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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석유가 사우디의 2배?

딸기21 2010. 1. 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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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에 사우디아라비아의 2배에 이르는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아닌 미 지질조사국(USGS)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다. 아직 단언하긴 힘들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우디와 중동 중심으로 편제된 국제 석유지정학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USGS 소속으로 베네수엘라 오리노코강 일대 유전지대를 조사해온 과학자들이 “오리노코 벨트(Orinoco belt)에 5000억 배럴 이상의 석유가 묻혀 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고 AP통신 등이 23일 보도했다. USGS 조사팀의 크리스 솅크는 “여기서 파낼 수 있는 원유량이 최대 5130억 배럴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사우디의 매장량 추정치 2667억배럴의 두 배 가까운 양이다.


베네수엘라 측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는 USGS 견해에 대해 공식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전직 PDVSA 간부인 구스타보 코로넬은 AP인터뷰에서 “그만한 양이 묻혀있는지 알수 없거니와, 묻혀있다 하더라도 채굴가능량은 그 25%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노코강이라고 하면 아직도 나는 엔야의 노래가 떠오르는데,
세상 어떤 강도 돈 놀음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석유 매장량은 국제 지정학의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파보기 전에는’ 정확히 알기 힘들며, 비용과 품질 등을 감안한 채굴의 생산성도 미리 평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량 추정치가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해당국에는 엄청난 정치적 지렛대가 쥐어진다.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2년 전 대규모 심해유전이 발견돼 천운이 따르는 지도자임을 보여줬다. 오일 샌드(타르를 포함하고 있는 모래) 등 유전자원 개발에 적극 나선 캐나다는 최근 몇년 새 매장량 추정치가 크게 늘어 이란과 이라크를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매장량·수출량에서 수십년간 불변의 1위였던 사우디 등 중동산유국들은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조짐이 보이면 매장량 추정치를 늘려 발표하면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반대로 이라크의 경우는 20세기 초반 이래로 유전들에 세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매장량 추정치가 제자리 걸음을 해왔다. 걸프국가들이나 개발이 많이 진행된 러시아·캐나다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석유매장량 추정치는 고무줄 잣대라는 지적이 많이 제기돼왔다.

 

국가별 사정 외에, 석유경제에 대한 시각에 따라서도 잣대가 변한다. 석유경제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전체 매장량 중 절반 이상이 채굴되는 시점, 즉 석유생산의 정점(피크·peak)가 이미 지났거나 곧 지날 것이라 경고한다. 반면 석유 낙관론자들은 “탐사기술이 늘면 숨겨진 석유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므로 석유자원의 위기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체제에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석유 위기에 대한 경고가 나올 때마다 매장량 추정치를 늘려 정점으로 추정되는 시기를 뒤로 늦추곤 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석유를 정치에 활용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베네수엘라는 1975~76년 에너지산업을 국유화, PDVSA를 만들었다. PDVSA는 베네수엘라 최대 기업이자 최대 고용주다.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1, 정부 수입의 50%, 수출액의 80%가 이 회사에서 나온다. 베네수엘라는 90년대 업스트림(탐사·시추·채굴) 분야를 개방해 셰브론, BP, 토탈, 렙솔-YPF 등 서방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차베스 정권은 PDVSA에 부여됐던 경영자율권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카리브해 소국들에 석유를 내주는 페트로카리브, 안데스 지역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페트로안디노 등의 구상을 밀어붙이며 석유를 통해 주변국들을 규합해 왔다.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에 버금가는 ‘페트로수르(남미석유공동체)’를 만들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만일 USGS 조사를 뒷받침해주는 추정치들이 더 나온다면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발언권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서 위기를 만난 차베스 정부에게 매장량 증가가 얼마나 희소식이 될지는 미지수다. 다운스트림(정제·수송·공급)까지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땅 속 매장량이 아무리 많은들 소용이 없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근래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다. 차베스 정부는 이달 중순부터 에너지 공급에 지역별, 시간대별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성난 주민들은 카라카스 등지에서 며칠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은 베네수엘라의 1일 생산가능량을 250만 배럴로 평가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쿼터에 묶여 있는 사우디의 1일 생산량 1000만배럴 선이며, 지난해 OPEC에 신규가입한 앙골라는 200만배럴 선이다. PDVSA는 차베스 정부의 ‘사회주의 드라이브’로 인해 지난해 부채가 214억 달러에 이르러 경영이 휘청이자 오리노코 벨트의 카라보보 유전 채굴권을 경매에 내놨다. 하지만 유력 후보였던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는 이 유전이 지하 2000m에 있어 채산성 떨어진다는 이유로 입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