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30년 전 '오적' 김지하 구속

딸기21 2010. 6. 1. 19:44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남녘은 똥덩어리 둥둥/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북녘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쪽/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게딱지 다닥 꼬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중략)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질기기 동탁배꼽 같은/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렷다.”


1970년 5월, 잡지 ‘사상계’에 김지하 시인의 시 한편이 발표됐다. 박정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담시(譚詩)라는 형식으로 발표돼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오적(五賊)’이라는 시였다. 시인은 당대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세력들을 ‘목질기기 동탁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으로 묶어 부패와 타락상을 질타했다. 당초 이 시는 김지하의 지인이던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의 청탁에 따라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인 신민당이 기관지 ‘민주전선’ 6월1일자에 이 시를 실으면서 ‘오적’은 지식인들 사이의 풍자를 벗어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민주전선은 이튿날 곧바로 압수됐고, 김지하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시인은 앞날을 예견한 듯 이미 ‘오적’의 첫머리에서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고 읊은 바 있다. 사상계 대표인 부완혁과 김승균, 민주전선 편집국장 김용성도 함께 갇혔다. 김지하는 보석으로 풀려났고 나중에 선고유예를 받았지만 사상계는 결국 그 해 9월 폐간됐다.

김지하라는 이의 그 뒤 행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1991년 그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글을 써 독재정권에 맞선 젊은이들의 분신을 비하하고 비난했다. 김지하에 대해 ‘변절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훗날 그는 “내가 붙인 제목을 신문사에서 자극적인 것으로 바꿨다”고 ‘해명’을 했다. 지난해에는 2008년의 촛불시위를 “문화 혁명으로 승화하자”고 주장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지식인들의 변절 혹은 변신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변했어야 하는데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다섯 도둑’의 면면은 바뀌었을지언정 권력층의 오만함과 횡포는 근래 더해졌다. 김지하의 필화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도 ‘오적’들은 사람들의 말과 글을 막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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