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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선데이, '영국판 광주학살'의 비극

딸기21 2010. 6. 1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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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하지도 않았고, 정당화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신임 총리가 15일 정부가 38년전 북아일랜드에서 공수부대가 저지른 ‘영국판 광주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했다. 유족들은 “늦었지만 무고함이 밝혀졌다”며 환호했지만, 법적 책임과 배상 문제 등 뒤처리를 놓고 다시 오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이래로 영국에 무력 점령돼온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에서 학살극이 일어난 것은 72년 1월 30일. 10대 소년들에서 중장년까지 포함된 민권운동가들과 시민들이 영국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 


영국 육군 공수부대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시위대를 덮쳤다. 달아나던 시민들 중 일부는 등에 총을 맞고 쓰러졌고, 몇몇 민권운동가들은 조준사격을 당한 듯 총탄세례를 받고 숨졌다. 그 자리에서 13명이 사망했으며 다친 이들 중 1명이 얼마 뒤 숨져 총 14명이 희생됐다. 북아일랜드인들이 ‘블러디 선데이(피의 일요일)’이라 부르는 학살이었다.

북아일랜드인들은 블러디 선데이에 거세게 항의했지만 군인들은 정당한 진압작전이었다고 말했고, 영국 정부는 그들에게 훈장까지 주었다. 군은 “당시 시위현장에 있었던 분리운동 지도자 마틴 맥기네스(현 북아일랜드 부총리)가 반자동 소총을 들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두달 뒤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 자치의회를 없애고 직접 점령통치에 들어갔다. 억압이 심해지자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등 북아일랜드 가톨릭 분리운동세력의 저항도 격렬해졌다. 
98년 토니 블레어 총리와 분리주의 정치세력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기까지 테러공격과 유혈진압이 반복됐다. IRA는 2005년에야 무장을 해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블러디 선데이 사건에 대해 의회에서 사과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되고 있다. /AP



북아일랜드 런던데리 시내 길드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총리 사과에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북아일랜드 측의 요구에 따라 평화협정 뒤 전직 고위법관 마크 사빌이 이끄는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조사위는 2004년까지 관련자 증언 등을 조사한 뒤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15일 공개된 ‘사빌 보고서’에 따르면 시위대가 폭발물이나 돌로 위협을 하지 않았는데도 군은 아무런 경고 없이 총을 난사했다. 사망자와 부상자 중 일부는 달아나다가 총탄에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군인들이 사건 뒤 자신들의 행동을 거짓으로 보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시위 지도자 맥기네스가 반자동 소총을 들고있었다는 주장도 거짓으로 판명났다. 

런던데리 시내 길드홀 광장에 모여 보고서 공개와 총리 연설을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사과 발언이 전해지자 환호를 보냈다.  

38년전 그날 열일곱살 어린 남동생을 잃었던 존 켈리라는 남성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내 가족의 결백이 드러나 기쁘다”면서 길고 상세한 보고서에 만족을 표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잃은 토니 도허티는 “공수부대원들에게 주었던 훈장을 당장 박탈하라”며 진상조사만으로는 모자란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리처즈 육군참모총장은 “총리의 사과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말했다. 반면 당시 공수부대원으로 작전에 참가했지만 사살에 가담하지 않았던 전역군인 6명은 보고서 내용에 항의하면서 “죄를 물으려면 저격수가 아닌 군 고위 책임자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먼저 발포했던 1공수부대 지휘관도 조사 과정에서 “우리는 복무에 충실했을 뿐”이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BBC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어서 법적 책임의 범위와 대상을 분명히 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런던데리 시내 보그사이드에 그려진 '블러디 선데이' 희생자들의 벽화



역시 보그사이드에 그려진 블러디 선데이 벽화.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그림에서 보았던 것 같은, 익숙한 그림이다. 그림에서 흰 손수건을 든 남성은 '데일리 신부님'으로 알려진 에드워드 데일리 신부로 당시 발포를 막기 위해 흰 수건을 들고 부생자들을 날랐다 한다. 나중에 런던데리 지역의 주교를 지냈다.

블러디 선데이 기념 모뉴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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