공존이라는 사고방식에 칼을 꽂는 발상들이어서 읽는 내내 목에 걸렸습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폴란드 태생인데 '공산주의가 싫어서' 미국으로 건너갔다는군요.
역사의 진보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인권과 자유라는 것들은 근대 이래 서구에서 시작된, 그리고 서구가 제3세계에 이식시켜놓은 가치관입니다. 정치적인 수사로서가 아니라 그 본연의 의미만을 따지고 보자면 참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런 가치체계가 제국주의자들의 자기기만일 뿐이라고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군요.
만일 모든 국가의 정치엘리트들이, 특히 '역사적으로 유일무이한 세계제국'이라는 미국인들이 모두 브레진스키처럼 생각하고 있다면, 평화공존과 만인을 위한 복지의 확대라는 전지구적 이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브레진스키의 사고방식은 오만할 뿐더러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불쾌하고 불안하게 만드는건 그가 주장한 '지정전략'이 현실에서 미국의 힘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겠죠.
충고의 내용은 참 흥미진진했습니다. 손자병법을 연상케하는 글로벌 패권게임의 다양한 전략전술과 게임 참가자들에 대한 분석은 냉정하고 정확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자기들이 세계적인 강국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프랑스나 영국은 실상 별거 아니다, 중국이 잘난 줄 아는데 그래봤자 빈국이다 라는 식의 독설도 재미있었구요. 그가 내세운 결론이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면 무협지를 보는 심정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겠죠.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는 21세기 최초의 빅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세계제국의 전략가는 "한국이 통일되지 않도록 현상유지에 힘쓰되 주한 미군은 절대 철수시켜서는 안 된다"는 솔직담백한 심경을 내놓고 있습니다. 며칠전 매향리에서 미군의 사격훈련을 반대하며 신부님들이 사격장 안에 들어가 시위를 하는데도 미군이 그대로 총을 쏘았다죠. 이 책을 통해 너무나도 반인권적인 그 오만함의 글로벌版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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