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Billions and Billions)
칼 세이건 (지은이), 김한영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 <코스모스>의 작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대중적인 우주과학자. TV에 많이 등장했고 각종 사안의 코멘터로도 애용됐던. 그 외에,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없었다.
<에필로그>는 말 그대로 에필로그다. 과학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던 세이건이 골수암으로 죽어가면서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마지막'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가 남긴 에필로그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문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고 살았던 스타 과학자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환경 얘기였다. 물론 책 뒷부분에는 낙태에 대한 입장 등 기고문과 연설문들이 몇개 실려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즉 덤 정도에 불과한 것들이다.
세이건의 메시지를 굳이 해석하고 연구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그러나 동시에 무시하고 있는 것들이니까. 다만 세이건의 말 몇 마디를 옮겨보고 싶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질적으로만 안다면, 그것을 아주 막연하게 아는 것에 불과하다. 대상을 양적으로 안다는 것은 그것의 크기를 숫자로 이해하여 무수히 존재하는 다른 가능성으로부터 그것을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대상을 깊이 있게 아는 첫걸음이다. 그럴 때 우리는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제공하는 힘과 이해에 접근할 수 있다. 수량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데 가장 필요한 관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책을 읽는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린 항상 '양'보다는 '질'이 더 '우월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산다. 결국 질을 규정하는 것은, 질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양(양질전화)이다. 흔히 인문학도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양(수치)의 중요성을 무시하면서, 말하자면 '잘난척'을 한다. 그러나 인류의 무지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가 인류를 구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평등합니까?
"밝은색 피부는 피부암에 걸리기 쉽다. 검은색 피부의 사람들은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멜라닌을 충분히 가지고 태어난다. CFC(염화불화탄소)를 발명한 밝은색 피부의 사람들이 차별적으로 피부암에 걸리는 반면, 그 놀라운 물질과 별 관계가 없는 검은색 피부의 사람들은 선천적인 방어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니, 먼 우주에서 어떤 정의의 심판을 내린 듯한 느낌이 든다."
"일부 지역은 훨씬 추워지고 일부 지역은 훨씬 더워진다. 광활한 지역이 더욱 심한 가뭄을 겪을 것이다. 수많은 컴퓨터 모의실험을 시행해본 결과 아시아 남부와 동남부 지역,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사하라 주변 지역의 곡창지대가 뜨거운 가뭄에 타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중위도에서 고위도에 이르는 농업수출국가들(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수출이 증가하여 일시적인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가난한 국가들이 가장 혹독한 영향에 시달릴 것이다. 이 밖에 여러 요인으로 21세기에는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격차가 가일층 확대될 것이다. 굶주리는 자식들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인 수백만의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실제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혁명의 역사가 풍부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데올로기
굳이 구분하자면, 세이건은 미국의 공화당보다는 민주당 편인 것 같다(농담).
(1)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집권기간에 백악관에는 태양열 변환기가 설치되었다. 배관을 순환하는 물이 워싱턴의 맑은 날에는 태양열로 가열되어 백악관의 전력을 대략 20퍼센트쯤 공급했고, 카터 대통령은 그 물로 샤워도 했을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백악관 지붕에서 태양열 변환기를 뜯어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것은 이념적으로 불쾌한 물건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백악관 지붕을 개조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고, 매일 사용하는 전력량도 늘어났다. 그러나 담당자들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누구에게?
(2) '보수주의자들'은 무엇 때문에 지구의 환경 보호에 반대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들 자신과 자녀들까지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더욱 아리송하기만 하다. '보수주의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존하는가?
(3) 국제원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은 해외의 석유공급원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상당한 원조금을 산유국들에 제공한다. 이것이 에너지 비용이 아닌 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석유에 대한 탐욕 때문에 기름 유출사고로 바다를 더럽히기도 한다. 이것 또한 에너지 비용이 아닌 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추가비용들을 모두 더하면 원유의 추정가격은 배럴당 80달러를 초과한다.
불치병에 걸린 과학자는, 그러나 죽기 전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내 생각인데, 스티븐 제이 굴드도 마찬가지였고, '괜찮은' 사람들은 대부분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씩은 그런 낙관론을 들으면서 나는 '이 사람의 안타까운 희망사항일 뿐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염려스러운 얘기를 잔뜩 늘어놓고는(그리고 그 염려의 내용은 아주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라고 얘기를 하면, "불치병에 걸렸다고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나을 수도 있어요"라는 모순된 말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럼 세이건은 어떻게 희망을 그릴까. 그 자신 병에 걸려 있고, 지구도 병에 걸려 있고, 병을 치료해야 하는 인간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현재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를 깊이 생각하는 자체는 영장류 중에서도 단 하나의 혈통으로 전수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지구 위에 새긴 놀라운 성공담의 비결이기도 하다."
세이건이 인용했던 인디언의 속담 한 토막. 지금은 카피처럼 많이 들을 수 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지구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잠시 빌려왔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심박이상으로 고통받는 연인을 지켜보듯이, 지상의 관측소에서, 비행기에서, 인공위성에서 전세계 상공의 오존층을 두루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상에 누운 노학자의 마지막 메시지. (세이건은 결국 1996년12월에 사망했다)
<칼 세이건 연보>
뉴욕 브루클린 출생.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시카고대학에서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을 공부.
1962∼1963년 스탠퍼드대학 의과대학 유전학 조교수, 1963∼1968년 하버드대학 천문학 조교수를 거쳐 1968년부터 코넬대학 천체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1975년부터는 코넬대학의 방사선물리학 및 우주연구센터의 부소장을 겸임하였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제트추진실험실 초빙교수, 세계 최대의 우주애호가단체인 행성협회 공동설립자이자 회장을 역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 계획에 참여하던중 1996년 12월 지병으로 사망.
NASA는 그의 업적을 기려 1997년 7월 화성에 도착한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의 이름을 ‘칼세이건 기념기지’로 명명하였다.
<자세한 내용>
세이건은 미국 우주계획의 시초부터 지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1950년대부터 NASA의 자문 및 조언자로서 아폴로 우주인들이 달로 출발하기 전에 브리핑을 했고 마리너, 바이킹, 보이저, 갈릴레오 우주선의 행성 탐사 계획에서 실험관으로 활동했으며 최초의 행성 탐험 성공(마리너2호)을 목격했다. 행성 탐험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난제-금성의 고온, 화성의 계절 변화, 타이탄의 붉은 안개 등-을 푸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그는 핵전쟁의 전지구적 영향에 대한 이해, 우주선에 의한 다른 행성의 생물 탐색, 생명의 기원으로 이끄는 과정에 대한 실험 연구 등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저서>
《에덴의 용들》로 풀리처 상을 수상한 세이건 박사는 또한 많은 베스트셀러의 저자로서 그가쓴 《코스모스》는 지금까지 영어로 출판된 과학서적 중 가장 널리 읽힌 책이다. 뒤따라 방영되어 에미 및 피보디 상을 수상한 TV연속작품은 현재까지 60개국 5억의 시청자를 매료시켰다.
이 밖에
《우주의 지적인 생명체 Intelligent Life in the Universe》(1966)
《우주의 관계 The Cosmic Connection》(1973)
《Mars and the Mind of Man》(1973)
《Other Worlds》(1975)
《에덴의 용들 The Dragons of Eden》(1977)
《브로카의 두뇌 Broca's Brain》
《창백한 푸른점 Pale blue dot》(1994)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 haunted world》(1995)
《수십억의 수십억 Billions & Billions》(에필로그) (1997)
등이 있으며, 소설《Contact》는 영화로 제작되어 전세계에서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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