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물리학자 이휘소의 죽음

딸기21 2010. 6. 16. 16:37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우주의 탄생은 이렇다. 태초에 빅뱅이라는 대폭발이 일어나 우리 우주가 생겼다. 빅뱅이 일어난 직후 어떤 요인에 의해 우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에너지가 들어차게 됐다. 이를 ‘표준모델 이론’이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현재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구성 물질은 우주 전체의 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암흑 물질(23%)과 암흑 에너지(73%)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물질들을 구성하는 입자는 각기 다른 질량을 갖고 있는데, 입자들의 질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이른바 ‘힉스 입자’라는 것을 고안해냈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에 의해 각 입자들의 질량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힉스 입자의 실체는 관측된 적도, 측정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핵물리연구소(CERN)는 엄청나게 비싼 ‘거대 강(强)입자 가속기(LHC)’라는 것을 만들어 지난해 가동을 시작했다. ‘태초의 상황’을 재현해 힉스입자가 튀어나오는지 보기로 한 것이다. LHC는 가동을 시작하자마자 고장이 나 수리를 반복하고 있지만 연구는 조금씩이나마 진전을 보이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15일 “5개 정도의 입자들이 힉스 입자 후보로 거론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표준모델 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는 ‘핵물리학자’로 잘못 알려진, 입자물리학의 대가 고(故) 이휘소(미국명 벤자민 리) 박사다.

이휘소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마이애미대학과 피츠버그대학에 유학해 석사 과정을 마쳤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서 25세에 박사학위를 딴 뒤 이 대학과 스토니브룩 대학, 시카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68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그 3년 뒤에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연구소 중 하나인 미국 에너지부 산하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페르미랩)로 자리를 옮겨 입자물리학 연구팀을 이끌었다.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당시 이휘소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이휘소는 ‘힉스 입자에 미치는 강력(강한 상호작용)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 힉스 입자가 자연계의 질량을 갖게 하는 근본 입자이고 그 질량이 양성자에 110배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놨다. 지금도 힉스 입자에 대한 논문에는 이휘소의 이름이 종종 인용된다. 그 외에도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 미시세계에서 약력(약한 상호작용)의 작용에 대한 학문적 틀을 구축했다.

이휘소는 안타깝게도 77년 6월 16일 일리애나주 키워니 부근에서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겨우 42세였다. 그의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이 히트치면서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과학자’로 잘못 알려졌지만, 제자들과 지인들에 따르면 이휘소는 핵개발과 상관없는 이론물리학자였을 뿐 아니라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중도-진보적인 시각의 과학자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