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셰르파 이야기

딸기21 2010. 5. 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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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셰르파인 아파(49)는 지난달 초 에베레스트(현지명 초모랑마) 등반을 시작했다. 5월 중순이면 8848m 정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오은선 대장의 ‘세계 최초 여성 히말라야 14좌 완등’에만 시선이 쏠렸으나, 아파의 등정 또한 네팔의 모든 셰르파들과 산악인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은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교외 드레이퍼에 이주해 살고 있지만 아파는 에베레스트 기슭에서 나고 자랐다. 12살 때부터 등반을 시작해 1989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처음으로 밟았다. 그 후 에베레스트를 오른 것이 19번. 이번은 그의 20번째 도전이다. 


셰르파들 가운데서도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아파가 역사적인 기록을 세울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그에겐 이번 등정에서 또하나의 임무가 있다. 53년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최초로 올랐던 뉴질랜드 산악인 고(故)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유해를 그곳에 뿌리고 오는 것이다. 힐러리는 자서전에서 “내가 죽으면 화장해 뼛가루를 에베레스트에 뿌려달라”고 적었다. 그의 유해 일부는 고향인 오클랜드 앞바다에 뿌려졌고, 나머지 일부를 이번에 아파가 가지고 올라간다. 아파는 힐러리를 위해 산 꼭대기에서 불교식 천도재도 지내고 내려올 계획이다.


셰르파들, 힐러리를 기리다

국내에선 ‘에베레스트 첫 등정=힐러리’로 알려져 있지만 첫 등정으로 세계에서 인정받은 사람은 힐러리와 텐징 2명이다.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힐러리는 언제나 “텐징과 나의 공동 등반”이라고 말했지, 결코 자신의 공을 주장하지 않았다. 평생 동안 숱한 언론매체들이 “둘 중 누가 먼저 정상을 밟았느냐”를 캐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우리 둘”이었다. 


86년 텐징이 숨을 거둔 뒤에야 힐러리는 “그가 마지막 몇 걸음을 앞에 두고 내게 영광을 양보했다”고 고백하면서 “그러니 우리 둘이 함께 오른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텐징과 힐러리의 등반 50주년을 기념해 두 사람의 아들인 잠링과 피터가 에베레스트 동반 등정을 하기도 했다.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텐징 노르가이

생전의 힐러리와 텐징


셰르파는 히말라야 산악 안내인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네팔과 중국령 티베트의 경계선 부근 고산지대에 사는 부족의 이름이다. ‘셰르파(Sherpa)’라는 말은 ‘동쪽에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400년 전 무렵 티베트 쪽에서 넘어와 네팔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발 2000~4500m의 높은 지대에서 소의 일종인 야크와 감자를 키워 먹고 산다. 여름이면 야크를 몰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목축을 하기도 한다. 


2001년 네팔 정부의 인구센서스에서는 15만4622명의 셰르파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숫자는 점점 줄어 지금은 7만명 선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 인도 다질링과 칼림퐁 지역에도 셰르파족 일부가 산다. 영국 식민통치 시절 강제이주로 옮겨간 사람들이다. 네팔의 셰르파족은 티베트계 방언을 쓴다. 주민 대부분이 라마불교를 믿지만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신성한 산’으로 섬기는 풍습이 있다. 이들이 산악 안내원이 된 것은 1907년 영국 식민지 관리들이 히말라야 산들의 지형을 측정하기 위해 안내원으로 동원하면서부터였다.


셰르파들의 삶에서는 힐러리의 유산이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는 산에 오르기 위해서만 네팔 땅을 밟은 것이 아니었다. 힐러리의 네팔 사랑, 특히 셰르파 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가난한 네팔에서도 특히 낙후된 미개발 지역에 사는 셰르파족을 위해 62년 ‘히말라야 트러스트’를 만들었고, 숨을 거두기 전까지 거의 매년 히말라야를 찾아 셰르파족을 도왔다. 평생에 걸쳐 120번 이상 네팔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셰르파족 거주지인 솔루쿰부에는 히말라야 트러스트가 지어준 병원과 학교들이 있다. 에베레스트 주변 국립공원의 파괴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은 것도 히말라야 트러스트였다. 


수많은 셰르파족 젊은이들이 이 기금에서 내주는 장학금으로 교육을 받았다. 생전의 힐러리와도 가까운 사이였던 아파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그가 없었다면 우리에겐 병원도 학교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1월 힐러리가 타계하자 네팔인들은 함께 애도했고 에베레스트 근방에 있는 루클라 공항의 이름을 ‘힐러리-텐징 공항’으로 바꿨다.


칼라파타르 쪽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에베레스트의 전경



셰르파들의 등반 경쟁도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반에는 숙련된 셰르파인 옹추 다와(39)와 체징(29)이 함께 했다. 비록 등반을 중계하는 국내 언론에서는 오 대장을 도운 셰르파들의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산악 전문가들이다. 화려한 조명은 없지만 그들에게도 등정 경쟁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펨바 도르지에와 락파 겔루의 ‘에베레스트 빨리 올라가기’ 경쟁이었다. 2003년 5월 펨바가 12시간 46분이라는 기록을 세우자 사흘 뒤 겔루는 이를 2시간 단축시키며 기록을 경신했다. 이듬해 5월 펨바는 다시 2시간을 더 줄여 8시간 46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다른 셰르파족 산악인 파상 라무 셰르파는 1993년 네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으나, 내려오는 길에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에 떨어져 숨졌다.

최근의 라이벌로는 20번째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을 노리는 아파와 15번 오른 츄왕 니마를 꼽을 수 있다. 얼마전 베테랑 셰르파 20명은 에베레스트의 8000m 윗부분, 이른바 ‘죽음의 지대’에 올라가 등반가들이 남긴 쓰레기들을 갖고 내려오겠다고 밝혀 눈길을 끈 바 있다. 이들은 등반길에 숨진 산악인들의 주검도 함께 수습해올 계획이다.


네팔 신문 고르카파트라는 얼마전 가난한 셰르파 가족이 마다브 주마르 네팔 총리를 찾아가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호소를 했다고 보도했다. 산악안내원 등으로 관광업에 종사하는 셰르파는 소득이 평균적인 네팔인들보다 훨씬 높지만, 대부분 셰르파족은 고산지대에서 여전히 가난하게 산다. 과거 군주제가 유지될 무렵 네팔 왕실은 늘 셰르파족을 돕겠다고 말을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네팔 정부도 소수민족인 셰르파족의 생활환경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12월 네팔 마오주의 정당인 UCPN은 셰르파족이 사는 솔루쿰부 일대를 ‘셰르파 자치지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셰르파족은 카트만두의 정치싸움과는 상관 없이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