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란의 대통령들, 그리고 '여성운동가' 파에제 하셰미

딸기21 2005. 5. 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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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실시되는 이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온건보수파 지도자인 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70) 전대통령이 출마의사를 밝혔다. 지금은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라프산자니는 개혁파인 무하마드 하타미 현대통령의 집권에 가장 큰 버팀돌이 됐던 `개혁파의 원조'였다. 지금은 서로 다른 노선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인연에 다시 관심이 쏠린다.

라프산자니는 10일(현지시간) 대변인을 통해 다음달 17일 대선에 출마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선거관리위원회는 14일까지 대선 출마희망자들의 입후보신청을 받고 있다. 정계 주요 인사 중에 이번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라프산자니가 처음이다.


라프산자니는 지난 1989년부터 97년까지 두 차례 대통령직을 역임한 이란 정계의 산 증인이다. 하타미 대통령이 젊은층과 여성들, 개혁파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긴 하지만 정계에서는 라프산자니가 최고종교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에 이은 서열 2위의 권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국회의장과 군 사령관을 비롯해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데다 지난 97년 하타미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중재위원회를 이끌며 이면에서 권력을 유지해왔다. (그만큼 부패정치인이라는 공격을 많이 받고 있기도 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라프산자니와 하타미 대통령의 오랜 인연이다. 97년 이란의 `역사적인 민주선거'에서 하타미 대통령은 `여자들과 아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정치 신인에 불과했던 하타미 후보가 `혜성처럼' 떠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바로 라프산자니의 딸인 파에제 하셰미였다.


파에제 하셰미 라프산자니



99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는 파에제는 마즐리스(의회) 의원을 거치며 여성들의 체육행사 참여를 이끌어내고 신문을 발행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인 대표적인 여성정치인이다(이란에선 몇해전 여자들도 축구경기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여성들의 시위가 일어났었다. 축구 좋아하는 어떤 여성들은 남장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기도 한다고. 여자들은 축구도 못 보게 하다니, 이런 나쁜 넘들! 아무튼 그런 이란에서 10년전 여성축구클럽을 만든 것이 이 파에제라는 여자였다).

파에제는 하타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 여성표를 끌어모으는 역할을 했다. 당시만해도 `온건개혁파'로 불렸던 라프산자니는 하타미 후보측을 뒤에서 지원해준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타미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파에제의 동지 격인 과학자 출신 마수메 에브테카르라는 여성을 부통령으로 임명, 파에제를 비롯한 여성계의 지원에 화답했다(우리가 이란을 여성차별한다고 욕을 하는데, 이란에는 벌써 10년 전부터 여성 부통령이 있다).

그러나 이후 하타미 대통령과 라프산자니의 행로는 사뭇 달랐다. 하타미대통령은 이란 개혁의 상징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번번이 보수파에 발목을 잡혔고, 결국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까지 실망감에 등을 돌렸다. 반면 라프산자니는 온건보수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강경보수파와 개혁파 간 중재를 맡으며 정계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하타미 집권 뒤 잠시 이 동네 담당을 떠나 있던 나는, 몇년 지나 라프산자니가 '보수파'로 분류되는 걸 보고 좀 놀랐었다. 일종의 '이 남자가 사는 법'으로 봐야할까. 이란 같은 구도에서, 어쩌면 라프산자니같은 사람이 정치적으로 딱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follow up을 계속 해오지 못한 탓에, 이번 대선 판도는 잘 모르겠지만-- 강경보수파는 어차피 안된다. 현재 떠오르는 후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설사 당선이 될지언정, 시대의 반동일 뿐이다. 그런데 개혁파는 이미 '하타미의 실패'라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다보니 라프산자니 같은 노인네가 설치고 다닐 공간도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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