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난민에 등 돌린 호주

딸기21 2009. 11. 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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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남쪽으로 350㎞ 떨어진 호주령 크리스마스 섬. 낭만적인 이름과 달리 열대우림과 해안,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진 면적 135㎢의 작은 섬입니다.
섬의 대부분 지역은 국립공원이고 북동부 끝자락에 주민 1400명이 거주하는 정착지구가 있습니다. 이 섬은 17세기 중반 영국 동인도회사 함대에 점령돼 영국령이 되었다가 1957년 영연방 호주에 양도됐습니다. 1643년 동인도회사 함장이 크리스마스 전야에 이 섬에 도착했다 해서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북서쪽 웨스트화이트 비치 부근에는 고즈넉한 섬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첨단 보안시설의 수용소가 있습니다. ‘구금 센터’라 불리는 이 시설은 높이 4m의 전기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북쪽은 절벽, 남쪽은 빽빽한 숲이어서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이 곳을 본다면 중범죄자들을 가둔 교도소라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 곳은 교도소도 아니고, 범죄자들이나 테러용의자 수감시설도 아니다. 비판론자들이 ‘호주판 관타나모’라 부르는 난민 수용시설이랍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부근 바다에서 아프가니스탄·스리랑카 난민 78명을 태우고 호주로 향하던 배가 난파 위기를 맞아 호주 해상당국에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해군 함정을 보내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을 구해냈지만, 구출된 장소는 인도네시아 영해였습니다.
전란과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은 호주 정부에 난민 신청을 받아들여줄 것을 요청했지만 호주는 이를 거부하고 인도네시아 쪽으로 책임을 미뤘습니다. 호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시아의 ‘보트피플’들이 넘쳐들어올까 고민해왔습니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긴급 정상회담을 했고, 인도네시아가 난민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기나긴 항해를 해온 난민들은 다시 먼 길을 이동해 인도네시아 빈탄섬의 탄융피낭 난민보호소로 옮겨졌다. 이 보호소는 빈탄에 있지만 호주 정부의 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빈탄섬 당국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호주 측과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섬의 수용능력을 넘어선다며 더이상 난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체면을 구겼지요.
설상가상으로 난민들도 빈탄행을 거부했습니다. 난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리랑카인들은 인도네시아에 정착할 경우 살해될 수도 있다면서 단식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호주 정부는 곤란한 처지가 됐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호주는 유럽국들을 못따라가며, 그동안에도 수차례 난민 수용을 거부해 ‘비인권국가’라는 비난을 받았지요. 하지만 호주의 보수 야당들은 현 노동당 정부가 무르게 보인 탓에 호주행 난민들이 늘고 있다며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어, 러드 총리가 쉽게 결정을 내릴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남말할 처지가 되랴마는... 최근 미누 사태 등을 생각하면 호주 측에서 우릴 보고 코웃음치겠지요.
그래도 암튼 똥묻은 개 입장에서 겨묻은 개 탓을 하자면...


인도네시아 영해에서 구조된 스리랑카 난민들이 지난달 26일 반텐 주 칠레공 항구 앞바다에서 보트에 탄 채
유엔난민기구(UNHCR)에 도움을 호소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AP




스리랑카 난민들이 지난달 28일 호주 세관선 오셔닉바이킹호에 실려 빈탄섬 탄중피낭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AP


결국 호주 정부는 ‘수용 아닌 수용’을 택했고, 그 기착지는 크리스마스 섬이었습니다. 이미 이 섬의 수용시설에는 479명의 난민신청자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수용소와 다른 시설들까지 총동원하면 크리스마스 섬에 최대 1200명까지 난민들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호주 정부의 이런 결정을 강력 비난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섬의 수용소는 누가 봐도 교도소이며, 이 곳에 난민들을 가둬두는 것은 극히 비인도적인 처사라는 것입니다.
“이 곳은 19세기 태즈메이니아 남부에 세워졌던 포트아서의 원주민 수용시설이나 마찬가지다.”
난민들을 상담해주는 복지담당자 샬렌 톰슨은 지난 4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앞서 호주인권위원회는 “수용시설이 교도소와 같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 수용소에 머물고 있는 한 17세 소년은 “학교에서 지리를 배울 때에 크리스마스 섬에 대해서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생소한 환경에 당혹감을 드러냈습니다. 이 소년은 아프간의 소수민족인 하자라족 출신으로, 부모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난민선을 탔다가 이 섬에 수용됐다고 합니다.



인도양에 위치한 호주령 크리스마스 섬의 난민 수용센터. /사진 프로젝트세이프닷컴


재난을 피해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이들을 외딴 밀림 속 시설에 기약없이 기약없이 가둬두는 것은 누가 뭐래도 비인도적인 처사입니다.

비판론자들은 호주 정부의 난민정책이 옛 영국 식민지 시절 죄수 수용소, 개척 시대의 애버리지니(원주민) 격리와 박해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호주는 1차, 2차 세계대전 비롯해 20세기 이후 일어난 거의 모든 국제분쟁·전쟁에 참전한 나라입니다. 호주 친구에게서 이 얘기를 듣고 자료들을 찾아보니 정말이더군요.
호주는 지금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여러 전쟁에 군대를 파병해놓고 있습니다. 평화유지군인 경우도 있고 전투병인 경우도 있지요. 이전까지의 원주민 격리·박해와 악명 높은 백호주의 역사까지 거슬러갈 필요도 없이, 호주는 국제사회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나라입니다.

오랜 보수당 정권을 몰아내고 2007년 집권한 러드 총리는 이듬해 원주민 박해를 공식 사과, 세계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러드 총리는 집권 이래 인권·환경정책을 강화하겠다고 주장했고, 호주의 난민 거부정책을 비판해온 난민 관련 인권단체들은 크게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호주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호주는 2002년 자기네들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인구 3만여명의 태평양 섬나라 나우루에 난민들을 떼넘겨 비난받은 바 있습니다. 이 사실은 호주의 요구로 난민 460여명을 떠안은 나우루 정부가 “호주 측이 약속한 돈을 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호주 정부는 이 문제로 유엔의 공개 비난까지 받았습니다.

호주는 기후변화 체제에 적극 동참하지 않은 채,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 이웃 섬나라 투발루 주민들에게도 등을 돌렸습니다. 기후변화의 직접적 피해자인 투발루의 환경난민을 수용하기를 거부한 것이죠. 뉴질랜드가 투발루인들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일단락지어졌지만 호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했습니다.

주변 섬나라들이나 자국령 작은 섬들에 난민을 격리시키는 호주 정부의 조치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라는 점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난민들을 크리스마스 섬에 몰아넣는 것은 자국 내 작은 지역에 대한 폭력적인 횡포입니다.
이 섬 지역대표인 고든 톰슨은 “주민이 1400명에 불과한데 난민들이 계속 몰려오게 되면 수용시설을 비롯한 섬 내 모든 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정부가 난민신청을 신속히 심사해 본국으로 돌려보내든 ‘본토’에 입국시키든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례로 봤을 때, 호주 정보가 ‘신속히 결정해 본토로 난민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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