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200여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오리 전사들의 미라

딸기21 2010. 5. 5. 19:10
해외 ‘약탈 문화재’를 되돌려주는 데에 극히 인색했던 프랑스가 뉴질랜드 마오리족 전사들의 미라를 반환하기로 마침내 결정했습니다. 200년 넘게 머나먼 대륙을 떠돌던 미라들은 드디어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됐습니다.
AFP통신, BBC방송 등은 프랑스 하원이 4일 마오리 전사들의 머리로 만든 미라들을 뉴질랜드로 반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채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원은 이날 법안을 표결에 붙여 찬성 437, 반대 8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습니다. 프랑스가 특정 소장품목 전체에 대해 반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요. 의회 입법으로 이어진 것도 최초랍니다.


토이모코’라 불리는 마오리족 전사들의 머리 미라는 18~19세기 뉴질랜드를 약탈한 영국·프랑스 등 서양 ‘탐험가’들의 주요 거래품목이었습니다. 마오리족 전사들, 특히 각 부족의 우두머리들은 머리에 문신을 하는 관습이 있었고, 전투에서 이긴 부족은 진 부족 우두머리의 머리 미라를 승전기념물로 보관했다고 합니다. (이 '토이모코'의 사진은 올리지 않습니다. 이미 70년대 이후로 유럽에서도 전시되지 않고 있고, 해외 언론들도 그 미라 전시나 거래가 갖고 있는 범죄적인 측면 때문에 사진을 싣지 않습니다. 저희 신문에서도 그래픽에 마오리족 춤추는 여성의 얼굴로 대신했습니다)

처음엔 서양인들이 현지 부족민들에게서 미라를 사들여 유럽에 가져다 팔았습니다. 유럽인들 사이에선 일종의 ‘이국 취향’으로 미라가 유행했고, 마오리족 뿐 아니라 아프리카 흑인들의 머리 미라도 이런 식으로 ‘유통’됐었습니다(중학교 때 어떤 소설책에서 '복지국가 덴마크'의 십대들이 뱃사람에게서 받았다는 '흑인 머리 미라'를 놓고 얘기하는 장면이 나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돈벌이가 되자 유럽인들은 문신한 마오리족 원주민들을 살해해 머리를 잘라내는 만행까지 저질렀습니다.

1980년대 들어 마오리족은 각국에 미라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92년 웰링턴의 테 파파 통가레와 자연사박물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여기 한번 가보고 싶어요)은 전세계 박물관에 반환을 공개촉구했고요, 뉴질랜드 정부도 외교전에 나섰습니다. 

특정 인종·부족의 인체나 그 일부를 전시하는 것은 일반적인 약탈 문화재의 문제와는 또 다른 극심한 인권침해이며 인종차별적 범죄라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영국, 미국의 여러 박물관들이 미라를 돌려보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루앙 자연사박물관이 2007년 10월 미라를 돌려보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박물관과 시 당국은 “전사들의 머리는 신체의 일부분이지 공예품이 아니다”라면서 “이전 시대의 증오스러운 인체 매매의 유산을 없애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박물관은 또한 소장품 일부가 의도적으로 살해돼 미라로 만들어진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문화부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프랑스에 과거 약탈해간 문화재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라를 보내줄 경우, 약탈문화재 전반에 대한 반환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까 걱정했던 것이죠. 마오리족을 포함한 뉴질랜드 대표단이 루앵을 찾아가 반환을 촉구했지만 프랑스 법원은 문화부 주장을 받아들여 “루앵 시는 그런 결정을 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그후 미라 문제는 하원으로 옮겨갔고, 2년여 논란 끝에 이제야 반환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법안 발의자인 카트린 모렝-드사이 의원은 “세상에는 영원히 신성시해야 할 것들이 있는 법”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질랜드의 피타 샤플스 문화·마오리담당장관은 “중요한 결정”이라면서 환영했습니다.

1875년부터 루앵 박물관과 파리 케브랑리 민속박물관 등에 보관돼 있던 미라 15점은 먼저 테 파파 박물관에 보내진 뒤 미라의 주인이 속해 있던 각 부족에 전달된다고 합니다. 부족들은 전통의식대로 전사들의 장례를 치러줄 예정이랍니다. 뉴질랜드는 전세계 20여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미라 500여점 중 지금까지 300여점을 돌려받았습니다.

프랑스는 2002년 ‘호텐토트의 비너스’라 불리던 남아프리카 코이코이('호텐토트'는 이들을 경멸적으로 부르던 용어입니다) 부족 여성 사르티예 바르트만의 유해를 반환한 바 있습니다. 바르트만은 1810년 유럽으로 끌려와 구경거리로 살아야 했고, 사망 뒤에는 해부되어 프랑스 인류박물관에 74년까지 전시됐습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드네요.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사실은 일본에서 1907년엔가 '조선 남녀'를 전시한 적도 있었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중남미 원주민들이 숱하게 그런 구경거리가 됐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