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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이 카스피해로 간 까닭은

딸기21 2010. 7. 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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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동유럽-중앙아시아를 순방했다. 닷새간에 걸친 바쁜 스케줄로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을 돌며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면서 역내 문제들에 미국이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영향권이었던 이 지역 문제에 미국이 팔을 뻗고 나온 배경이 관심을 끌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5일 그루지야를 방문, 그루지야와 미국의 관계가 확고하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그루지야는 미국과 긴밀한 군사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2008년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으로 역내 불안이 고조되자 미국은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루지야에 대한 무기 공급을 일시 중단시켰다.
이번 방문에서 미국이 ‘사실상의 금수조치’를 해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필립 고든 미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는 브리핑에서 “클린턴의 방문만으로도 그루지야 측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루지야에 앞서 이날 오전에 아르메니아를 찾은 클린턴은 “모든 협상은 원래 마지막 국면이 가장 힘든 법”이라며 아제르바이잔과의 영토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두 나라는 아제르바이잔 내 자치공화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분리운동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해왔고, 반면 아르메니아는 이 자치지역 내 아르메니아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개입이 불가피하다며 맞서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1993년 이래 집권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AFP


클린턴은 전날에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를 찾아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도 클린턴은 지역분쟁 해결을 강조하면서 중재역을 자임했다.
클린턴의 아제르바이잔 방문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아제르바이잔은 70억배럴의 석유 매장량과 100억㎥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자원부국이고, 이란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다. 미국은 1994년 아제르바이잔과 에너지협력협정을 맺었지만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로 지난해 바쿠 주재 대사를 철수시키면서 사이가 껄끄러워졌다. 아제르바이잔은 항의하듯 러시아,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얼마전에는 러시아로의 천연가스 수출을 대폭 늘렸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천연가스 보유국이지만 자국산만이 아닌 아제르바이잔 등 주변국 가스들을 싼 값에 사들여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은 올들어 아제르바이잔에 손을 내밀고 있다. 지난달에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무장관이 바쿠를 방문, 알리예프 대통령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클린턴은 이번 방문에서 독재자 알리예프에게 민주화를 촉구하면서도, 자극적인 언급을 삼갔다. 미국 언론들은 아제르바이잔이 자원부국이자 전략적 요충이라는 점,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보급로라는 점 등을 감안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은 터키의 공군기지에서 아제르바이잔 상공을 거쳐 아프간으로 군수품을 보급하고 있다. 워싱턴의 중앙아시아 전문가 토마스 드 발은 “민주주의 확산보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간 미국에 볼멘 소리를 내온 알리예프는 카스피해가 바라보이는 대통령궁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만한 샹들리에를 켜놓고’ 클린턴을 맞아 관계 강화를 약속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클린턴은 지난 1일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이번 순방을 시작했다. 2월 취임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친러시아 성향이며,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클린턴은 야누코비치 취임 뒤 멀어진 관계를 의식한 듯 양측의 협력에는 변화가 없을 것임을 강조했고, “나토의 문은 지금도 열려 있다”고 다독였다. 이어 폴란드로 이동, “기존 무기체제를 충분히 활용해 폴란드의 방어를 지원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 뒤 전임행정부가 추진했던 폴란드·체코 미사일방어(MD)체제 배치계획을 폐기한 바 있다.

이번 순방을 앞두고 미 국무부는 “미국과 동유럽·카프카스의 관계를 굳히고 역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방문”이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문지역이 러시아를 에워싼 카스피해 주변의 민감한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미국 내 러시아 첩보요원 사건이 터져나온 민감한 시점이기도 하다.
클린턴은 세르즈 사르기산 아르메니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미국과 러시아는 계속 가까워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은 “1년 전 러시아와의 관계 리셋(재설정)을 선언한 미국이 지금은 러시아의 이웃들과 관계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이 들어선 데에서 보이듯 옛소련권 국가들 사이에 근래 러시아로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단속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미국이 러시아의 문지방을 살짝 밟았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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