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동물의 세계, 자연의 신비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http://www.nationalgeographic.com/)이라는 잡지를 들여다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제가 다니던 대학에는 영어공부용으로 이 책을 팔러 다니는 아저씨가 있었어요. 멋모르는 신입생들이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어려운 단어들이 가득한 이 잡지를 1년치 씩 구독하고 그랬답니다. 그 아저씨는 뿌락치라는 소문도 있었는데...ㅎㅎ)
화려하고 질 좋은 사진들로 채워진 잡지 뿐 아니라 같은 이름의 TV 채널도 유명하지요. 이 미디어들을 운영하는 것은 세계 최대의 비영리 과학·교육지원기관으로 알려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NGS)’라는 단체입니다.
* 일단 구경삼아 사진들부터~~
지금은 세계 20여개국 말로 된 잡지를 내고 생물 종 보호에서부터 환경·생태 교육과 자연과학·고고학·인류학 연구지원 등을 하는 단체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당초 이 단체는 ‘자연에 관심 있는 엘리트 클럽’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1888년 1월 13일 미국 워싱턴 라파예트 광장에 있는 코스모스클럽이라는 사교 클럽에 돈 있고 학식 있는 몇몇 인사들이 모여서 “지리학적 지식을 널리 퍼뜨리고 알리기 위한 목적”의 모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2주 뒤인 1월 27일, 간단한 강령과 규약을 갖춘 NGS가 출범했습니다. 초대 회장은 법률가이자 금융가, 박애주의자였던 가디너 그린 허버드였습니다. 허버드는 상용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장인으로서, 사위와 함께 오늘날의 AT&T의 전신인 ‘벨 전화회사’를 창립한 창업주였습니다. 1897년에는 NGS의 회장 자리도 사위에게 물려줬습니다.
2년 뒤에는 다시 벨의 사위인 길버트 호비 그로스브너에게 회장 자리가 넘어갔습니다. 그로스브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의 초대 전업 편집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54년까지 무려 55년 동안 이 잡지 편집장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로스브너 집안은 지금도 이 단체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사회의 현 이사장인 길버트 멜빌 그로스브너는 벨의 증손자입니다.
NGS는 비영리기구지만 기업 못잖은 경영으로 유명합니다. 발명가이면서 사업 수완이 뛰어났던 벨과 그 사위 그로스브너는 NGS의 회원권을 판매해 높은 수익을 올렸으며, 뛰어난 작가들의 사진과 글을 사들여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의 명성을 높였습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의 원고와 사진을 구매해 매체를 만든 것은 이 잡지가 최초였다고 합니다.
NGS 재단은 수익금으로 과학 연구를 돕습니다. 1905년 로버트 피어리와 매튜 헨슨의 북극 탐사, 15년 미국 고고학자 히럼 빙엄의 페루 마추픽추 탐사, 29년 리처드 버드의 남극 최초 비행 등이 모두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반가운 이름은 이들이죠-- 3대 여성 영장류학자로 불리는 다이앤 포시의 아프리카 마운틴고릴라 연구,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비루테 갈디카스의 보르네오섬 오랑우탄 연구에도 NGS가 함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들에 대해서는 꼭 책 좀 읽고서 다시 포스팅을 하고 싶지만 늘 미뤄지네요.
내셔널 지오그래픽 얘기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 속 아주머니는 다이앤 포시입니다.
루이스 리키의 세 딸들로 불렸던, 고릴라들의 벗 포시.
르완다에서 마운틴고릴라들을 연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싸웠던 포시는 결국 1985년 밀렵꾼들에게 살해됐습니다. 포시가 숨지고 3년이 지난 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도 만들어졌는데요. 시고니 위버가 포시 역을 했다더군요.
국내에서는 포시와 고릴라들의 이야기를 담은 <안개 속의 고릴라>라는 책이 나와 있습니다. 포시의 책을 최재천 교수님이 옮겼답니다.
다음은, 침팬지 엄마 제인 구달. 동물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가, 즉 '인간의 조건'을 얘기할 때에 빠지지 않는 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루테 갈디카스.
저는 2년전 보르네오섬 취재갔다가 갈디카스가 오랑우탄을 관찰했던 자연공원을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오랑우탄도 보고, 갈디카스 박물관도 갔었죠. 말이 좋아 박물관이지, 사실은 통나무집.
이 분이랍니다. 역시 침팬지와 함께 한 모습...
화려하고 질 좋은 사진들로 채워진 잡지 뿐 아니라 같은 이름의 TV 채널도 유명하지요. 이 미디어들을 운영하는 것은 세계 최대의 비영리 과학·교육지원기관으로 알려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NGS)’라는 단체입니다.
* 일단 구경삼아 사진들부터~~
지금은 세계 20여개국 말로 된 잡지를 내고 생물 종 보호에서부터 환경·생태 교육과 자연과학·고고학·인류학 연구지원 등을 하는 단체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당초 이 단체는 ‘자연에 관심 있는 엘리트 클럽’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1888년 1월 13일 미국 워싱턴 라파예트 광장에 있는 코스모스클럽이라는 사교 클럽에 돈 있고 학식 있는 몇몇 인사들이 모여서 “지리학적 지식을 널리 퍼뜨리고 알리기 위한 목적”의 모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2주 뒤인 1월 27일, 간단한 강령과 규약을 갖춘 NGS가 출범했습니다. 초대 회장은 법률가이자 금융가, 박애주의자였던 가디너 그린 허버드였습니다. 허버드는 상용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장인으로서, 사위와 함께 오늘날의 AT&T의 전신인 ‘벨 전화회사’를 창립한 창업주였습니다. 1897년에는 NGS의 회장 자리도 사위에게 물려줬습니다.
2년 뒤에는 다시 벨의 사위인 길버트 호비 그로스브너에게 회장 자리가 넘어갔습니다. 그로스브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의 초대 전업 편집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54년까지 무려 55년 동안 이 잡지 편집장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로스브너 집안은 지금도 이 단체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사회의 현 이사장인 길버트 멜빌 그로스브너는 벨의 증손자입니다.
NGS는 비영리기구지만 기업 못잖은 경영으로 유명합니다. 발명가이면서 사업 수완이 뛰어났던 벨과 그 사위 그로스브너는 NGS의 회원권을 판매해 높은 수익을 올렸으며, 뛰어난 작가들의 사진과 글을 사들여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의 명성을 높였습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의 원고와 사진을 구매해 매체를 만든 것은 이 잡지가 최초였다고 합니다.
NGS 재단은 수익금으로 과학 연구를 돕습니다. 1905년 로버트 피어리와 매튜 헨슨의 북극 탐사, 15년 미국 고고학자 히럼 빙엄의 페루 마추픽추 탐사, 29년 리처드 버드의 남극 최초 비행 등이 모두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반가운 이름은 이들이죠-- 3대 여성 영장류학자로 불리는 다이앤 포시의 아프리카 마운틴고릴라 연구,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비루테 갈디카스의 보르네오섬 오랑우탄 연구에도 NGS가 함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들에 대해서는 꼭 책 좀 읽고서 다시 포스팅을 하고 싶지만 늘 미뤄지네요.
내셔널 지오그래픽 얘기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 속 아주머니는 다이앤 포시입니다.
루이스 리키의 세 딸들로 불렸던, 고릴라들의 벗 포시.
르완다에서 마운틴고릴라들을 연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싸웠던 포시는 결국 1985년 밀렵꾼들에게 살해됐습니다. 포시가 숨지고 3년이 지난 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도 만들어졌는데요. 시고니 위버가 포시 역을 했다더군요.
국내에서는 포시와 고릴라들의 이야기를 담은 <안개 속의 고릴라>라는 책이 나와 있습니다. 포시의 책을 최재천 교수님이 옮겼답니다.
다음은, 침팬지 엄마 제인 구달. 동물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가, 즉 '인간의 조건'을 얘기할 때에 빠지지 않는 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루테 갈디카스.
저는 2년전 보르네오섬 취재갔다가 갈디카스가 오랑우탄을 관찰했던 자연공원을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오랑우탄도 보고, 갈디카스 박물관도 갔었죠. 말이 좋아 박물관이지, 사실은 통나무집.
이 분이랍니다. 역시 침팬지와 함께 한 모습...
728x90
'내맘대로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제의 오늘/ 세기의 체스 대결 (0) | 2010.02.09 |
---|---|
'아랍의 목소리' 움 칼툼 (0) | 2010.02.02 |
어제의 오늘/ 1993년, 오드리 헵번 세상을 뜨다 (2) | 2010.01.19 |
어제의 오늘/ 일본 정부, 군위안부 최초로 사과 (0) | 2010.01.12 |
1994 낸시 케리건 습격사건 (0) | 2010.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