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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일인들의 역사에 별로 자랑할만한 일이 많지는 않지만 20년전의 통일만큼은 자랑스러워할 이유가 충분하다.”
동·서독을 갈랐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오는 9일로 20주년이 된다. 당시 냉전 종식을 이끌어 낸 ‘세기의 지도자’ 세 명이 지난 30일 베를린에서 만나 20년 전의 극적인 사건을 회고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서 냉전이 끝난 이후 세계의 ‘관리자’ 역할을 맡았던 조지 H 부시 전대통령(85), 공산권 개혁을 통해 냉전의 종식을 이끌어낸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대통령(78), 서독의 마지막 국가수반이자 통일 독일의 첫 수반이 됐던 헬무트 콜 전 독일연방총리(79)가 그들이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 바로 부근에 위치한 프리드리히슈타트의 팔라스트 극장에서 이날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세 사람은 “우리는 영원한 파트너들”이라며 서로의 공로를 치하하고 장벽이 무너지기 전후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돌아봤다.
부시는 양 옆에 앉은 고르바초프, 콜의 팔을 붙잡고 “내 옛 동료들과 한 자리에 모이니 기쁘다”면서 우정을 과시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도 하나된 독일, 자랑스러운 자유 독일의 꿈을 가로막지는 못했다”며 서독으로의 목숨건 탈출을 감행해 장벽의 붕괴를 이끌어낸 동독인들의 용기를 치하했다. 또 “역사학자들은 고르바초프가 제시한 개혁·개방의 비전과 의지를 높이 평가할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부시는 “오늘 우리를 이곳에 오게 한 역사적인 사건은 본, 모스크바, 혹은 워싱턴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신이 주신 권리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고령에 지병으로 발음마저 어눌해진 콜도 “독일인들은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며 통일을 자축했다. 콜은 “언제든 부시에게 전화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고르바초프와 부시는 나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들이었다”고 말했다.
장벽 붕괴 뒤 냉전 종식의 공로로 9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고르바초프도 “민중들이야말로 영웅이었다”며 사람들의 용기를 치하했다. 그는 또한 냉전을 끝내기 위해 노력했던 ‘이전 세대의 지도자’ 즉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공을 돌렸다. 레이건은 87년 서베를린의 장벽 앞에서 동쪽을 향해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무너뜨리시오”라며 ‘역사적인 연설’을 해 지금도 독일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반면 부시는 2년 뒤 장벽이 무너졌을 때에도 베를린의 현장을 찾지 않아 레이건보다는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던 그들의 만남은 화기애애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든 세 지도자의 모습이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했다고 도이체벨레는 전했다. 82년부터 16년 동안 독일을 이끌었던 콜은 뇌줄중으로 얼굴에 마비가 왔으며 지난해 2월 허벅지를 다친 뒤로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부시는 지팡이를 짚고 단상에 올랐다.
동독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통일 독일의 지도자가 된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 등 독일 지도자들과 각국에서 온 1800여명이 2시간에 걸친 세 지도자의 회동과 기념식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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